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글쓰기를 다시 열면서.....
그간 여러 일이 있었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어렵게 일하다가 어렵게 그만두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 다시 배웠다.
퇴사 후, 2달간의 휴식기를 가졌다. 그동안 타인이 시각에서, 타인의 삶을 담은 글을 쓰는 데 '쉽게'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불안 장애와 수시로 찾아오는 이명 등은 '쉼'이라는 탈출구를 찾는 명분이 되었다. 더욱이 운동선수를 꿈꾸는 아들 뒷바라지도 좋은 핑계였다. 글쓰기가 참으로 지긋지긋하여, 한동안 펜도 노트북도 열지 않았다. 오랫동안 내 글지기가 되어주었던 노트북은 사망 선고가 내려진 지 한참이 되었고, 아이들 학습용으로 산 돌덩이 같은 노트북은 좀처럼 애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 저런 이유로, 나는 글을 멈추었다. 생각하는 것도 쉬었고, 책장은 당연히 펼치지도 않았다.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여러 독서모임들은 포기해 버렸는데, 그중 필사모임 단톡방은 끈질기게 나오지도 않고 있다. 책을 읽고 글귀를 담는 것만 해보자... 했는데 여전히 난 겉돌고 있었다. 읽고, 쓰고, 말하는 삶을 꿈꾸었던 '나'라는 사람은 직장생활과 함께, 다시 퇴사와 함께 빛이 바래져 갔다. 더욱이 꿀렁, 삐걱, 허우적대며 아이들 겨울방학과 훈련 뒤치다꺼리에 정신마저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그러나, '새해'라는 건 또 얼마나 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은 핑계인가. 시국이 이러해서 그렇지... 매해 그러했듯 새해는 새 다짐으로 새 계획을 짜보는 것이 국룰이니까. 육아와 아이 운동 수발 사이에 시체놀이도 하루이틀, 퍼져만 가는 나를 다시 깨워보고 싶었다. 물론, 이미 한 달을 꼬박 아이들 겨울방학에 헌신한 바 있으나,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라고 하였으니. 다시 직장생활을 하기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았다.
엄마와 희망 구직자 상태, 즉 경력 단절 중이었을 때는 팬데믹이 한창이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집 안에 있기는 숨이 막히던 때에 나는 여러 온라인 모임으로 또 다른 숨구멍을 만들었다. 독서모임, 필사모임, 글쓰기 모임, 재테크, 자기 계발 등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그 가운데 좋은 인연들도 있었고, 팬데믹이 사라짐과 동시에... 흐릿해져 버린 인연들도 있다.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만나면 무척 반갑겠지만.
가장 익숙한 것에서 나를 찾게 되는 것일까.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익숙한 방법인 글쓰기 모임에 가입했다. 집에서는 좀 거리가 있지만, 작은 동네 서점이자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곳을 찾았다. 완전 럭키하게도.(럭키비키라 쓰고 싶다.... MZ스럽게)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내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지만, 어떻게든 시작부터 하고 싶었다. 헬스장이나 필라테스처럼 몇 달씩 결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마음을 가볍게 가자고... 내 안에 수많은 핑계를 꺾어내고 책방으로 향했다.
겨울의 저녁은 차갑고도 깊었다.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까지도, 이불속으로 들어갈까 했지만. 어차피 주부의 저녁은 시간은 주방과 거실 사이를 오갈 것이 뻔하니,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향해 액셀을 밟았다. 과감하게. 아줌마의 일탈은 육아에 대한 반항에서부터 시작되는지 모르겠다. 준비물이 노트북이나 노트, 글감이었는데... 도착할 때까지 난 글감을 찾지 못했다. 글을 쓰고 싶다 말하면서도, 쓰지 못하는 핑계를 '글감'이라 하는 건 참 모순이다. 이게 얼마나 좋은 핑계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6명의 글지기들이 모여 자신을 소개하고, 무엇을 쓸 것인지에 대해 말했다. 글감이 없는 나는 가장 마지막까지 버텼으나, 그 사이 그분(?)이 찾아올 리는 없어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는 글을 전공했고... 10년 경력 단절을 딛고 다시 직장에 들어갔으나...
