- 매일 지쳐가는 나에게 쓰는 편지
편지. 가끔 친정에 갈 때면 먼지가 수북이 자리 잡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상자를 열어보곤 합니다. 친구들과 알콩달콩 주고받은, 볼펜 자국 꾹꾹 눌러 쓴 편지들을 볼 때면 ‘이런 것도 고민이었구나. 그 때 나의 세계는 이러했구나.’하고 새삼스러워 오글거릴 때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카톡으로 편하게 내 감정을 전달하고 어떤 때는 진지한 마음 따위는 그저 흘려버리는 요즘에는, 편지 같은 건 쓸 일이 없지요. 메말라 간다는 것이 이런 걸까요. 고작 '편지'라는 두 글자에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다니! 생각만으로도 손가락이 수줍어지는 그런 일. 진심을 전하는 데 아주 적당하면서도 정성스러운 그 일을 통해 건조해진 내 마음을 톡! 건드려 보려 합니다.
바닥에 엎드려있는 종이 딱지처럼, 땅바닥에 딱 붙어있는 내 자존감을 뒤집어 볼 수 있길 기대하며… '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존댓말로 써볼 겁니다. 자꾸 서론이 길어지는 걸 보니, 부끄러워하면서도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 같네요.
<열정에 치어 하루가 버거운 나에게..>
오늘도 후회로 하루를 시작했겠네요. 아침 8시쯤 힘겹게 일어나며 미라클모닝을 놓쳤다고 한숨을 쉬겠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으름을 탓하는 깊은 숨소리가 침대 밖으로 넓게 퍼져 나왔을 겁니다. 하나하나 욕심껏 세워놓은 계획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해내지 못한 것들에 패배감을 느끼면서요. 다짐과 후회만 반복하며, 한심스럽게 나이만 먹고 있다고 말이죠. '발을 동동거리며 매일을 살고는 있는데,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자신을 꾸짖는 걸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그 인생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삶이 좀 편해질까요? 당신의 비교 대상은 항상 '자신과 어머니'에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친정 엄마 눈치를 살피는 ‘칭찬 바라기’로 살고 있으니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울 리 없겠죠. 인정 욕구가 강한 당신은 엄마의 꾸지람 몇 마디에 며칠을 앓아눕기도 하니까요. 평생을 바쁘게 살아온 엄마를 보면서, ‘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현실은 늘 경주마처럼 달려야 한다고 채찍질을 하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로, 일할 기회를 빼앗겼다며 피해 의식에 사로잡혔던 때도 있었죠. 그리고 닥치는 대로 무엇을 배우기 위해,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바동바동했던 시간들을 밟고 지금 이렇게 위태롭게 서있네요. 아주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 만들어놓고, 그것이 되기 위해 방황하는 세월만 벌써 몇 년째. 큰 아이는 그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네요.
그리고 곧 마흔. 무엇인가 이루었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때가 눈 앞에 다가왔네요. 마흔만 되면 삶이 자유로워질 거라 상상했던 그 시기가 도래했지만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저 시간들을 게으르게 흘러보냈다고, 또 탓을 하네요.
오늘도 방황하는 당신에게, 그 작은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고 몇 마디를 건네고 싶네요. ‘위로’라는 것이 될 수도 있겠죠.
괜찮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대로도 충분히, 열심히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잘 살고 있어요. 남들과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당신은 충분히 빛나고, 열정적이고, 준비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적당히 게으르고, 포기해도 좋아요. 그저 그렇게, 허투루 보냈다고 생각하는 시간들도 당신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내 손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쥐려고 하면 꼭 새어나가기 마련이에요. 때로는 더 큰 것들을 잃을 수도 있어요. 꽉 채워진 삶에서는 다른 무언가를 담을 수 없습니다.
삶에 여백을 주세요. 편안하게 숨쉬고, 내 삶 속에서 나뒹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세요. 숨이 차오를 때까지, 턱밑까지 채워 넣지 마세요. 가슴 설레는 어떤 것들이 나를 찾아올지 모르잖아요. 언제든 내 삶을 빛내줄 무언가를 초대할 수 있게 넉넉히 비워두세요.
온 힘을 쏟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힘으로도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나의 속도대로 미끄러지듯 살아가보는 거죠. 급하게 걸으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데 더 많은 수고로움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들의 속도에 내 몸을 맞추지 말고, 나를 믿고 묵묵히 걸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걷다가 걷다가보면 함께 걷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고, 당신이 손을 잡아줘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때로는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사람도 생겨나겠죠. 마치 지금 이 순간처럼요.
한번도 용기 내어서 나에게 말하지 못한 그 한마디. 수줍게 건네며, 담담한 위로의 편지를 마칩니다.
"괜찮습니다. 오늘도 참 잘했어요. 토닥토닥"
- 바람은 차고, 가슴은 따스한 겨울 그 어느 날.
눈물이 났습니다. 부끄러워서 한 글자도 못 나아갈 줄 알았는데, 글을 맺고 나니 내가 좀 대견하게 느껴지네요. 다른 사람을 붙잡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진심으로 위로를 해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음 없이, 꽉 찬 위로를 받았네요. 오늘도, 내일도... 나를 토닥이며 살아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