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눈 라면은, 얄미운 맛이었다.

나의 남동생에 대하여...

by 별빛서가


평화로운 주말 정오 무렵. 나른함을 깨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건 바로 '라면'이었다. 보글보글 막 끓어오르는 면발이 설익어갈 때쯤, 달걀 하나를 톡! 깨서 퐁당 빠뜨리면 그 상태 그대로 익어버린다. 물을 살짝 넉넉하게 해서 엄마표 태양초 고춧가루를 한 스푼 넣고, 청양고추 하나를 썰어 넣으면 이것이 지상 낙원의 맛! 호로로 쩝쩝, 혀가 붉게 타오르는 알싸한 통증이 올라올 때쯤에는 재빨리 사이다 한 모금을 들이켜야 한다.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줄, 나의 최애 힐링 푸드였다.


내 일상은 야근을 달고 살았다. 평일에는 새벽녘까지 일을 하거나 마감 후에는 술을 퍼마시느라 바빴기 때문에, 집에 있는 날도 드물었다. 그래서 주말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고 싶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늦은 아침 억지로 깬 듯 배를 살살 문지르며 부엌으로 가는 자연스럽고도 가벼운 발걸음! 여기에 떡진 머리와 후줄근한 츄리닝이야말로, 나만의 휴식을 완성시켜주는 완벽한 조화였다.


하하, 그러나 현실은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다 함께 산다'였고. 결혼식 전날까지도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불금을 보낸 다음날의 숙취는 도둑 고양이마냥 몰래 달래야만 했다. 나의 하나뿐인 동생은 대학원에 진학할 때쯤 자취를 시작했으니, 그 전까지 꽤 긴 시간을 함께 살았다. 평생의 앙숙이었고, 투견들처럼 맹렬하게 싸운 시간이 참 많았다.


세상 아름다운 주말 정오에 벽돌을 던진 이가 있었으니.

"아, 누나 진짜 맛있겠다. 딱 한 입만."

"왜 또, 니가 끓여먹으라고! 아.... 진짜 맛있게 끓였는데. 한 젓가락만이다?!"


정말 내가 혼을 갈아 넣어서 끓인 라면인데. 분명 물을 올려놓을 때까지만 해도 자고 있던 녀석이 내 곁에서 코를 킁킁거린다. 안 주자니 내가 너무 치사하고 옹졸한 것 같고, 덩치는 산만한 녀석에게 한 입을 건네자니 끓인 정성이 너무 아까워서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도 어머니의 한 배속에서 태어났고 자란 동지인데 먹는 것 가지고 매몰차게 구는 건 '누나 노릇'이 아니다 싶어서 한 입만의 자비를 베풀었었다.


인간은 진화한다고 했던가. 분명 한 입에서 시작되었던 남매간의 배려와 온정이었을 텐데, 난 점점 라면 끓이기에 고수가 되어가는 듯했다. 주말 정오 무렵이 되면, TV를 보고 있는 내게 남동생이 살금살금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누나, 배 안 고파?! 아, 나 지금 누나가 끓여준 라면이 정말 생각이 나. 어떻게 그렇게 맛있게 끓이지?"

"나 배 안고픈데...? 니가 끓여먹어. 손 없냐고."

"아니, 내가 끓일 수는 있는데. 그 맛이 안나. 누나가 끓이면 면이 막 오동통하고 쫄깃해서! 와~ 머라고 표현해야 하지?"

"..............."


난 그 녀석의 달콤한 말을 앞치마처럼 입고, 부엌으로 가서 물을 올린다. '아차! 라면이 없는데....'

"영주야, 청일아. 인스턴트가 얼마나 몸에 해로운 줄 아니?! 소금 덩어리야!"라고 귀에 인이 박히게 말씀하시는 엄마 덕분에, 집에는 라면이 비상식량으로라도 쌓일 일이 없었다. 북한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라면을 돈 주고 사실 분이 아니기에.


우리는 이제 다시 신경전에 돌입한다. 누가 '라면'을 사러 갈 것인가. 극강의 딜!

"내가 라면까지 끓이는 데 사 오는 것까지 해야 하냐고"하고 내가 선방을 날린다.

