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는 지나간다

지금 내 삶이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곧 지나갈 겁니다

by 별빛서가


'난 글쓰기를 잘 하는 걸까?'

'내 자존감은 왜 바닥에서 올라오지 못할까?'

'아이를 키우는 것이 왜 여전히 버거울까?'

'난 왜 의미 없이, 바쁘기만 할까?'


수많은 질문들이 뒤엉켜서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기에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럴 때에는 글을 쓰면서 하나, 둘 실타래를 풀어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쓰지 않았다. 어쩌면, 망설이고 있었는지도.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결코 편치는 않았으므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나를 움직이게 할 힘이 필요했다. 누가 시원하게 '정신 차려!'라고 욕이라도 해줬으면 싶다가도, 따스하게 '응원할게'라고 격려와 동정을 아끼지 않았으면 했다. 어느 쪽으로 귀를 열어두어야 할지 몰라서 종종거리던 날들이었는데, 내 슬럼프를 벗어날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사람과의 대화’였다.


난 용기를 내어, 내 손을 꼬옥 쥐어줄 이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길을 잃었을 때 선뜻 ‘지도’를 내어주는 친구 ‘김유정’을 만난 것이 그 첫 번째 시도였다. 충청도에 살던 시절, 영어 스터디로 맺어진 인연은 올해로 8년쯤 된 것 같다. 일하는 여성의 표본이자, 아이와 자신을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볼 줄 아는 엄마이기도 하고. 나와는 전혀 반대의 성격을 가졌을 뿐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도 매우 다르다.


올해 버킷리스트 중에 난 멘토인 유정이와 1박 2일 여행을 꿈꾸었고,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 되어서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그녀를 만나 서울에 있는 호텔로 이동하기까지 난 수많은 이야기를 쉬지 않고 털어놓았다. 남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어쩌면 나 자신조차 외면하고 있었던 속마음을 그냥 내깔려 두었다. 쉼 없이 오가는 말들 속에서 ‘나’를 토해냈다. 아주 집요하게 ‘내 이야기’만 떠들다 보니까, 오랫동안 내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것이 무엇인지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 존재는 친정 엄마였다.


나의 엄마는 평생 동안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하고, 밤 12시에 잠이 들 때까지 쉬지 않는 분이었다. 일흔을 바라보고 있는 연세에도 일을 하고 계시는데, 언제나 날씬하고 단정한 외모를 유지하는 완벽주의자다. 그런 엄마의 눈에 나는 살림도 어설프고, 아이 둘 키우는 것도 맨날 울고 징징대는 날 투성이니 성에 차지 않을 수밖에. 혹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도, ‘그걸 왜 못할까? 나라면…..’하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나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치솟아, 열등감이 가득해졌다. 조금만 더 공감해 주셨더라면, 나는 좀 더 잘할 수 있었을까? 괜한, 엄마 탓도 해보았다. 또르르...


그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던 유정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언니, 나 또한 부모로부터 부정적인 환경이나 영향을 받고 자랐어. 많이 힘들었고. 그런데, 우리가 부모님에게 어떠한 상처나 부당함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우리 세대에서 끊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받은 아픔들이, 아이들에게 되물림 되지 않도록.”


맞다. 나의 평범한 일상들을 돌이켜보면, 난 아이들에게 ‘우리 엄마’처럼 완벽하게 대할 수 있길 바랐던 것 같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스스로 좌절감도 느꼈고, 아이들에게 쉽게 화도 냈다. 분명, 나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직장 생활’도 포기했고,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있었는데….. 나도 ‘경제 활동’까지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양손에 일과 육아를 늘 저울질했다. 난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 받은 영향들 중, 나를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매일 이것저것 숨 가쁘게, 몰아치는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좀처럼 그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에 대한 해답은 ‘변화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리더인 '똘똘한 온달님'을 만나면서 실마리가 조금씩 풀렸던 것 같다. 작가님은 초등학생인 아이 둘을 농촌으로 유학을 보내고 있는데, 그분만의 교육 철학이 내심 궁금했다.


