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아이' '까만 여자애' '까만 콩' '까맣고 쪼끄만 애'
누군가가 나를 묘사한다면, 빼먹지 않고 들어가는 말이 '까-'였다. 까마귀도 아니고, 하나같이 그렇게 부를 건 뭔지. 사람을 표현하는 말에 색깔을 왜 집어넣는 건지 불만이 컸다.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도 같지 않다는 말을 절실하게 느꼈던 부분도 '까만 피부'였는데, 동생과 나는 정반대였다. 난 고모들과 아빠를 닮아 까맣고 체구가 작았다. 태어났을 때도 '뭐 이렇게 조그맣고 새까만 게 다 있냐?'라며 내 외모를 보고 다들 웃었단다. 엄마 입장에서는 '시집 식구들과 다 똑같이 생겼구먼'하고, 그런 말이 우스웠을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아들'로 떡~하고 세상에 나왔을 때는 '하얗고 뽀얀 아이'가 후광을 비추었으니 "우리 장손~"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것이다.
탄생부터 달랐던 나와 동생은 자라면서도 점점 차이가 벌어졌다. 난 뭘 해도 까맣고, 키는 늘 앞 동네를 차지했다. 키 번호 10번만 넘어봤으면 소원이 없었는데, 아마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네가 안 먹으니까 키가 그렇지. 동생을 봐라, 우유도 잘 먹으니까 키도 쑥쑥 크고 하얗잖니."
맞다. 동생은 우유 한 통을 물처럼 마셨었다. 그래서였을까. 할아버지와 아빠의 잘생긴 외모를 쏙 닮아서 이목구비도 또렷했다. 키는 중학교 때부터 필을 받아서 제대로 컸다. 게다가 옷발은 얼마나 잘 받았는지, 하얗고 길쭉하니까 뭘 입어도 멋있었다. 세상 불공평하게, 탄생 시점부터 비교를 당할 건 뭐람.
나의 까만 피부가 제대로 빛을 발하는 시기는 바로 '여름'이었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뜨거운 계절. 6월 말과 7월 초쯤이 되면 귓가에 맴도는 말 한마디가 있었는데, 20년이 넘게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중학교 1학년 때였을까.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야 하니까, 개찰구에서 "학생 한 장이요."하고 돈을 쓰윽 내밀었다. (정말 옛날 사람 같네.)
"벌써 여름휴가 다녀왔구나?"
"네?! 아직 방학도 안 했는데요."
직원 아저씨는 왜 나에게 놀러 갔다 왔냐고 물었을까. 한참을 생각했었다. 아니, 아직 여름방학도 안 했는데 휴가를 갔다 왔냐고 하는지 의아했다. 한 1분쯤 지났나. 교복 밖으로 까맣게 탄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아, 오... 씨...' 쨍한 봄볕만 쬐어도 까맣게 잘 타버리는 탓에, 여름이 될 무렵이면 여행을 가기도 전에 자연 태닝이 완성되어 있었다. 더 웃겼던 건, 여름휴가를 다녀오지 않아도, 방학이 끝나고 개학식 날에 선생님도 '재밌게 놀다 왔냐'라고 인사를 건넸으니 뭐.
이런 오해는 그래도 달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까만 피부를 가지고 놀리는 직장 상사가 있었는데, 너무 유치해서 말도 안 나왔다. 나보다 두세 살쯤 많은 옆 팀 팀장님이셨는데,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oo에 오니까 '선 대리랑 똑 닮은 사람들'이 많다"라고 자신의 페북에 글을 남긴 것이다.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면서 나를 소재로 쓴다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웠으나, 소심하기 짝이 없던 나는 '웃어넘겨야 했다'.
그런데, 세상이 점차 변하면서 고맙게도 나는 트렌드를 앞선 사람이 되어갔다. 태닝을 예쁘게 한 연예인들도 많이 나왔고, 그렇게 가무잡잡하게 태우려면 돈도 어지간히 든다 했다. 마치 까만 피부가 '부의 상징'인 양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다. 해외만 가도, 다들 해변에서 까맣게 그을리기를 바라며 태양을 제대로 맞이하고 있었으니 난 걸어만 다녀도 타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뭔가 조금 더 당당해지는 느낌이었다. 대체로 한국 사람들이 선글라스에 목수건, 얇은 겉옷까지 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과는 나는 조금 달랐다. 뭘 해도 타니까.... 쩝.
가만 생각해 보면, '까만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무리 깨끗하게 박박 닦아도 하얗게 변할 리 만무했고, 내 몸만 따가울 일이었다. 더욱이 서른이 넘어 아이를 낳고, 사는 게 바쁘다 보니까 '새까만 피부'는 더 이상 고민이 되지 않았다. 그까짓 피부는 나의 한 일부일 뿐, 나라는 사람 자신은 아니었으니까. 소용없는 일에 괜한 상처와 자책을 했던 시간들이 참, 아까웠다.
문득, ‘난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방 한 쪽에 쌓아둔 책들과 필사로 채운 노트를 바라본다. 그러면 괜스레 뿌듯해진다. 저곳에 내가 있지. '읽고, 쓰고, 말하는 삶'.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굳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까만 피부라서, 태양을 피하지 않고서도 당당할 수 있었으니까. 나를 더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들에 애정을 쏟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