"누나, 내가 천 원 줄 테니까 사 와주면 안 될까? 내가 지금 머리도 안 감고, 면도도 안 하고 어떻게 나가~"하고 녀석이 훅을 날린다. 아~씨, 만원도 아니고.

"나도 머리 안 감았거든?!" 하고 나는 다시 반격을 해본다.

"누나는 머리 안 감아도 괜찮아. 모자 줄게."

젠장. 그 사이에 배가 고파진 나는 동생 모자를 쓰고 슈퍼마켓으로 갔다. 라면 두 봉지와 사이다는 한 개.


그렇게 끓여먹은 라면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 또한 추억으로 남을 만큼, 우리는 오래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난 결혼을 해서 신혼살림을 차려서 나갔고, 박사 과정을 밟던 녀석은 서른 줄이 되어서야 뒤늦게 군대에 끌려갔다. 아, 슬프게도. 동생이 제대를 했을 무렵에는 내가 충청도로 이사를 갔다.


그 당시 동생 녀석은 생에 두 번은 없을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너무나 늦게 군대를 가는 바람에 미래로 가는 다리가 끊어져 버린, 그 앞에서 주저앉아있는 아이처럼 측은해 보였다. 마침, 우리 집 주변에는 이제 막 둥지를 옮긴 공공기관과 회사들이 건물을 세웠고, 인재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있을까. 자신감을 놓아버린 그 녀석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이력서 써보자! 스펙보다 낮춰서 써도 괜찮아. 그게 시작이 될 수 있잖아.'


덜컥, 선한 인상 때문이었는지 동생은 합격!이라는 단맛을 보았다. 단맛의 결과는 어땠을까? 까칠하고 예민한 누나, 걸음마를 뗀 첫 조카, 영원한 술친구인 동갑내기 매형과 함께 사는 신박한 동거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나름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해 주기 위해 맨 끝방에 보금자리를 마련토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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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면서 서른이 넘은 동생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는데, 사계절이 지나도록 보일러를 틀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한 겨울에는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얇은 이불 한 채를 덮고 자는 것이 아닌가. 호오옥시라도 누나 살림에 부담을 줄까 걱정이 되어서 그랬을까 3초 정도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열이 넘치게 많은 체질이었다고. 사랑이란 없는 거니, 우리 사이에.


1년이라는 시간을 지내고, 동생이 다시 독립하기까지. 난 더 많은 음식을 해주었다. 가끔은 동생에게 '찬이야~'하고 첫째 이름을 부르거나, 찬이에게 '청일아! 이놈 시키!'하고 호통을 치기도 했으니. 나에게 동생은 아들과도 같은 존재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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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대충 만들어도 음식이 참 맛있어! 열심히 하지 마! 그냥 대~충해."

이 말에 취해서, 먹는 모습만 봐도 예뻐 보이기도 했고. 서늘하게 싸움을 주고받던 나와 동생의 20대, 마지못해 끓여 바치던 라면이 '참 얄미운 맛'이었다는 걸, 오늘에서야 추억해본다.


세월은 흘러 지금 나는 경기도에, 동생은 충청도에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이따금, 음식 솜씨를 자랑하려고 특별한 것들을 만들어 오는데, 이 놈이 그때 철없던 그 녀석인가 싶고 내 마음도 그새 많이 컸다는 걸 느낀다. 내가 외지에서 향수병을 톡톡히 앓고 있을 때, 녀석은 흠뻑 한 내 울음을 담아주는 스펀지가 되어주었다가. 내 두 아이들의 베개가 되어주기도 했고, 회사와 집밖에 모르는 매형에게 돈독한 친구 사이가 되어주기도 했다. 참, 고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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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지난 30년은 부모의 사랑을 애타게 바라는, 치열한 경쟁 상대였고. 또, 부딪히면 큰 불이 날까 서로를 피하기만 했던 앙숙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워했던 마음 또한 사랑의 서툰 표현이 아니었을까, 조금 더 성숙한 나이가 되니, 이제는 혹여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봐. 연락을 자주 안 한다. 큭!


잘 지내자.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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