"두 아이들을 농촌으로 유학 보낼 수 있었던 계기가 궁금해요.” 나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조부모님이 돌보아주셨죠. 코로나가 터졌고, 학교는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방학 캠프를 다녀왔던 농촌마을로 유학을 가는 것이 어떨지 물어보았고, 저는 아이들의 의견을 따랐어요. 아이들의 결정에 맡긴 것이죠."라고 그는 답했다.


그 말을 통해 나와 작가님은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름대로는 아이의 의견을 물었다고 생각했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 판단에 대한 확인’을 하고 싶었던 형식절 절차에 불과했다. '육아(育兒)'라는 말처럼, 아이들과 나 사이의 관계 중심을 ‘부모’에게만 국한한 것은 아닌가 뒤돌아 보게 되었다.

한편, '난 아이를 돌보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구나!'라는 것도 깨달았다. 월화수목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아이는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아이들을 실어나르느라 오후 3~4시만 되면 기진맥진했다. 어쩌면 난 ‘우리 아이, 이렇게 비싸고 좋은 학원 다녀요.’라고 콧구멍에 힘을 싣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 이렇게 아이 교육에 진심인 엄마입니다.'라는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그러면서 외벌이하는 남편 어깨에 곰 세 마리를 얹어주었던 게 미안해서, 프리랜서로 일을 찾았던 게 아닐까.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 '나의 욕심'이었다고 느껴졌다.


“책을 꼭 내고 싶은 데 글을 쓸 시간도, 에너지도 없어요.”라는 나의 말에,

작가님은 "아이 수학 학원을 끊으세요. 그리고 그 비용으로 운동을 하거나 엄마를 위해 쓰세요."라고 단호박을 던져주었다. 그래, 난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무척이나 신뢰하는 분에게 ‘내 생각’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난 아이들의 학습과 관련된 모든 학원을 중지시켰다. 그러고 나니, 아이들에게 ‘버럭’ 시간을 재촉하는 일도 줄었고 하루에 한 편 정도는 내 글을 쓸 수 있는 약간의 시간과 힘이 생겼다.


사람 책 투어를 하듯, 이튿날은 부부바디프로필을 찍었다는 ‘워킹맘말랑이’ 님을 만났다. 두 아들을 키우는 나랑 동갑내기 직장인인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바디프로필을 찍을 정도로 운동에 진심인 분이다. 우리는 새벽 6시부터 남산을 함께 올랐다. 지금껏 도전하지 않았던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녀는 나에게 운동을 권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저는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점심시간마다 지쳐서 누워있는 날도 많았고,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면서 버텼죠.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고, 출근 전 시간을 활용해 수영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새벽 기상이 자연스럽게 되었고 조금씩 내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어요. 지금은 운동을 하는 만큼 내 몸이 예뻐지는 것에 삶이 즐거워요. 하루에 1킬로 정도 걷거나 뛰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걸 추천합니다"

딱 1킬로부터 시작해 보는 걸로.


여행을 마치고, 난 다시 갈증이 일었다.

'나 진짜 사람을 만나고 싶었구나! 내 눈과 마음을 깨워줄 이가 누가 있을까?!’


‘변화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있는 멤버들 중 윤슬 님과 카멜혜은 님이 만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개인 톡을 보냈다. 들이대는 걸 오죽이도 못하는데, 텐션 올랐을 때 '따상 가즈아~'라는 마음으로 '나도 껴달라!'라고 부탁을 했고,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그날은 오래간만에 강남 나들이라 신바람이 났고, 풀메이컵으로 단장도 했다. 얼마 전 친정에서 가져온 꽃무늬 원피스와 장롱에 묵혀둔 백을 들고 '이보다 더 꾸밀 수는 없다!'라는 뒤태를 자랑하며 버스를 탔다. 앞모습은 쩝….


