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by 별빛서가

5월의 신부를 꿈꿨었다. 결혼식에 대한 로망 따윈 없었는데, 굳이 그때가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아 고집을 부렸다. 목숨 걸고 노처녀 탈출을 바랐던 거였을까. 한 해 중 가장 큰 행사가 있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5월에 굳이 결혼식을 올렸다. 회사에서는 욕과 축하를 반반씩 말아서 먹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고.


누가 가정의 달 아니랄까 봐, 꾸역꾸역 결혼기념일까지 챙겨 먹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매해 5월은 마음이 붕~떠 있는 것만 같은 방황의 시기이기도 하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무사히 지나가고 나면 '결혼기념일'이 찾아오니까. 그 모든 행사가 끝이 나야, 6월이 찾아오니 몸도 마음도 참 바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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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무엇 때문인지, '글쓰기' 방황이 시작됐다. 블로그에 한 땀 한 땀 글을 써서 올리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손끝에 망설임이 가득했다. 마치, 한여름에 봉숭아 물 들일 때처럼 열 손가락의 끝마디를 꽁꽁 묶어둔 기분이랄까. 머리도 마음도, 손끝이 붉게 물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런 핑계 삼아 글쓰기를 슬쩍 미뤄버렸다.


다른 이들의 글을 보는 것도 싫어서, 책도 덮어버렸다. 읽는 행위조차 밀어낼 만큼 나한테 단단히 삐쳐있었다. 그나마 독서모임이라도 하니까, 입이라도 한번 뻥끗! 하려면 '읽어야지!'하고 나를 다독였다. 그래서였을까, 지난번에 #다크호스 를 읽고서는 남의 다리 긁는 소리만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 '말'이긴 한데, '의미'는 빠져버린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볼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잠시 정신이 나갔던 걸까. 이번 어버이날에는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오열을 했다. 와, 이런 미친 효녀를 보았나. 사실 얼마 전 사건이 있어서, 친정아버지에게 무척 서운하고 화가 나있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던 참이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아버지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라고 몰아세웠고, 그 말씀이 부당하다며 대들었다가 뒈지게 혼났다. 마흔 살이 다 되어서 혼구녕이 나니까, 억울하고 울음이 차올라서 참을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아버지께 서운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서 폭발 직전이었는데, 엄마가 심지에 과감하게 불을 붙이셨으니 터져버릴 수밖에. 울고 있는 나에게 다독거림은커녕 "왜 우냐?"고 꼬집는 엄마의 말씀에 울분이 더 격해졌다. 이러다 애 잡겠다 싶었는지, 엄마도 한풀 마음을 꺾으셨지만. 나도 참, 성질머리 고약한 건 아버지를 똑닮은 게 분명하다.


나의 광기는 또 다른 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잔혹한 5월 같으니라고. 동생 내외가 모처럼 식사 초대를 해서 다녀왔는데 별것도 아닌 일에 언성을 높였다. 그냥 밥 먹고 술 한 잔하고, 경제 얘기, 사는 얘기 도란도란 분위기 좋게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 자식 간에도 꺼내지 않는다는 '정치'를 밥상에 올린 게 문제였다. 나와 성향(?)이 다른 남동생과 굳이 '정치'로 자존심을 건 것이다. 둘 다 불과 불같은 성격이라 으르렁~하는 순간, 누구 하나 발을 빼야 하는데 이날은 뭐에 홀린 듯 물러서질 않았다. 그러니 빠직~하고 금이 갈 수밖에. 결국에는 '나'를 말리려던 남편이 욕바가지를 뒤집어썼지만, 그걸 계기로 동생과 나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눈이 돌아가면 서로 물겠구나, 싶었다.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지난 주말에 계획했던 '호캉스'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극소량의 체중 감량과 옷 가게 점원의 말 따귀로 심신의 안정을 찾은 후, 그날만을 기다렸다. 거지 같은 5월의 전환점이 될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한껏 들떠있었다. 여행 전날에는 미용실에서 고급 커트를 예약해 두었고, 한강에서 새벽 뜀박질을 할 생각에 두근두근 댔었다. 진짜로.