타인의 생각과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에 고통을 겪고.... 다시 내 글을 쓰기 위해 퇴사했으나...
여전히 글감을 찾지 못하는 중이고.... 다시 쓰기 위한 과정을 여기서 시작해 보려 한다..."
내 말에는 '다시', '글감'. 도돌이표처럼 같은 곳에 막혀있었다. 뚫을 수 있을까.
글지기들은 1시간 동안 핸드폰을 반납하고, 자신만의 글을 써 내려갔다. 소설, 에세이, 전문 지식 분야 등...
난 오랫동안 끊어져버린 글의 맥을 찾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젠장, 방전이라니. 모두가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간에 나는 노트북 어뎁터에 전기를 연결했다. 학습용이라 여러 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는 데도, 오래간만에 켜서인지 노트북이 버벅댔다. 시선을 좌우, 위아래로 빙글거리며 노트북이 정신 차릴 때까지 기다렸다. 한글프로그램을 여는 데도 하세월. 왜 이러지...? 커서가 깜빡이는 건지, 끔뻑이는 건지...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재부팅하라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컴퓨터공학 전공은 컴퓨터 고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난 늘 문제가 생기면 그에게 묻는다. 어디 보자, 프로그램 다시 시작하기. 기다리면 되겠지...?
다시 시작하는 중
........????
다시 시작하는 중
........?????
5분이 지났을까.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한 시간인데, 노트북이 저 상태에서 맴맴 돈다. 이럴 때는 한 대 때리면 되나? 싶지만, 사회적 체면을 생각하여(?) 전원 버튼만 꾸욱 눌러보았다. 안되네? 다시 눌러본다. 노트북 뚜껑도 닫았다 펼쳐보고, 다시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멍하니 있기에도 민망하여, 마침 가방에 있던 노트를 꺼냈다. 그 노트북이나, 이 노트북이나... 손에 젓가락 대신 펜을 쥐어보는 것도 참 오래간만이었다. 노트북 녀석이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글감을 찾아보겠다 했다.
그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글감이 없다고 투덜대더만, 노트북 상태가 나 같아서.
다시 시작하는 중
.........
시작하기도 전부터 꾸물거리고 있는, 수많은 핑계를 안고 있는 나 자신 같아서 웃음이 났다. 내가 뭘 할 줄 알고, 노트북이 겁이 난 걸까? 아니면, 너무 오래 노트북 뚜껑조차 열지 않아서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수 분 사이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래, 너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때가 되면, 너의 창을 열어줘. 그때 내가 글을 써 내려갈게.
그리고 노트에 '다시 시작하는 중'을 주제로 아무 말 대잔치를 써 내려갔다. 글쓰기에 대한 어색함이 조금씩 익숙함으로 풀어져갈 때쯤, 노트북 부팅이 완료되었다. 다시 시작하기가 완료된 노트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재빠르게, 모든 클릭에 완벽한 속도로 반응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서 그렇게 버벅댔었나.
나도 그럼, 다시 시작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 사는 순간마다 모두 배움의 연속이라지만, 노트북 재부팅에서 깨달음을 얻을 줄이야.
번개 같은 깨달음과 동시에, 글쓰기 시간은 종료가 되었다. 다음 시간까지 나머지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과제다. 글감을 핑계로, 단단히 겁을 냈던 '글 벽'은 조금 허물어진 것 같다. 거진 2년 만에 나는 다시 쓰게 되었으니. 앞으로 나는 무슨 글을 쓰게 될지 여전히 주제는 비어있지만, 그만큼 아무거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설레고 벅찬 일이니까.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고, 나는 벼락치기하듯 오늘에서야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아이들이 학원을 간 틈 사이로, 번갯불에 콩을 튀겨먹듯. 튀기든 볶든, 그 시간이 즐거우면 되었다.
나는 오늘 다시 글쓰기 모임에 간다. 앉아있다 보면, 뭔가 떠오르겠지. 에헤라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