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자주 즐겨 쓰는, 혹은 습관처럼 쓰는 말들이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편안함과 위로를 받지만, 또 어떤 이와는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인데 '기 빨리는 기분'이 든다. 내 마음이 건강하고, 곧게 서 있을 때에는 상대의 불평이나 힘든 말들도 경청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흔들리고 출렁댈 때에는 부정적 단어 한두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다.
올해로 결혼 생활 9년 차.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함께 물들어가는 사이다 보니, 가끔 그에게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라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은 갈등 상황에서 불편한 말들을 듣게 되는 경우이고, 난 흠씬 놀란다. '이거 뭐지?'
평소 나의 말 습관이 어떤지를 보려면, 아이와 싸울 때를 돌이켜보면 된다. 나의 아이가 언제 쉽게 화를 내는지, 그때 쓰는 말들은 어떠한지. 반대로 기분이 좋을 때는 어떤 표정과 말들로 엄마의 마음을 녹이는지 등. 그러고 보니,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나'를 거울처럼 비춰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가끔, 나에게서 친정 엄마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열심히, 부지런히, 애쓰면 살 때도 있지만 어린 시절 주로 내가 상처를 받았던 말들을, 거침없이 아이한테 뱉어버리고 나면 갑자기 머리가 띵~해진다. 무척이나 아팠던 말들이 다시 내 입에서 독이 되어 뿜어져 나올 때면 '내가 엄마가 맞긴 한가?'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기도 하고.
'이렇게 살 수는 없다!'하는 마음에 부모교육 전문가이신 #파인트리 님께 개인 상담을 부탁드렸다. 난 항상 엄마가 처음이니까 서툴 수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모르면 알아가면 되는 거니까. 배움을 통해, 공감을 통해 더 나은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어쩌면, 내 부모에게서 받은 부정적인 것들을 나에게서 잘 필터링해서 좋은 것들만 주고 싶은 심정이었을지도.
몇 회차에 걸쳐, 내가 겪는 갈등 상황들에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대망의 '부부의 대화' 시간이 다가왔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랑 '함께' 성장하고 있으니까, 부부간에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도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육아에 늘 진심인 남편은, 새벽 시간에 하는 상담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참여하겠노라 협조를 해주었다.
약 1시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그중에서 나의 머리와 마음을 울렸던 부분에 대해서 공유해보고자 한다. 파인트리님은 #존가트맨 박사의 연구 중 '부부 관계를 망치는 4가지 대화 습관'을 알려주었다. 살아가다 보면 부부가 서로 충돌하는 일이 생기는데, 이것이 이혼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싸움의 '이유'보다는 '방식'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갈등을 일으키는 대화는 비단 부부 사이뿐 아니라, 부모와 자녀 간에서도 유용할 수 있다는 팁도 주셨다.
'난 부모로부터 어떤 말들 때문에 아프고 힘들었을까. 남편에게 어떤 말로 상처를 주었을까. 아이들은 어떤 말 때문에 내가 미웠을까?' 등. 또 오만 가지 생각에 머리가 딩~했다.
"넌 왜 항상 정리를 안 하니?" "넌 한 번도 엄마한테 효도를 한 적이 없어" "네가 자꾸 밤에 먹으니까 살찌는 거야."
오랜 시간 듣고 듣고 또 들었던 말들이었다. 분명 나의 어머니는 '나의 발전'을 위해 하신 말씀이셨을 텐데... 나이가 드니, 마치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저는 살림을 잘 못해서요."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되고 싶은데, 항상 속만 썩였네요."
"살이 찌니까,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부끄러워요."라는 말들. 내가 습관처럼 달고 살면서도, 이 말을 내뱉는 자신이 싫었다. 말을 할수록 내가 작아지는 느낌 때문에 괴로웠다.
이런 말들은 남편에게도 이어졌다. "당신은 왜 맨날 술이야?" 하고 자주 비난했다.
파인트리 님은 그 말의 이면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나에게 물었다.
"남편이 아이들을 재우고 한잔 마시는 게 낙인데요. 다른 취미가 없거든요. 그런데, 밤늦게 먹으면 속도 안 좋을 거고, 다음날 회사에 갈 때도 컨디션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걱정이 돼요. 혹시라도 안 좋은 식습관 때문에 건강이 해칠까 싶고....." 선한 의도가 분명 담겨있었는데, 내 입에서는 '비난의 한 문장만' 발설이 된 것이다.
아이에게라고, 뭐가 달랐을까. 미안했다.
비난의 말을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언제 맨날 그랬다고. 그런 당신은 잘했어?"라고. 또르르.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날카로운 창으로 변해 상대방의 가슴을 쿠욱 찌른다.
