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숟가락을 빼앗겨본 적 있는가?

by 별빛서가


"여보, 편육 먹을래? 막걸리에 한 잔?!"

어젯밤에는 남편이 나에게 야식을 권했다. 혼자 먹기 심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안 먹을 걸 알면서 물어본다. 여느 때 같았으면, "그럴까?"했을 텐데, 요즘에는 영~ 입맛이 없다.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에게 음식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무엇을 먹을까?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렸고. 메뉴판을 보면서 어깨춤을 추는 날도 여럿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었다. 그래서였나, 20대에 처음 '자유'라는 것을 맛보았을 때에는 정처 없이 떠돌면서 '먹었다.'


그렇게,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겨도 난 '날씬'했다. 깡마른 편은 아니었지만, 55사이즈를 넘지 않는 보기에도 적당한 몸이었다. 며칠만 적게 먹으면 몸무게는 제자리로 금방 돌아왔으니까, 큰 걱정이 없었다.


요즘과 정반대로, 어렸을 때는 징글맞게도 뭘 안 먹는 아이였다.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큰 수술을 했는데 어린아이들에게서 자주 일어난다는 '장중첩'이 원인이었다. 지금은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지만, 80년대 초반만 해도 장이 꼬였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행인 건, 부모님은 '이러다 죽겠구나'싶어서 응급실에 데려갔고 '난 살아냈다.' 그 후로 먹는 것을 유독 조심해야 했는데, 난 '먹는다'라는 행위 자체가 싫었다. 오죽하면, '안 먹어'가 별명이었을지도. 지긋지긋하게도 먹지 않아서, 엄마는 '밥숟가락'을 들고 다니면서 '한입만!'을 외치셨다.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알 턱이 없던 나는, 그것이 나의 권력인 양 "안 먹는다고~~~~~~" 하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 덕에 내 키가 크다가 말았나 보다.


중학교 무렵이었나. 누군가에게 '난쟁이 똥자루'만 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놈의 '난쟁이'와 '똥자루'의 조합을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 소녀에게 갖다 붙일 일인지, 뭔 뜻인지도 모르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사람 몸을 왜 싸서 모으지도 않을 똥자루에다가 비유를 하냐고. 나의 예쁜 얼굴은 봐주지도 않고! 아마도 음식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게 그때쯤인 거 같다. 난 꼭 크고 말 것이라고.


그래서 학교 쉬는 시간마다 매점을 드나들었다. 엄마가 싸준 자연식 도시락은 내 식욕을 돋우기에 부족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배 터져 죽는소리다만) 라면과 떡볶이로 배를 채웠다. 엄마가 알면 노발대발 욕 펀치가 날아오겠지만. 난 내 도시락을 친구들에게 넘기고, 소시지와 핫바, 햄버거로 먹는 즐거움을 찾았다. 전혀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건 안 비밀.


내가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20대부터였다. 제대로 입이 터졌다. 나름 성인이 되었다고, 서울 바닥을 여기저기 자유롭게 들쑤시고 다닌 것이다. 꽃치마에 하이힐을 사랑했는데, 너무 먹고 다니니까 가끔은 옷이 꽉 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면 엄마가 귀신같이 알고, "너 코를 보니까, 살이 쪘나 보다." 하고 나를 자극했다. 그 말은, '너는 살이 찌면 코부터 못생기고 커지니까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아, 그 코를 내가 만들었냐고요.


징글맞게도 안 먹던 내가 하도 먹고 다니니까, 엄마도 겁이 나셨나 보다. 하긴, 옷이 안 맞으면 '새 옷을 사야겠다'거나 '살이 쪄서 짜증 난다'라는 등 예민함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으니 엄마 입장에서도 '지랄'을 멈추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엄마는 '밥숟가락을 뺐었다.'


와, 진심으로 먹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 숟가락이 엄마 손에 들려있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너무 손이 빨라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엄마는 "얘, TV에 나오는 oo를 봐라. 얼마나 날씬하고 예쁘냐. 우리 딸도 저렇게 예쁜 옷 입으면 좋잖아."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나, 연예인 할 것도 아닌데?! 굳이 숟가락까지 빼앗길 일인가.


반항의 아이콘이었던 나는, 더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얼큰한 라면에 사이다를 들이켜고, 과자 한 봉지를 한자리에서 까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뿐인가, 허전함을 달래줄 달달한 아이스크림까지 부시고 나서야 '아, 잘 먹었다'를 외쳤으니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는 최고였다. 그렇게 실컷 처먹고 나서는... 또르르...


