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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Sep 08. 2022

엄마는 왜 작가가 못된 거예요?

나의 지루하고 귀찮은 글쓰기 때문에...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작가가 못된 거예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학교에서 ‘직업’을 주제로,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과제를 내주었다. 가족이나 친척, 학원 선생님 등 아이가 자주 접하는 사람들과 대면 혹은 전화로 궁금한 것을 묻고 대답을 적어오는 것이었다.


난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이와 의논을 한다고는 했지만 몇 가지 선택지를 만들어줘야 할 것 같은. 그러면서 ‘나’, 즉 엄마라는 존재는 가장 먼저 배제시켰다. 은연중에 프리랜서 글쟁이나 주부는 아이들에게 그다지 매력 있는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직업이라고 여기지 않았을지도. 


기왕이면 특별한 직업이나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사심은 가득했으나, 아이는 아빠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남편은 직업을 ‘소프트웨어 개발자’라고 말했지만,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정정했다. 후자가 더 알아듣기 쉬울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그리고 몇 가지를 더 묻고 답하기를 한 후, 남편은 출근했다. 


등교까지 남은 시간, 10분. 아이는 양말을 신다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바둑학원에 ooo라는 친구가 있잖아요.”

“응. 너랑 같은 반인 친구?!”

“네, 그 친구는 엄마가 작가래요.”

“어. 나도 알아. 엄마랑 같은 독서모임 하시는 분이야.”


두어 마디의 대화가 오간 후, 아이는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엄마는 왜 작가가 못된 거예요?”

“...................................”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무슨 이유를 말해야 하지? 아이의 질문에는 ‘엄마도 책을 쓴다고 했잖아요.’라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말이 계속 빙글빙글, 맴맴 돌아다니고 나는 결국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단어가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게을러서....’


아이가 말한 그 엄마, 작가라는 분은 몇 달 전 아파트 독서모임에서 알게 된 분이다. IT 개발자로 일하다가, 육아 때문에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이다. 남편 때문에 외딴곳에 정착해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고 했다. 매일 아이들을 등원 혹은 등교시킨 후 텅 빈 집에 홀로 앉아 매일 글을 써왔다고. 



나와 그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신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 그분은 그 이야기를 성실하게 써서 책으로 펴냈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는 어떤 차이점이 있었을까? 아마도 글에 대한 자격이나 두려움,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란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자유의 정의입니다.”


자유로운 글쓰기. 난 그동안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어딘가에 쓴 글을 보고 누군가는 욕을 하지 않을까? 어쩌다 ‘책’으로 출간되는 날을 떠올릴 때면, ‘영원히 남을 텐데...’라는 생각에 글 쓰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니 즐긴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고.


오늘 아이의 질문에 내가 답을 하지 못했던 건,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엄마도 작가가 되고 싶어서 엄청 열심히 도전했는데, 잘 안됐어.’라던가.

‘엄마도 꼭 작가가 될 거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야.’라는 거짓말을 할 뻔뻔함도 없었다.


그런데 나조차도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수많은 핑계들, 두려움을 가장한 귀차니즘, 내가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함.... 이건 반성문인가. 


그래서 굳게 다짐했다.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도전을 해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 머물면서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가 아이의 물음에 시원하게 답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써보겠노라.


오늘도 아홉 살 아이가 나를 키운다. 고마워,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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