'어쭈? 나를 아프게 했다 이거지. 질 수 없지, 뭐 다른 말 없나? 잘못한 거 없었나?'하고 비난할 거리를 찾았다.
한두 마디로 끝날 것 같았던 비난의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만 준 채 끝이 나버릴 때도 간혹 있었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라는 아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 때도 있고.
"우리 싸우는 거 아니야~ 대화 중이야!"라고, 정말 티 빡빡 나게 좋은 부모인 척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가끔 내가 엄마에게 반감이 들 때를 떠올려보면, 비난 섞인 말을 들은 후였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 후로는 '입을 꾸욱 닫는걸'로 반항을 한 것도 같고.
감정이 틀어지다가 내가 밀린다 싶으면 갑자기 상대를 깎아내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싸움에는 진전이 없으면 기를 꺾어버리겠노라! 무시하는 말을 던지게 된다. 어려서부터 칭찬이나 공감을 많이 받고 자라지 않은 나는 '인정욕구'에 목이 말라서, 무시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하긴, 누군들...
일 년에 한 번 정도, 집안 행사처럼 남동생과 크게 다툴 때가 있다. 눈이 뒤집어지게 언성을 높이다가도 흥분이 가라앉으면 '우리가 왜 싸웠을까?'하고 더럽게 쪽팔린 순간들이다. 동생과 내가 불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발화점 같은 상황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경멸'하는 말들이 범인일 때가 많다.
"니가 뭘 안다고 그래?"
"그럼 누나는 얼마나 잘 아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공부 좀 해라."
아..... 이렇게 글로 쓰면서도 너무 창피하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내 삶과 하등 상관이 없는 조 모씨와 윤 모씨를 가지고 싸웠으니. 정치적 견해가 크게 다른 것도 아닐 건데, 술 먹다가 불이 붙은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둘 다 '인정 욕구'에 목이 마른 사람들일 텐데, 작은 칭찬 한번 하지 않고 살았다.
"oo야, 고마워." 하고 남동생에게 뜬금없이 카톡을 보내면, 내가 미친 줄 알겠지만.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 손발이 오그라들다가 소멸할지라도.....
'저 말씀이신가요? 담쌓기 전문가입니다만.....'
어쩌다 남편에게 불만이 생기면 대체적으로 이 방법을 썼던 것 같다. 철이 없던 때야, '너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치지만, 결혼 생활이 10년이 다 되어가도 한 번쯤 꼭 그랬다.
갈등이 섞인 대화를 하다가, 비겁하게 '전화기 꺼놓기' 전술을 자주 썼던 것 같다. 마치 똑같이 링 위에서 펀치를 주고받아놓고, 나 혼자 도망을 가버리는 것처럼. 홀로 남겨진 남편은 '얘 어디 갔니?'하고 나에게 전화를 걸면, '전화기가 꺼~져 있어!...'라는 차가운 음성만 확인할 뿐이었다.
상황을 해결하기보다 외면하고, 감정을 끊어버리는 방식이 참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고치기가 쉽지 않다. 감정이 기복이 심한 나는, 늘 위의 4가지 단계를 잔혹하게도 남편에게 적용할 때가 많다. 아, 아직 함께 살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다. 괜히 쫄린다.
난 굉장히 대단한 인간이었다. 부부의 관계, 혹은 타인과의 관계를 망치는 4가지 기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또르르...
파인트리 님과의 상담을 마치고, '아, 난 진짜 생각도 하기 전에 말부터 던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소에 의식하지 않고 썼던 말들이 부정적인 나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점검하지 않고 넘겼더라면..... 마흔에 졸혼 할 뻔했다'라고...
그리고, 어제는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 진심을 전했다.
"엄마, 고마워요. 애 많이 쓰셨어요. 나의 엄마로 사시느라고.
이제는 ooo라는 엄마 이름으로 사셨으면 좋겠어요. 난 잘 살고 있으니까. 자식 걱정은 그만하시고요.
난 가끔 엄마가 나에게 하는 말들 때문에 아팠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말들이 모두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았네요.
엄마도 다정하고 따스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사셨을 테니까.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서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셨을 테니까.
난 이제 괜찮으니, 엄마의 인생을 사셔요.
고맙습니다."
뜬금없는 고백에, 엄마는 무장 해제되셨는지 강철같이 단단했던 목소리가 떨리시는 듯했다. 수화기 건너로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우리 엄마도 위로가 필요했구나!' 싶었다.
한 번도 '감사하다'라는 말을 내 입을 통해서 전해본 적이 없었는데, 낯간지러워도 해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내 곁에서 건강하게, 내 뒤에서 든든하게 살아계실 때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