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새기다; 마음 속에 뚜렷이 간직하다

국어사전을 읽습니다(1)

by 별빛서가

‘아, 진짜 뭐라고 쓰지......?’

글을 쓸 때면 한글 프로그램을 켜놓고, 새 문서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수만 가지 단어가, 문장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나 먼저!’ 써달라고 아우성을 치니까. 사십 년 동안 우리말을 써온 내공들을 모두 동원해 단어 하나를 끄집어내다보면, 전광석화처럼 글이 완성될 때가 있다. 마치, 머리보다 손이 빠르게 반응해서 후다다닥. 속이 다 시원하게! 그러나, 이런 행운을 맛보는 것은 가뭄에 콩이 나는 것보다 드문 일이다. 대부분은 머리를 쥐어짜듯, 뇌를 콕콕 찔러 말들을 토해낼 때가 더 많다.


그럴 때면 산신령이라도 만나러 ‘산’을 들어가야 하나? 기도빨을 세워서 영감을 얻어야 하나? 노래를 들을까? 뉴스나 검색차트를 기웃거리며 ‘첫 문장의 첫 단어’를 무얼로 할지, 머리통 터지게 고민해본다. 딱, 맛깔스러운 한 문장만 터뜨려주면 기똥차게 써 내려갈 텐데...... 돈을 받고 쓰는 글이나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이나 늘 ‘첫 문장’이 고비이다.


어떻게든 첫 문단을 완성하고 나면, 그때부터 '어휘'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메마른 나의 감성과 풍요롭지 않은 어휘력으로 최대한 그럴싸해 보이는 글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도 불태워보고. 여기에 '나 글 좀 써본 사람이에요.'하고 잘난 척이라도 해보려, 어디서 주워들을 말들을 꼬깃꼬깃 접어 여기저기 배치해보기도 한다. 그런 갖은 노력에도 뭔 말을 가져다 써야 할지 머릿 속에 구름만 둥둥 떠나니면 자책을 하게 된다. ‘아, 책을 덜 읽어서 그래.’하고 살짝 도움을 구해볼까 싶기도 하고. 필사 노트를 뒤적이면서, '작가들의 필력'에 또 혼자 감탄하고 빠져들기도 했다.


'단어를 구해야만 한다!'


이럴 때에는 마치 쇼핑을 나선 것처럼, 국어사전을 펼쳐본다. 내가 발견하고 싶은 단어는 무엇일까? 어디선가는 보았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았던 그런 말들.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며, 신나게 사전 산책을 하다가 쏙 마음에 드는 단어를 하나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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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새기다>

1. 글자나 무늬를 또렷하게 새기다

2. 마음속에 뚜렷이 간직하다


어쩜 말이 이렇게 예쁘게 생겼는지. 분명 들어봤을 단어인데 내가 먼저 찾아서 써본 적은 없구나! 싶었다.


난 '무엇을 아로새겨보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은 의욕과 욕심만 넘쳐서 '남'이 좋다는 것에 귀를 바짝 열고, '남'의 생각에 떠밀려 사는 날들이 많았다. 특히, 아이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많이 휘둘리고 흔들렸다. 우리 아이들의 특성에 맞지 않는 수많은 학원들을 보냈다가 그만 두기도 반복했고, '엄마표'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했었다. 끈기가 없어서 도중 포기한 것도 많았고.


또, 책을 써보겠다는 마음만 앞섰지 정작 '쓰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는 것을 게을리했다. 조금 더 '나'를 관찰하는 일에 시간을 쏟기보다는 남들이 뭘 하고 사는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 다른 사람들의 글과 비교하면서 지치고, 무기력했다.


그래서 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나답게 살겠다>는 다짐을 아로새겨본다.

먼저,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담 넘어 남의 아이들의 삶과 견주지 않으려 한다.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 무슨 학습지를 푸는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에 눈을 크게 뜨기보다는 우리 아이들과 눈맞춤을 한번 더 하련다. 오랫동안 내 무릎에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의 힘을 믿어보고 싶다. 잘 하고 있고, 잘 할 수 있다고 격려도 하면서.


또, 내 속도대로 조금씩 글의 힘을 키워가려 한다. 매일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잘 하고 있다고. 화려한 수사나 묘사 없이도, 내가 말하듯 글을 쓰면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다독이고 싶다. 글을 곁에 두고, 언제든지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너무 귀하게 여기면 손도 대지 못하는 날들이 더 많을 거라고 툭툭 용기도 건내면서.


잔잔한 바람에도, 거친 파도에도 '나를 단단히 잡아줄 무엇 하나', 남의 눈치 안 보고 '내 마음에 하나쯤 간직'하고 싶은 게 무엇이 있는지,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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