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삶의 열쇠,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주고 있지 않나요.
그때는 그게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나’답게 산다는 것이.
나의 20대는 ‘남들처럼’ 사는 것이 목표였다. 남들 대학 갈 때 가고, 취업할 때 하고, 시집 갈 때 가고...... 운이 없게도 대학 진학에 쓴맛을 보고, 편입을 선택했을 때 ‘내 인생은 크게 엇나간 것’ 같았다. 새로운 전공, 중간에 들어간 대학에서 또 다른 학번이 하나 더 쥐어졌을 때 ‘난 실패했다.’고 확신했다.
그후로는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두 학번이나 어린 친구들과 동기로 생활하는 것이 편치 않았음은 물론이고, 비서학을 전공한 내가 문예창작과로 편입한 것도 참 뜬금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질감’을 자각할 때마다 마음이 많이 작아졌다.
툭 튀어나온 못처럼 나라는 존재가 참 성가셨다. 최대한 빨리 취업을 해서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열망했다. 뒤늦게 혹은 억지스럽게 ‘잡지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그 길을 걷기는 쉽지 않았다. 오로지 글 실력이나 인맥으로, 어쩌다 가끔 올라오는 구인공고에 기대야 했기에 틈새라도 보이면 비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시멘트 틈 사이에서도 잡초는 자라나듯, 몇 차례 회사를 옮겨가면서 내 자리를 찾았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면서, 성과가 있어도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애매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남들처럼 9시에 출근하고, 야근도 하고 출장도 가고. 코피 터지게 일하면서 승진도 했다.
스무살이 끝나갈 무렵, 난 다시 초조해졌다. 여자 나이 스물 여덟이면 다들 서둘러서 시집을 간다는데.....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다. 어째 공부나 취직은 실력을 열심히 갈고 닦으면 된다지만, ‘결혼’이라는 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를 버리고, 맹목적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건 정말 신이 내려야 하는 축복인가 싶었다.
기도도 열심히 했다. 나도 남들처럼 살게 해달라고. 밤에는 ‘주(酒)’님도 성실히 찾아뵈었다. 제발, 내 짝 좀 찾아달라고. 서른이 되기 전에 시집을 가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아무 승산 없이 서른이 찾아왔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노처녀 히스테리가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이 되어서야, 신은 나에게 툭!하고 건실한 청년 하나를 내려주었다. 아주 감사하게도, 두 살이나 어린. 성실하고 마음은 따듯한 그런 남자가 내게 와주었다.
‘이미 늦어버렸는데.....’
괜히 잘 해주면 나를 얕잡아볼까 싶어서 아주 못되게 굴었다. 말도 차갑게 하고, 주정뱅이처럼 술도 많이 처먹었는데 그는 도인처럼 그런 나를 받아주었다. 사람이 맞나 싶어서 더 심술궂게 대했다. 직급이 올라가니 회사 일은 버겁고, 밤마다 술 먹고 방황하고 다니니까 몸이 고장 났다. 급성 장폐색으로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고, 그는 일주일 동안 나를 지극히 간호해 주었다.
우리는 그 다음해 결혼식을 올렸다. 나 서른 하나, 그 스물 아홉. 계 탔다. ‘남들처럼’에 목을 맸던 나는 ‘결혼 한방’으로 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쭈구리였던 나는 연하남과 산다는 이유로 아줌마들 사이에서 능력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게 뭐라고. 조금 젊은 남편 덕분에, 나는 가끔 꾀병을 부리며(남편이 읽으면 안되는데...) 주말에는 하루 종일 낮잠을 자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남편 입장에서는 ‘사랑’이 ‘업보’로 변한 결혼생활일 수 있겠지만, 100세까지는 무르지 않기로 ‘혼배 미사’를 통해 굳게 맹세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제는 또 갑자기 미친 여자처럼 감정이 끝없이 추락했다. 멀쩡히 일 잘하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오열했다. 난 왜 남들처럼 잘 하는 게 없냐고. 내가 연례행사처럼 하는 짓이기에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침착하게 내 얘기를 들어줬다.
그리고 퇴근 후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나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당신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당신은 내가 만난 이후로 한 번도 쉬지 않았어. 계속 새로운 것을 해내기 위해 도전했고, 이미 성취한 것도 많아. 지금도 더 나아가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이고, 결국 해낼 것을 믿어.”
말주변도 없는 그의 진심 섞인 한 마디에, ‘나’를 외면했던 마음이 사라져버리는 걸 느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난 종종 잊고 산다. 그리고, ‘나’를 찾기 위해 오늘도 글을 써본다. 언젠가는, ‘나’만 모르는 ‘나’를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