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야구는 봄하고, 여름에만 하는 거야?"
"우리는 왜 가을에 야구장에 갈 수 없지? 그럼, 봄에 가자!"
여름이 무르익고 가을이 손짓할 그 무렵이 되면, 남편과 나는 이런 불평들을 늘어놓았다. 왜 내가 응원하는 팀은 시즌을 반만 뛰는 거 같냐고. 한국시리즈는 언제 나가볼 것이냐고. 그랬었다.
지방에서 회사를 다니는 남편은 서울로 출퇴근을 했지만, 따로 휴가를 내지 않으면 야구장을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나 또한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업이니, TV로 즐길 수밖에. 한 때는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넷이서 개막식에 가보자고 그때를 꿈꿔보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 사랑하다 못해 깨물어주고 싶은 두 아들이 태어났다. 1년에 사계절이 있기는 한 건지, 내가 마치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는 것만 같은 어질한 시기를 겨우 이겨냈던 그 무렵이었다. 두 아이가 혼자 걷고 말도 제법 잘하게 되니까, 슬슬 나들이 욕심이 났다. 5살, 3살이 된 아이들이 첫 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여보, 야구 보러 갈까?"
아, 정말 낭만이 뚝뚝 떨어지는 달콤한 제안. 몇 해를 지켜봐도, 우리가 애정하는 팀은 언제 가을 야구를 할지 모르니 개막식에는 꼭 가보자 싶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외쳤다. '살아남아야 한다! 치열한 예매 전쟁에서~' 그리고, 신은 우리에게 직관을 허락했다. 참으로, 자비로우신 분.
충청도에 살던 시절이었으니까, 광주까지는 차로 3~4시간쯤. 두 아이를 태우고 차로 떠나는 최장거리 여행이었다. 우리는 두 녀석이 차 안에서 어떤 똥강아지 짓을 할지 상상 따위는 저버린 채,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무언가를 예측하려고 하면, 건방져지는 육아 스릴러. 지지고 볶고 달래고, 팔짝 뛰면서 예상 시간보다 1시간은 더 걸려서 도착했나 싶다. 차 문을 빼꼼 열고, 발 한 짝을 내디뎠을 때! 그 짜릿함. 세이프~
지금은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내 나이가 한 열 살쯤 왔었던 이곳은 광주 무등경기장이라고 불렸던 것 같다. 야구를 참 좋아했던 아버지와 아이들을 위해 야구 룰을 배우신 엄마, 뭣도 모르고 그냥 따라온 나와 동생. 가끔 잠실 야구장에서 해태와 LG, 혹은 OB의 경기가 열리면 이따금씩 응원하는 맛에 쫓아다녔었다.
30년 전쯤, 어느 봄날이었던가. 광주에서 "해태"의 더블헤더 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에, 부모님은 광주행 비행기표를 예약하셨다. 학교에 조퇴를 하고, 김포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광주 공항까지.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어리둥절했었다. 이내 곧, 야구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경기 시작 전부터 들썩들썩 응원 소리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스포츠 경기라는 게 참 치사한 게, 홈팀 위주로 응원전이 펼쳐지니까 잠실에서는 원정팀을 응원하는 내가 살짝 주눅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홈 그라운드에 오니 '여기가 내 세상이구나!' 어깨가 들썩였다. 그날 경기는 1승 1패였고, 우리 가족은 서울로 돌아오는 완행열차에서 깊이 잠들었던 기억이 새록 난다. 나에게 광주 야구장은 어린 날의 추억이 서려있는, 그런 곳이었다.
세월이 지나 해태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이제는 '기아'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졌다. 하나 커밍아웃하자면, 해태의 선동렬 선수와 내 이름의 성 씨인 '선'이 같은 본이라는. 묻지 않아도 알려주는 친절한 내 맘대로 안내 서비스. 어쨌든, 정말 우연의 일치로 남편과 나는 같은 팀을 응원하고 있었고 어렴풋이 야구 룰을 알고 있는 나와 제법 대화가 잘 오갔었다.
그때의 추억을 안고, 다시 찾은 2018년 봄. 관중석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꼬꼬마였던 시절, 무뚝뚝한 아빠와 가게 일로 항상 바쁜 엄마가 우리 남매 손을 꼬옥 붙잡고 왔던 그곳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두 아들을 데리고 내가 '부모'가 되어 이곳을 다시 온 것이 벅차서였을까. 오래 묵혀둔, 머릿속 깊숙하게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을 정도로 들춰보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라서였을까. 그렇게 난 잠시 필드를 바라보면 울었던 것 같다.
물론, 그 감동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두 아이가 옆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개막식 행사 노래에 맞춰 흥겹게 궁둥이를 씰룩거리면서 '피자' 한 조각을 달라고 하는 둘째를 케어해야 했으니까.
'금쪽같은 아이 둘 앞에서 감상에 젖는 건, 역시 사치였어. 췟.'
아주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경기를 마칠 때까지 드러눕지 않아 주었고, 난 모처럼 응원봉을 흔들어대며 목청껏 소리를 질러봤었다. 그건, 기쁨의 환호이기도 했고, 육아 세상에서 잠시 벗어난 것만 같은 착각에 취해 내지른 괴성이기도 했다. 다들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소리에 내가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면 어떠하리. 나의 격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그들답게 개막식 경기도 참 잘 졌다.
그날 이후로 난 야구를 안 보고, 관심도 끄고 살고 있지만. 지난해 코로나 19 때문에 야구 경기가 좀처럼 열리지 못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웠다. 왜냐하면, 2020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아주 잠시나마 '가을 야구'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었고. 잘 지는 팀이라고 하더라도, 팬심에 '혹시나 해서' 빡세게 응원하는 맛도 있는 거니까.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차이가 큰 법이니까.
다시 봄. 올해는 제한적이지만 야구 경기가 열리고 있고, 남편은 여느 봄과 같이 퇴근 후에 휴대폰 속 작은 화면으로 경기를 들여다본다. '아!' 하는 탄식과 '예!' 하는 탄성을 오가면서, '역시'하고 지는 날이 더 많지만. 어제는 문득,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탁 트인 야구장이 그리웠다. 아마, 우리 남편도 그립겠지. 그날의 그 함성 소리가.
이 봄이 다 지나가도, 가을 야구의 꿈은 굳이 갖지 않는 게 좋을 테지만. 내년에는 개막식에 다시 가볼 수 있지 않을까. 추억과 희망을 함께 마음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