미용실에 가려고 콧구멍 씰룩이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는데,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 왜?! 특히 담임선생님께 이른 아침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좋은 소식은 아닐 텐데....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준이 어머님. 준이가 유치원에서 넘어져서 팔을 좀 다쳤는데요. 보건 선생님이 보시기에 부러진 것 같지는 않은데, 아이가 많이 울었어요. 팔이 점점 부어올라서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와주실 수 있을까요?"

"아.......... 지금 갈게요."


골절은 아니라고 했으니까, 근육이 놀란 정도겠거니 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고, 검사 결과는 '팔꿈치 골절'. 또르르르.....


의사 쌤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치료 과정을 설명해 주셨다.

"여기 사진에 보이는 부분이 부러진 건데요. 성장판 주변이라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전신마취로 진행이 될 건데요. 수술 후에는 한 달 정도 깁스를 해야 해요. 그런데 오늘 당장 할 수 있을지, 월요일에 할 수 있을지는 체크해 봐야 할 것 같아요. MRI도 찍어야 하니까, 금식 시간 지켜주셔야 하고요......(네, 뭐라고요?!)"


수술, 전신마취, 입원.... 하아.

'지금 내가 호캉스를 머리에 떠올리면 정신 나간 년이겠지?'

입가에서 욕이 맴도는데 뱉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남편을 바로 호출하고,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왜, 그날따라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지. 슬픈 예감은 틀린 법이 없다는 걸, 뉴정군은 천재지변이라고 표현했지만. 이게 무슨 벼락 맞을 일이냐고오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금요일 밤늦게 입원을 결정하고, 아이는 5박 6일을 병원에 있었다. 수술은 꽤 간단한 편이라서 1박 2일 정도면 되는데, 하필 주말을 앞두고 입원을 해서 처음 3일 동안은 담당 교수님 얼굴도 못 본 채 시간을 보냈다. 입원을 위해서 남편과 나, 둘째까지 줄줄이 코로나 검사도 하고. 보건소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코를 팍! 찔린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안전'하다는 '음성' 결과도 받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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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위로가 필요했다. 푸념하듯 나다운님 필사방에 아이 사고 소식을 전했다. 엄마들의 마음은 다 비슷하기 때문일까. 한 마디, 한 마디 따스하지 않은 말들이 없었다. 정작 엄마인 나보다도 더 아이의 안부를 걱정하고, 응원해 준 분들 덕분에 정신을 일찍 차릴 수 있었다. 내 마음이 너무 지옥 끝에 가있어서, 어디에 털어놓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런 마음까지 알아주고 다독여주니,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 아이가 퇴원하는 대로 글을 써야지. 좋은 글로 마음을 갚아야지, 다짐했다. 내 눈에는 보잘것없는 글이라도, 귀하게 읽어주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


나의 마음이 한껏 넓어졌는지, 첫째를 돌봐주러 온 시어머니와 인생 상담도 해드렸다. 책은 많이 읽어서 뭐 하나, 이럴 때 써먹어야지. 신세 한탄과 희망, 자랑을 수시로 오가는 시어머니의 말씀들을 잘 듣고, 격하게 공감도 해드렸다. 남편이 둘째 병 수발을 들고 있었으므로, 난 집에서 나의 몫을 했던 것이다. 시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행 온 기분이라며 어깨가 들썩이곤 하셨다. 한 달에 한 번씩 오고 싶다는 희망도 전하면서....... 네?! 어머니... 또르르르...


나의 남은 5월은, 서울에 있는 집의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엄마가 이사를 가실 예정인데, 7년 만에 그 집의 문턱을 밟아보는 느낌이 어떨지. 내 향수병의 근원인 그곳을 다시 들어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찡긋할 것 같다. 그동안 눈에 선했던 그 모습이 그대로일지. 이 밤에 또 울컥해본다.

나의 집,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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