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봄을 깨워준 아이의 말 한마디.

행복에 조건이 있다면...?!

by 별빛서가

아, 봄!

겨우내 시리게만 느껴지던 창문밖의 싸늘함이, 온화한 빛이 되어 내게 스며드는 시기. 만물이 다시 생동하기까지 겨울을 이겨내는 고통이 필요하듯, 엄마들은 겨울방학이라는 큰 고비를 넘겨야 한다. 두 달여간의 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생기로 넘쳐날 때쯤. 나는 3월 동면(?)에 들어간다. 제대로 꽃이 피기까지는 세상밖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침대와 이불에 폭 싸인 채 한 달을 보낸다. 아주 무기력하게... 최소한의 사회생활만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 나의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오픈 시간은 오후 1시 30분.

"띡띡띡띡.. 삐리릭."

현관문 도어록이 알람이다.


마치 오전 내내 분주했다가 잠시 누워있었을 뿐이라는 혹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는 핑계를 읊조려본다. 아이들에게 넷플릭스와 쇼츠 감상으로 오전을 보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주방으로 향한다. 그리고 게을렀던 만큼의 속도로 다정하게 묻는다.


"학교 잘 다녀왔어?"

그 한 마디를 마치고 나면, 쫑알쫑알 그들의 수다가 시작된다.

"엄마, 오늘 제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정말 웃겼거든요....@#%!$#$@^$"


공감은 되지 않아도, 대답은 꼬박꼬박 해 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의무 같아

"응응." 쉬지 않고 응대한다.


이제 3학년. 제법 눈치가 빨라진 둘째는, 말하다 말고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내 곁에 다가와 묻는다.

"엄마? 듣고 계신 거죠?"라고...


젠장. 한쪽에 이어폰을 꽂고 반밖에 안 들었다는 걸 들킨 것 같다. 어디 그것만 들켰을까. 주방에 쌓인 설거지를 보며, 이미 다 알았겠지. 이제 다 컸네.


5학년 첫째마저 학교에서 오면, 전쟁터다. 둘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나 홀로 비무장지대에 있는 듯할 일을 이어간다. 특히, 두 녀석의 운동을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는 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운전석의 나는 기사일 뿐이고, 뒷좌석 두 녀석은 손님이다. 이동 시간 동안 저녁 도시락을 먹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것까지. 30~40분 동안 그들의 할 일을 해낸다.


좁은 공간에서 셋이 있다 보면, 간혹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되는데. 어떤 날은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대결 놀이를 하다가, 어떤 날은 싸우기도 하고.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 그들은 언제나 진지하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와 운동 수발 사이에 지쳐있던 어느 날. 그날은 무기력하게 운전대를 잡고, 운동 시간에 늦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삶이 뭐 이렇게 뻔한 건가, 지긋지긋했던 회사 일마저 그리워질... 봄 타는 여인네의 한숨이 반복되던 그런 날. 벚꽃 따위가 뭐라고, 혼자 설레고 눈물이 그렁하던 날.


첫째가 둘째에게 물었다.

"준아, 너는 왜 맨날 행복해?"


평소 걱정도 많고, 감정 기복이 심한. 태어났을 때부터 사춘기 기질을 가진 첫째라면 궁금했을 질문이다. 둘째는 세상만사 새옹지마, 지 꼴리는 대로 사는 성격이니. 무슨 말을 할지 나도 궁금했다.


"형아, 머릿속을 비워봐. 아무 생각도 하지 마.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그럼 행복해져."


아, 단순해. 명쾌해! 이게 행복의 조건이야!


너무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하나하나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면, 행복해질 수 있지.

그걸 반드시, 잘해야만 한다고 다시 생각하면, 머리가 무거워지는 것이고.

그때는 다시 생각을 비우는 거야.


하고 싶은 것들을 자주 떠올리다 보면, 내가 그것을 하고 있는 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오래 주저했던 일을 저질렀다. 필라테스 회원권 6개월 등록! (지난번에 필라테스를 1년 치 등록하고, 3번밖에 나가지 못했던 '실패'를 떠올렸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첫 번째 수강을 완료했다. 다양한 강좌 중에, 요가 초급반 수업을 들었다. 40년 넘게 뇌와 마음을 하나였으나, 기타 신체가 함께하지 못하는... 격한 이질감을 경험했다. 분명히 손을 뻗어 발끝에 닿으라는 입력값을 주었으나, 내 손끝과 발끝은 만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그때 요가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온전히 내 몸의 상태에만 집중하세요. 다른 사람들과 견주어 내 몸에 고통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내 머릿속에 어지럽혀져 있는 다양한 생각들을 비워보세요."


유레카! 생각을 비우자...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잠시 떠올렸다.

'오늘 점심 뭐 먹지?'


생각의 타레는, 내가 이끌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냉삼을 잘게 썰어서 프라이팬에 볶고... 파를 송송 썰어서 파기름을 낸 후에! 잘 익은 김치를 잘게 쪼개서 참기름을 두르면?! 달걀은 반숙으로 살짝 익히고, 그 위에 냉동 피자치즈를 얹어서 살포시 뜸을 들이면 완성!'


'아, 목이 마를 텐데.. 국은 번거롭고. 냉동실에 묵혀둔 곱창김을 팬에 살살 지져서 부셔놓고, 찬 물에 말아 국간장을 몇 스푼 얹는다. 통깨와 고춧가루를 넣어 고소함과 매콤함을 더한 다음.. 아! 참치액으로 감칠맛을 더해야지!'


마치 요가 수련 중 격한 트위스트의 연속처럼, 머릿속으로 점심 메뉴를 완성하고 나니... 사바아사나의 시간이 도래했다. 진정한 이완을 통한 평온한 상태.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오늘도 나는 침대의 포근함을 툭툭 털고, 세상살이의 수많은 고민들을 뒤로한 채.

글쓰기 모임에 왔다. 무엇을 쓸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생각을 멈추니 글감이 떠올랐다.


하루가 버겁고, 생각은 많고...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다 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불안하다면...

강박 혹은 생각을 비우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는 건 어떨까? 뒷 일은 그다음의 나에게 맡기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