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학년이야?"
"몇 학번이세요?"
"몇 년생이세요?"
"아이가 몇 살이에요?"
나이가 열 손가락을 넘어서는 시절부터는, 상대의 연령을 가늠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같은 학년이면 이름이나 친분에 상관없이 소위 '친구'라고 불렸다. 대학이나 들어가서야, 같은 학년이라도 나이가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학번으로 엮어진 우리들은 또 '친구'도 '언니나 동생'도 아닌 '동기'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정의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에는, 나이와 학번에 상관없이 '사번'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내 삶을 파고들었는데. 나의 첫 사회 동기들은 석박사를 졸업한 한참이나 오빠 언니들이었다. ~씨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고, 직장생활에서 ~언니, 오빠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막내 시절에는, 그들이 어서 대리나 과장쯤이 되기를 바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 질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껏 내가 어떻게, 무엇을, 얼마나 오래 살아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내 아이의 개월 수와 탄생 연도 쯤이 육아 서열을 가늠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룰'같은 거였다. 선배 맘과 초보 맘. 누가 붙인 말인지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는 언제나 초보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이사를 가고, 아이를 다시 낳고, '홀로 있는 시간'이 참 많이 외로웠다. 친구를 만, 들, 어, 서 허전함을 해결해 보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학교와 직장생활에서는 그렇게 쉽게도 친구가 되었는데 애 엄마가 되니 그것이 제일 어려웠다. '나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만나야 할 접점을 찾지 못할 때에는 괴로웠다. '왜 나만 신경 써야 해?'라는 설움에, 외로움도 더 했었다. 외로울수록 '사람'에게 더 매달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장점은 '내 일만 잘하면 된다'는 것인데, 그것이 나를 더 고립되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책을 보고 정보를 수집해서 단어와 문장으로 엮는 일. 나도 수다를 좀 떨고 싶은데, 나의 옛 친구들은 직장생활과 육아로 바쁘고. 맨날 아침이면 친정 엄마를 친구 삼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떠들어댔었다.
공허함. 나의 학창 시절은 친구 한 명만 있어도 하루가 꽉 찬 것만 같았는데, 내 곁에는 남편과 1초도 쉬지 않고 말하는 아들 둘이 있어도 텅 빈 것 같을 때가 있었다. 나랑 친구를 먹어볼까도 생각해 봤는데, 나처럼 너무 진지하고 생각이 많은 애는 자주 만나는 게 피곤해서. 쩝.
그러다 코로나 19가 찾아왔다. 마치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나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친구'가 생겼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수많은 지인들. 네이버라는 대형 포털이 명명한 '이웃'이나 '서로이웃' 관계를 넘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임을 구성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좋아요' 버튼이나 '댓글'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카톡방이나 밴드 등으로 실시간 소통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내 삶을 함께 나누고 있는 이들은 '책 쓰기 모임' '걷기 모임' '변화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 '필사 모임' 등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을 직접 만난 적도 없거니와 어떤 이들은 얼굴도, 목소리도, 살아온 인생에 대해 전혀 아는 바도 없다. 그저 랜선을 통해 비친 '나'를 솔직히 보여주고, 때로는 적당히 감추면서 적절한 온도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우리가 같은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기에 누군가 넘어질 때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고, 각자의 작은 승리에도 힘껏 박수를 쳐준다. 어떠한 참견이나 잔소리가 없으며, 성장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어쩌면 지난 1년간, 내가 글을 쓰거나 삶에 대한 태도가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었던 건 '랜선 친구'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들과 하루를 열고 마무리를 하는 과정 속에서 '인정 욕구'가 만땅으로 채워지는 기분이 드니까.
최근 나의 하루 루틴은 이렇다. 도대체 몇 명을 만나는 건지, 셀 수도 없다.
매일 아침 새벽 5시 반이면, 난 '굿모닝~!'하고 #변실모 단톡방에 톡을 날린다. '앗싸! 뭔가 인정받은 거 같다!' 싶어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좀 가볍다. 이 모임의 특징은 연령대부터 직업, 취미까지 매우 다양하다.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 어림짐작 정도이고, 그냥 말 그대로 '빡세게' '즐기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이어서 실내 자전거를 빡세게 굴리고, #미라클홈트 밴드에 30분 인증샷을 올린다. '아! 더 뿌듯해!'. #뉴정군 이 리드하는 #원서읽기모임 에 영어책 5페이지를 읽고 녹음 파일을 공유한다. 그리고 매주 있는 #독서모임 에서 이야기 나눌 책들을 틈틈이 읽는다. 독서모임도 2~3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읽을 책이 넘쳐난다. '아 미치게 행복해!'.
아이들이 일어나고 다시 엄마 모드로 돌아오고, 그들을 각자의 공간으로 출근시킨다. (등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후에는 나의 생업적 글쓰기 시간. 친절한 실장님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데, 아직 뵌 적이 없다. 전화와 카톡으로만 업무 사항을 전달받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노마드의 삶!
아이들 학원을 보내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는 #나다운이야기 님이 운영하는 #필사모임 인증을 한다. 하루에 일정 페이지를 읽고, 필사하고 내 생각을 적는 것인데. 그냥 받아 적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골똘히~ 좀 더 깊이 있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3권째 이어오고 있다. '좀 더 지적여 보이네?!'
그리고 '나에게 계속 쓸 수 있게,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마이힐라 님이 운영하는 '글책봄'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나를외면한나에게 라는 전자책을 공동 집필한 이후로, 이제는 시즌별로 전자책 에세이를 만들 예정이다. 난 여기에 또 1인으로 참여를 했고, 오늘도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끌어준 인연들이다.
이밖에도 팟캐스트 운영방, 낭독 모임, 걷기 모임, 이제 막 시작한 #경제신문읽기 등 내 삶은 마치 인증의 노예인 것처럼 쉴 틈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이 외로웠던 삶'에서 '하루가 할 것들로 넘쳐나는 삶'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음 크기가 콩알만 해서, 작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 받고 3초 전에 뱉은 말도 자꾸 주워 담고 싶었던 '나'라는 사람. 살찌고 나이 들어버린 외모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이 불편하고, 약속을 정하기도 싫었던 나. 전업맘과 워킹맘 그 언저리에서 이도 저도 아닌 나.
나를 둘러싼 부정적인 것들은 오프라인에 그대로 펼쳐놓고, 난 '온라인' 친구들과 그 세상에서 뛰어놀고 있다. 예전 직장에서 만난 동생이 '코로나 블루' 때문에 힘들다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난, 슬며시 '이런 세상도 있다고 맛'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웃는 날이 생겼으면 좋겠다. 생각의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나랑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으니까.
랜선을 타고, 나에게 와서 '삶'의 일부가 되어준 벗님들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