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너를 향한 짝사랑을 끝낼게.

by 별빛서가

시간이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난 요즘 '나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난 원래 좀 게으르고, 시간 개념이라고는 1도 없는 지각쟁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약속을 하면, 가장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그들의 애를 태우기도 했고. 대학 때는 1교시를 경멸할 정도로, 어쩌면 아침이라고는 없는 생활을 했다. 그러나 밥벌이는 해야 하니까 직장 생활은 또 용케 해나가긴 했는데, 10분이라도 일찍 도착하는 법이 없었다. 마감 있는 일을 하면서도, 출근 시간은 늘 9시에 걸쳐있었다.


'시간 엄수'에 대한 강박이 없던 나도,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에 길들여졌다. 정부 기관에서 만드는 어린이 신문을 운영하다 보니까, 전국 방방곡곡 안 가는 곳이 없었고 교통 상황을 대비해서 움직여야 했다. 이 와중에 아이들을 인솔해야 하니 현장에 먼저 나가는 것은 기본이요, 스케줄에 맞에 딱딱딱! 진행해야 하는 부담감이 항상 자리했다. 그런 일을 5~6년쯤 하다 보니, 시간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 러, 나.

엄마가 되니까 시간이 내 의지와 다르게 흘러갔다. 아이가 먹고 자고 깨어나는 패턴에 맞춰서 내 삶이 움직였다. 이렇게 자주적이지 못한 삶이라니! 자그마한 녀석 인권을 지켜주려다가, 정작 내 인권은 유린되는 매일매일. 때로는 분노했고, 때로는 울부짖었다. 도대체 내 시간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고. 그래놓고 아이를 하나 더 낳았다. 미련한 것인가, 욕심이었던 건가.


두 아이를 낳고 나니, '시간'이란 것이 내 인생 어디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애매한 존재가 되었다. 어쩌다 딱딱딱 계산에 맞춰 외출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 싶으면 아이들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몸을 배배 꼬았다. 그뿐인가,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나의 신성한 식사시간은 전혀 보장받을 수도 없었고. 하소연을 더 했다가는, 모성애에 가뭄이 들 판이다.


고맙게도, 그 시간들을 야금야금 먹고 아이들은 성장해 나갔다. 어린이집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는 사이, 나에게도 '시간'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소중하고 값진 녀석을 어떻게 써야 할까? 돈이라면 통장에 넣어두고 푼돈 이자라도 받아먹을 텐데.... 아껴둔다고 쌓일 턱이 없으니 한동안은 사람들을 만나러 미친 듯이 다녔다.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하루 만에 왔다 가기도 했고, 더욱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을 때는 어떤 것이든 닥치는 대로 배웠다. 논술지도사, 독서토론지도사, 영어스터디, 독서모임....... 하루를 1분 1초까지 꽉 틀어쥐고 놔주지 않을 셈이었다. 시간을 구속하면서 난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게 2년이나 보냈을까. 어느 날,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꽁꽁 잘 묶어두었던 내 시간을 다 풀어헤쳐 버렸다. 나의 일, 꿈, 욕망들을 나름 예쁜 도시락 통에 잘 나눠 담아서 호시탐탐 꺼내 먹을 요량이었는데. 커다란 양푼에 다 섞어서 버무려져 버린 듯 모든 게 엉망처럼 느껴졌다. 너와 나의 구분이 없어진 사이 시곗바늘은 참 잘도 돌고 돌았다.


난 다시 욕심이 생겼다. 시간이란 녀석을 어떻게든 갖고야 말겠다고. 깊은 밤만 조용히 소유하고 싶었는데, 가끔씩 때를 잊고 새벽안개를 맞이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수면 시간이 보장받지 못했으니 늘 피로했고 하루가 괴로웠다. 그리고 과감히 내 인생에서 절대 하지 않았을 것만 같았던 새벽 기상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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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도 전, 다섯 시 반쯤 눈을 떠서 매일 아침 새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했다. 처음 며칠은, 내가 깨어있는 것인지 아닌 건지 구분도 가지 않았고, 굳이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은 회의감도 들었다. 그래도 반복하고 반복했다. 어떤 날은 새벽에 걷기나 달리기를 시도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실내 사이클을 구르며 잠을 화알짝 깨워보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나의 게으르고만 싶은 관성을 물리치고, 일찍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을 느꼈다.


한평생 늦잠만 자던 딸만 봐오던 엄마가 "너 웬일이니?!"라고 깜짝 놀라실 정도로 나는 조금 변했다. 밝은 아침을 마주해서일까, 쉽게 어둠에 빠지지 않고. 그렇다고 해도, 다른 때보다 더 빨리 나를 찾아갔다. 그렇게, 새벽은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욕심에, 장바구니를 꽉꽉 채워 넣듯 한정된 시간에 이것저것 마구 구겨 담아버리고 싶었다. 새벽이 지나가는 것이 아까워서 안달이 났던 때도 있었다. 하루에 쓸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낮 12시만 되면 방전되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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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나보다 더 시간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샘이 났나 보다. 먼지까지 탈탈 털어서 시간을 써버리고 난 탈진해버렸다. 그제서야 겨우 시간을 놓아주는 법을 깨달았다. 최근 며칠 무기력한 상태에 있다 보니까, 시간에 대한 나의 짝사랑 혹은 집착을 멈춰야 할 것만 같았다. 좀처럼 곁에 진득하게 있어주는 법도 없고, 잠시 머무르는 척하다가 금방 지나가버리는 무심한 녀석이니까. 내 손에 꼭 쥘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흘러가는 대로 내가 그 순간들에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두는 건 어떨까 싶다.


그래야 시간과 내가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을 테니까. 쫓지도 말고, 쫓기지도 말고. 딱 그만큼만 거리를 유지하면서 오래 걸을 수 있게. 그렇게 좀 살고 싶다. 여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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