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있을 무지개를 찾고있다면...
지난해 여름에는 지겹게도 비가 많이 내렸다. 마치 물속을 걷고 있는 듯 습기가 가득한 날들이었다. 코로나19라는 상황도 갑갑한데,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우울함도 컸었다. 게다가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공간마저도 수해로 반은 무너졌었고, 많은 추억들이 떠내려갔다. 상실감까지 더해졌다. 1년에 한 번 정도 막돼먹은 손님처럼 찾아오던 여름 태풍도, 이름과 얼굴을 바꿔가며 몇 차례나 더 왔다 갔다. 살아간다는 것이 참 공포스러운 시절이었다.
계절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여름은 또 찾아왔다. '올 여름에는 마스크를 좀 벗고 살 수 있겠지'하고 희망했었다. 그러나, 여름 한가운데 놓여있는 작금의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마스크를 꼼꼼하게 써야 할 정도로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 심지어 가족들과의 만남도 어려워졌으니까.
무더위를 피해서 어딘가로 떠날 수도 없고, 누군가를 만나서 실컷 수다를 떨 수도 없으니 생활의 반경이 무척이나 좁아졌다. 아이들 원격 수업 챙겨주고, 삼시 세끼 밥 차리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이다. 그나마 작년부터 습관화하려고 했던 몇 가지들을 하면서 겨우 매일을 버텨내고 있다. 새벽 기상과 독서, 글쓰기, 소소한 운동까지. 내가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몇 가지 상징적인 행위들이다.
이런 답답함이 나만의 문제는 아닐 건데... 이유 없이 가끔 숨이 가빠질 때가 있다. 태풍처럼 숨이 휘몰아쳤다가 빠져나가버리는 불쾌한 기분. '아, 나 또 지금 벼랑 끝에 있구나!'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이다. 이런 힘듦을 친정 엄마에게도 토로해 보았는데, '애들 어릴 때는 다 그렇지.'라는 답에 별다른 출구를 찾지는 못했었다. 언제까지 턱 밑까지 갑갑한 날들이 계속될까...? 차라리 비라도 시원! 하게 내려줬으면.... 오죽하면 비를 기다렸다.
참, 사람 마음만큼 간사한 게 있을까. 비가 퍼붓던 지난여름에는 쨍쨍한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올해는 밤도둑처럼 비가 몰래 왔다 가니까 서운해진다. 새벽녘에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의 흔적만 살피는 것도 괜스레 아깝고... 도대체 무슨 마음인 건지. 어떤 날은 짧고 빠르게 퍼붓기도 했다는데, 집콕 중인 나는 비 내리는 풍경을 본 지가 오래다.
지난 주말이었을까. 아이가 핸드폰을 들고 나에게 와서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oo가 무지개 사진을 보내줬어요."
"어디 보자. 진짜네! 너무 예쁘다!"
그날은 전국적으로 무지개가 동시다발적으로 출현을 했는지, 내 핸드폰 단톡방에도 무지개 소식을 전하기 바빴다. 난 언제 마지막으로 무지개를 보았을까. 나의 무지개는 어디에 있을까. 있긴 할까... 잠시 생각했다.
오늘 오후에, 드디어 폭우가 쏟아졌다. 오랫동안 묵혀둔 목 디스크를 치료하러 병원에 다녀왔는데, 문을 나서는 순간 미친 듯이 비가 내렸다. 와! 대박! 이렇게 시원하게 쫙쫙 내리다니........ 근데, 나 우산 없는데?! 내 차는 저기 100미터 앞에 주차장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고. 시동까지는 리모컨으로 걸 수 있는데, 날 데리러 오지는 못하잖아. 뛸까, 말까. 5분 정도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아서, 최선을 다해 차로 뜀박질을 했다. 개운했다. 비를 맞고 나니까.
차로 10분 거리.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비가 그쳤다. 남편은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고, 허겁지겁 나도 그들을 따라서 배를 채웠다. 다시 단톡방에 올라오는 무지개 사진들을 보면서,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나도 오늘은 무지개를 직접 볼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에 휩싸였고, 핸드폰을 하늘을 향해 들이밀었다. 없다. 사방팔방 구석진 창문까지도 모두 찾아보았는데, 무지개는 없었다. 탑층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쓸데 없는 생각까지 해버렸다. 우습게도.
그런데, 창문에 대롱대롱 뭔가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거미였다. 아파트 16층 정도 높이에 거미라니. 내가 여기서 너를 발견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무지개 대신 거미라니. 거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살며시 달이 '이제 내 시간이야'하고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곁에는 석양의 붉은빛이 스며든 구름이 넓게 퍼져서 장관을 이루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이라니. 무지개가 아니면, 어떠한가. 내 눈이 이렇게 지금 호강하고 있는데...
'그래도, 괜찮다. 좋다. 지금'
지난여름,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 많은 비에 눈물만 따라서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놓지 않고 있었던 게 있었다. 나는 글을 놓지 않았다. 힘들면 힘든 대로 주저리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성취에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썼다. 그 흔적들이 차곡차곡 나에게 쌓여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 나는 글을 쓰면서도, 직장에서처럼 승진이나 성과를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19 상황이 작년 여름보다 훨씬 더 심각해져서 내 꿈을 좇는 일도 잠시 미뤄두었다. 폭우가 내리는 순간처럼, 사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비가 언제 그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1년 사이에 조금 더 나아진 것이 있다면. 비가 그친 다음을 기다리기보다는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무엇을 쓸까 생각하고. 그것만 꾸준히 하고 있다. 나에게 무지개가 찾아올지, 생각지도 못한 거미가 빼꼼하고 인사를 건넬지 알 수도 없다. 다만, 차곡차곡 쌓아온 오늘이 조금 더 나를 단단하게 채워주지 않을까. 내가 어떠한 속도로, 어떠한 모습으로 성장할지 가늠하기보다는 그저 야금야금 나아가고 있음을 칭찬해 주는 것.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올여름을 나고 싶고, 나고 있다.
이 여름도, 지나갈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