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 엄마는 꿈이 뭐였어요?

by 별빛서가

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 방학이 찾아왔다. 그것도, 겨.울.방.학. 아이들을 더 잘 키워보겠다는 핑계로 퇴사를 했지만, 너무 큰 것이 찾아와 버렸다.


초등학교의 겨울방학은 약 2달 정도이다. 이르면 12월말부터 3월초까지. 늦어도 1월초에는 방학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입학한 후로, 가장 두려웠던 단어가 ‘방학’이었다. 돌아서면 밥을 차리는 돌밥, 즉 삼식이 세끼를 차려내야 하는 건 육아 전투의 기본이고, 형제끼리 미세먼지보다 작은 일로 다투는 건 시간 차 공격이랄까.


워킹맘이었을 때, 방학은 또 다른 두려움이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보호자가 없는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려 두 달이나. 첫 해에는 돌봄 선생님을 구했고, 월급의 절반을 돌봄 비용으로 지불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한 현명한 투자이자,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돌봄 선생님과 학원을 병행하며, 어떻게든 돈으로 시간을 메웠다. 이듬해에는 경험치가 쌓여서, 점심 무렵부터 돌봄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TV를 보든, 책을 읽든 시간은 어떻게든 흐르는데 ‘밥 문제’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 겨울방학을 앞두고, 나는 퇴사를 했다. 내 직업을 쫓는 동안, 아이들의 학업과 생활습관이 틀어지는 것을 느낄 때면 심한 갈등이 일었다. ‘퇴사를 해야 하나? 얼마나 어렵게 다시 구한 직장인데...’ 남편은 자신이 육아와 살림을 함께 하고 있으니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위로했다. 그 자율권이라는 것이, 온전한 내 책임으로 다가와 버겁기도 했었다. 10년 전, 그러했듯이. 나는 다시 육아를 선택했다. 직장 내 갑질과 유리천장 등 다양한 사연도 있었지만... 결국 내 선택이었으니까.


한달 여 동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질문을 주고받는다. 하루에 한 번씩은 안방 침대에 다같이 옹기종기 누워서,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로 깔깔 웃기도 하고. 본인들이 저질러온, 배변 활동에 관한 만행(?)들은 언제나 웃음거리다. 언제 기저귀를 끊었냐, 오줌을 지렸냐... 변기에 언제부터 똥을 쌌냐... 이런 치사하고 더러운 논쟁은 왜 해도해도 끝이 없는지.


며칠 전이었나. ‘엄마’를 백만 번째 불렀을 때쯤. 유치하고 재미없는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다가, 초3이 되는 둘째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는 나처럼 10살이었을 때 뭐가 되고 싶었어요?”

“...................... 엄마는 되고 싶은 게 없었어.”


그러자 옆에서 참견하고 싶었던 첫째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그럼, 뭘 좋아했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고....”

“...................... 엄마는 좋아하는 것도 없었던 거 같아.

선생님은 외할머니가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었던 거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아이들은 눈만 껌뻑.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 허를 찌르는 대답 괜찮은데? 근데 나 너무 솔직했네... 우리 꿈나무들에게’


남자아이들이 그러하듯, 질문을 던진 놈들은 지들끼리 말장난을 하기 바빴다.

잔잔한 내 마음에 묵직한 돌멩이 같은 물음을 던져놓고.


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나의 어린 시절은....?


10살 꼬맹이 시절, 난 꽤 착한 아이였던 것 같다. 모범생이 되고 싶어서, 시키는 공부도 꽤나 열심히 했고. '오늘의 날씨' 같은 엄마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도록 나름 애썼다. 가게 일로 항상 바쁜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날벼락을 맞지 않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난 참 많이 속을 썩였다. 두 번의 큰 수술을 겪었다는 핑계로, 힘든 일들은 피해 가려 했는데 그것이 엄마의 눈에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엄마가 되어보니, 뒷모습만 봐도 아이 표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는 내 어리석었던 날들이 떠올라 부끄러워지곤 한다.


하기 싫은 건 수만 가지였는데, 뭔가를 절실하게 하고 싶었던 기억이 없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마음에 품은 아이돌 하나쯤은 있었으나 밤잠 설칠 만큼 좋아하지는 않았고. 방송국 근처에는 가볼 생각도 없었다. 팬클럽은 남의 이야기였고. 열렬히 사무치듯 그립고 사랑하는 게 없었던 나의 시절이었다. 진로가 고민이라고 했으나, 고민하지 않았고. 대학 진학 목표는 '경영학과' '영문과'였지만 '왜?'라는 질문을 던진 적도 없었다.


나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어떻게 살고 싶니?
무엇을 할 때 행복하니?



아이들에게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마음이 기쁜 일에 열정을 쏟으라 하면서도.

나는 그 질문에 솔직히 답을 한 적이 없었다.


오늘, 난 용기를 담아 그 답을 던져본다.

사십여 년을 살면서, 그저 웃을 수 있고... 미치고 좋은 일이 '글쓰기'라는 걸. 다시 직장을 구해 돈벌이로 글을 쓰고도, 그 글을 외면하고 다시 육아를 선택하는 '회귀'...


나는 무엇에 행복한가?

지금의 나에게 묻는다면,

돌고돌아 내 곁에 온전히 남아있는 '아이들'과 '글쓰기‘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것.

마음이 기쁜 이 일에 온 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야겠다.


(내일 아침 아이들의 아침, 점심, 저녁을 차리면서도 그 마음이 같아야 할 텐데...

다시 내 글을 읽어보면서도 부끄럽지 않아야 할 텐데.... 내일의 나는, 지금은 아몰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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