"내가 글을 잘 쓰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가 두려운 것도 같고... 어쩌다 글 밥을 먹게 된 건데, 정말 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그래서 쓸 수가 없었어요."

이런 고민에 윤슬 님은 "외면하고 싶었던 걸까요?"라는 툭, 한 문장을 건넸다. 난 왜 그 한 마디에 울컥했을까. 눈물이 그렁해서 잠시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충분히 많은 것을 해오셨고, 할 수 있는 분이에요. 무엇을 할 때 설레는지 생각해 보세요."

답은 결국, ‘글’이었다. 나의 글쓰기는 누군가의 작은 댓글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잠시 잊고있었다. 잘 쓰던, 못 쓰던 후루룩 내 마음을 풀어놓고 마침표를 찍었을 때의 쾌감, 난 글쓰기를 즐기고 있었다.


카멜혜은 님의 조언도 이어졌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글을 써요. 새벽에 일어나서 많은 것을 하기보다는 꼭 하고 싶은 것을 해보세요."

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익숙치 않아서, 그 시간이 너무 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단 몇 시간에 여러 가지 일들을 꾹꾹 눌러 담으려 애썼다. 남들이 좋다는 것들을 다 해보고 싶었고, 내가 정작 좋아하는 것은 미뤄두었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원하는 일 ‘글쓰기’를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완벽한 글은 세상에 없고, 초고는 늘 서투른 법이니. 그저 ‘행복감’에 집중하기로 했다.


집을 돌아오는 길, 내 발걸음은 손오공이 구름을 타는 느낌이랄까. 묵은 갈증이 해소된 듯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 책’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고 든든했다. '나, 다 가진 여자야!'하고 버스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보는데 억수비가 쏟아졌다. 엄마 옷도 빌려 입고 명품백도 들고 나왔는데 '비라니! 이렇게 초칠 일이야!'하고, 걱정과 불안이 꿈틀댔다.


'버스에서 내리면 편의점도 없는데? 가방은 천으로 되어있으니 책도 다 젖을 텐데? 이거 비에 젖어도 되는 옷인가? 오늘 머리에 뽕 제대로 넣었는데... 첫째 학원으로 데리러 갈 시간인데 우산도 없이 어떻게 가지?.....'

1분 사이에 걱정이 서 말이나 쌓였고, 진심으로 내리기 싫었다.............. 또르르.


어쩔 수 있나, 집에는 가야 하니 버스에서 내려 몸을 한껏 움츠렸다. 아직 비에 젖지 않은 땅을 골라 밟으며, 나무 그늘 사이로 잽싸게 움직였다. 내가 비 사이로 가는 것도 아닌데 몸이 젖지 않는 것이 이상해 고개를 들어보았다. 우산을 접는 사람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고, 하늘은 그새 맑게 개었다. 헐, 대박.


"소나기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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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 걱정은 시작도 안 했는데, 비가 그쳤다니. 어쩌면 할 필요도 없었던 생각들에 난 겁부터 내고 있었다.

머리를 싸매고 있는 걱정들 중에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하지 않았는가. 또, 아무리 힘든 일도, 좋은 일도 지나가기 마련이라 하지 않던가. 행복, 설렘, 불안, 걱정... 어쩌면 숱한 감정들을 움켜쥐고 있었던 건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어떤 상황이 아니라. 며칠 간의 사람 책을 접하며, 앞으로 내 삶을 이렇게 이끌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소나기처럼 힘듦이 쏟아질 때면, 내 두 손을 펼쳐 비를 가려주고.

하루하루 애쓰는데 한숨만 나올 때면, 내 두 팔로 한 아름 안아주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내 입으로 '잘했다'라고 말해주고.

살이 찌거나 초라해지는 나를 발견할 때면, 누구보다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주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삶이 끝나갈 때쯤에는, '수고했다'라고 말해주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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