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젠가 글쓰기 안내자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어쩌면 글 짓는 행위를 10년 넘게 해온 것 같다. 무슨 일이들 10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면 '전문가'가 된다는데 난 여전히 자신이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내 글'을 쓰겠다고 일까지 그만두었다. 정작, 무엇을 쓸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래서 자꾸 허기가 지는 걸까? 오늘은 삼키지도 못할 음식들을 마구 채워 넣었고, 늦은 밤이 되도록 소화가 되지 않는다. 무척이나 더부룩함.
본디 글이라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 없고, 읽는 이마다 공감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라고 묻는다거나, 나의 글에 대해 '읽기 쉽고 공감이 간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직 내가 그런 조언이나 칭찬을 들을 자격이나 될까, 싶은 마음일 거다.
대학 시절, 어쩌다가 들어간 '문예 창작학과'에서 나는 무척이나 헤맸다. 합평 때 학우들의 표정을 보면, '이런 것도 글로 썼나?'라는 게 너무나 잘 읽히기도 했고. '시' 같은 경우는 출석 점수로만 어떻게든 학점을 따보려고 무단히도 애를 썼으니까. 그런 내가 감히 '소설'이라는 것을 썼었고, 다행히도 자비로운 교수님을 만나 졸업의 문턱을 겨우 넘겼다. 늘 '진부하다'라는 말을 들었기에, 창작은 어림도 없다고 스스로 선을 그었다.
학부 때 내가 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엉망진창인 글을 써대는 게 안쓰러웠는지 동기 오빠가 진심으로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분은 이미 20대 초반에 '시'로 등단을 한 시인이기도 했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들려주었다. 그때는 '라테는 말이야'처럼 좀 재수 없게 들리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나 안일했던가를 떠오르게 하는 말이었다.
"오빠는 말이야. 시로 등단을 했지만, 아직도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를 한편 쓸 때 한 달 동안 벽만 쳐다본 적도 있었어. 생각을 하고 또 하고, 어떤 표현을 쓸까. 나중에는 목이 뻣뻣해져서 돌아가지도 않았당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정감있게 들릴 법도 한데, 그다음부터는 끊이지 않는 자랑처럼 들려서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얼마나 숱한 밤들을 지새웠는지, 본인이 '글'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전해주는 말들이었다. 이제는 문학상도 받고, 교수님도 되었다는데... 난 참으로 건방졌다.
"응, 알겠어." 이 한 마디로 퉁쳤으니까.
'글이라는 건 그렇게 어렵고 피곤한 거구나.' 하고, 난 더 선을 분명히 긋기 시작했다. '문예창작'은 맞지 않는 걸로. 그리고 잡지사나 협회지 기자로 일할 무렵만 해도, 난 그다지 필력이 중요한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 다행인 건 좋은 선배들을 만나서, 기사에 어울리는 문장들을 꼼꼼하게 짚고 배웠다는 점이랄까. 붉은 펜으로 난도질이 된 내 기사를 보면서 부끄러움보다는 '이만큼 배웠구나'하고 그 과정을 즐기기도 했으니까.
그 후로 몇 해가 지나고,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항상 곁에 두었다. 몇 년의 배움과 경력을 자산 삼아서, 다양한 글들을 쓰면서 돈을 벌었다. 그러나 막상 내 것을 쓰려 하니,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나를 얼마나 드러내야 하고 감추어야 할지 수위 조절도 되지 않았다. 얼마 정도의 분량이 이야기가 될지, 어떻게 써야 '끝까지 잘 읽히는 글'이 될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어려운 단어를 쓸 줄도 모르고, 쓰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점. 적당히 모니터 화면 뒤로 나를 감추면서도 '별빛서가'라는 이름으로는 진심을 전하는 것만은 자신이 생겼다. 문장을 복잡하게 쓰거나 여러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싫고, 입으로 읽었을 때 편안한 정도의 문장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단어를 반복하지 않되, 비슷한 의미의 다른 낱말을 찾아서 쓰려 노력했다. 애매하고 복잡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그냥 솔직하게 썼다. 가급적이면 짧은 문장으로 끊어서 썼다. 그것이 지금 나의 전부인 것 같다.
그럼에도 더 잘 쓰고 싶고, 더 반짝이는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고 싶어서 '글쓰기 강의'나 '글쓰기 책'을 읽었는데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말 그대로 내 진심을 글로 전하는 것이 '글쓰기'인데, 굳이 노하우가 필요할까. 며칠 전, ooo 작가의 글쓰기 강의라고 해서 2시간을 꼬박 들었는데...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강박'이었다. 그 작가의 스타일, 문체가 묻어나는 글쓰기 노하우를 듣고 마치 내가 그것을 어기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괴로웠다.
사람마다 말투가 있듯이, 각자의 문체가 있을 것이다. 난 그것을 가급적이면 해치고 싶지 않다. 문장 하나하나를 낱낱이 파헤쳐서 '이렇게 쓰면 안 되죠!'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글쓰기 철학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마치 신이라도 된 듯이, 정답인 양. 단 몇 분 동안, 몇 시간 동안, 몇 문장의 글만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정말 도움을 주고 싶다면, 장점을 부각해서 개성 있는 문체를 살려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은 방법이 아닐까....
요즘 서점가의 책들을 보면,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대학에서 배울 때만 해도(라떼는 말이야...)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작품들을 쓴, 등단을 한 이들을 '작가'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면 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사람들은 '작가'라는 타이틀에 생각보다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런 것도 글이 될 수 있고, 저런 것도 글이 될 수 있다. 탄탄한 문장과 서사도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지만, 글을 써보려는 사람들에게 '문장' 하나로 기를 꺾지는 않았으면 한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세요...'라고 감사하게 질문을 해준다면. 난 아마도 하지 말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이것은 원칙이다!라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기보다는. 그저 글 쓰는 것이 즐거운 행위가 될 수 있게,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싶다. 어떠한 메시지만 있다면 글을 쓰던, 악기를 연주하던, 노래를 하던 결국에는 '표현의 방법'이 다를 뿐이라는 것도 말해주고 싶고.
난 오랫동안 글을 써오면서 단 한 번도, '글'에 대해 타인에게 '조언'이라는 것을 해준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저 글로 적어봄으로써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하고 발견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글은,
쓰는 행위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더욱 기쁜 일일 테고.
<나는 오늘처럼 무척이나 엉키고 복잡했던 마음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오늘의 발견 끝-
답답할 때, 좋을 때, 신 날 때, 울고 싶을 때...
'그걸 써보자. 그럼 '무엇' 때문인지 발견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을까. 그것이 글이 주는 위로의 힘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