나에게 결혼은 '맘대로 먹기' 위한 좋은 탈출구이기도 했다. 데이트할 때부터 참치 회에 소주는 꼭 한 번씩 먹었고, 돼지껍데기, 감자탕, 닥치는 대로 즐겼다. 신혼 때에는 여행을 다니면서 마구 먹어댔는데, 그 습관이 둘째를 낳고 나서까지 이어졌다. 특히 배고플 때 음식을 먹으면 눈이 돌아간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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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차곡차곡 살을 쌓아올렸다. 통통해진 내 모습을 친정 엄마가 허락할 리가 있나. 마흔이 다 된 딸의 밥숟가락을 빼앗을 기력은 없지만, 숟가락을 내려놓게 할 눈빛과 말 한마디는 품고 계셨다.


"먹고 싶니? 그게 입에 들어가니? 다 아는 맛인데, 그렇게까지 먹어야 하니?"


서러웠다. 살이 좀 찌면 어때서. 애 키우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사는데(야식은 빼고...) 그냥 인정해 주면 안 되는 건가 속상했다. 그래서 친정에 가지 않았다. 어차피 좋은 말도 못 들을 텐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음식=살=외면"


음식을 먹으면 살로 가고, 옷이 맞지 않으니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엄마 말대로, 이건 내 모습이 아니니까. 스스로를 부정해보면서 거울도 멀리했다. 터질 것 같은 난쟁이 똥자루가, 꽃치마를 입은 듯 무슨 소용인가 싶어 꾸미지도 않았다. 굴을 파고 들어가기 딱 좋은 날들이었다. 고놈의 살덩이 때문에.


그런 나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2~3주 전인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이후로 식욕이 떨어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몸이 너무 아파서 먹을 기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 주 사이에 4kg나 빠졌다. 무언가를 먹기도 전부터 '혀끝에 맴도는 맛'을 상상했는데, 음식을 보아도 '맛'이 떠오르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커피 한 잔으로 때우거나 빵 한 조각, 허기짐을 채우는 것으로 괜찮아졌다. 안 들어가던 옷이 딱 잘 맞았고, 화장을 해도 꽤 봐줄만했다.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꽃치마 입고 나갈 생각에 들떴다. '먹는 것'은 점점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누굴 만날까? 어떤 대화를 나눌까? 어디를 갈까? 온통 신경이 바깥으로 흘렀다. 동굴에서 탈출한 곰이 사람이 되어가는 듯했다. 굴을 파고 들어갔을 때는 먹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세상으로 나오니까 수많은 호기심들에 생각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제는 '도서관 강의'를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이후 살이 더 찌고 나서는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렵고,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옷'이 맞으니까 한번 나서볼까 용기도 났다. 내가 손에 쥐고 있던 것들, 머릿속에 있던 것들, 그동안 외면했던 내 생각들을 하나둘 수면 위로 올리면서 '뭐 해볼래? 뭐든 하면 돼. 난 가지고 있는 게 많아!'라고 격려도 해보았다. 더욱이, 오랫동안 놓지 못했던 '남의 글쓰기'도 과감히 잘라냈으니, 더 자유로워졌다.


"먹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떨쳐내니,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난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아마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로 살아가면서 "밥숟가락을 빼앗겼다"라고 여겼던 것 같다. 낮에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제대로 먹지를 못해 허기졌고, 야식과 술에 많은 에너지와 돈을 낭비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위를 꾹꾹 눌러 담을 만큼 채워야 직성이 풀렸다. 늘어난 위의 크기만큼 더 많은 음식을 원했다. 아이들이 컸음에도.


잠시 음식에서 멀어져 보니까, 오히려 밥숟가락이 내 손으로 들어왔다. 내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배가 고픈 것인지, 어떤 맛을 내가 즐겼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거슨 마치, 동굴에 들어간 돼지가 사람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아, 돼지야. 미안.


어쨌든, 난 괜찮아졌다. 여전히 통통하고, 아이를 낳기 전에 입던 옷은 팔뚝 하나도 들어가지 않지만. 그래도 뭐, 상관없다. 지금 나에게 맞는 옷을 입으면 되니까. 또, 내 밥숟가락을 언제 어떤 곳에 들고 놓을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으니 쉽게 빼앗기지도 않을 것이고.


자, 이제 뭘 해서 콧노래 부르며 살아갈지, 고민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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