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그 말 때문에...

- 나를 치유하는 법, 글 쓰기

by 별빛서가


“선배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머리가 하얗다 못해, 번쩍이다 재가 되어버리는 기분이었다. 그 말은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얽혀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유독 나와 잘 맞지 않았던 후배.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해도, 서로가 노력을 해도 그 간극은 좁혀질 줄을 몰랐다.


내 눈에 그 아이는 모든 게 엉망인 것처럼 보였다. 입사 첫날부터 함께 일하는 매순간이 못마땅했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이라, ‘너 하나만 잘해도 집에 일찍 갈 수 있는데......’ 일이 더딘 그 아이의 모습이 난 늘 불만이었다. 그렇게 3년쯤을 지냈을까. 갑작스럽게 팀장님이 타부서로 이동을 하셨고, 나는 엉겹결에 직급 순서대로 팀장으로 승진했다.


그때 내 나이는 서른. 지금 생각하면 ‘일’만 할 줄 알았지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시기였다. 막상 팀을 이끌어야 하는 처지가 되니, 팀원들의 눈치가 보였다. 이듬해 결혼을 앞두고 있기도 했고, 내 경험에 비해 큰 일들을 맡게 되니 때때로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결정권한은 있으나, 능력은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했고.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속으로 날을 많이 세웠나보다.


그러다 펑!하고 일이 터진 것이다. “나가,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난 그동안 참아왔던 불만이 거칠게 터져버렸고, 그 후배는 “그럴 수 없는데요.”하고 맞섰다. 팽팽한 긴장감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고, 나와 그를 제외한 주변은 암전이 된 듯했다. ‘어째야 할까......?’ 더 망신을 당하기 전에 후배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설전 끝에, 그녀가 던진 말이 바로 ‘나의 죽음’을 빌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라고 속으로 치를 떨었으나, 내 입은 “힘들었겠다. 내가 그렇게 미웠니?”라며 그녀를 다독이고 있었다. ‘이런 가식적인 인간. 나라는 사람’. 그후로 ‘사람의 입’이 너무나 무서워졌다. 나의 모든 행동과 생각이 남에게 읽힐까봐 두려웠다. 눈을 마주치거나 웃는 것도, 나의 의견을 말하는 것도 겁이 났다.


‘정말 죽을 만한 인간이었을까봐, 내가.’

그녀가 터뜨려버린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도망 치듯 회사를 떠났고, 첫 돌 무렵 충청도로 이사를 가버렸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버리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남들을 다 이해하는 척하고 살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응어리진 못된 말들은 독이 든 화살이 되어 남편과 아이들을 향했고, 그런 나를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내 자존감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때면, 그 말이 맴돌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겨내려고’ 악착같이 무엇이든 배우고 익혔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무엇으로든 나를 채워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바빴다. 내 삶에 빈 자리를 두면, 그 말이 다시 나를 덮칠까봐 꾸역꾸역 메꿔갔다. 무려 10년 동안이나. ‘괜찮아지기 위해서’


KakaoTalk_20210221_204209910.jpg

가끔 울음이 터질 것 같을 때에는 글을 썼다. 처음에는 자기 검열이라는 틀에 갇혀 한 글자도 쓸 수 없었지만, 그냥 마음을 토해내듯 써내려갔다. 서서히 그렇게 내 자신을 ‘글’로 마주하면서 나는 조금 나아졌다. 보잘 것 없는 나의 소소한 글을 아껴서 봐주는 이들도 생겼고,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쓴 몇 줄에도 같이 울어주는 이도 있었다. 글로 만난 사람들의 따스한 한 마디가 나를 일으켜 주었다. ‘다 괜찮다고. 좋은 글 써줘서 고맙다고. 기운 내라고.’


가슴에 묵혀두었던 그 말을 글로 내뱉으면서, 난 한결 더 가벼워졌다.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칠흙 같은 시간들을 함께 견뎌준 남편과 엄마가 라푼젤처럼 예쁘다고 말하는 아이들. 늘 걱정스럽게 나를 지켜보는 부모님도. ‘나’라는 사람에게 언제나 ‘엄지 척!’ 해주는 친구들까지.


내가 그렇게 괴로웠던 건 ‘그녀의 독한 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알량한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고작 단 한 사람의 한마디 말에 가둬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지난 시간을 돌이켜본다. 아무래도 ‘나’를 사랑하는 법을 좀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마흔은, 그런 나이니까.

작가의 이전글'나'를 종종 잊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