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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Sep 19. 2020

동시 , 첫마음으로

하루에 한 번씩 써 보는 동시 –27-

아토피      

    


내 몸에는 붉은 꽃들이 살고 있어요. 꽃이 가득 피어나면 미치도록 가려워요. 하지만 아무도 내 괴로움은 보지 않아요. 내 몸을 뒤덮은 꽃들만 보고 수군댈 뿐이에요. 싫어요. 여름에도 긴 팔에 목까지 가리는 옷을 입고 붉은 꽃들을 숨겨요. 답답해요. 더욱 더 간지러워요. 하지만 숨겨야 해요. 붉은 꽃들에 가려져 아무도 날 볼 수 없는 건 더 끔찍하니까요. 어느 여름이었어요. 교실 뒷자리에 있던 아이가 나에게 툭 던진 말.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온몸에 가득 붉은 꽃이 피어서 그 애가 싫어졌어요. 아니, 온통 붉게 뒤덮인 내가 싫었어요. 붉은 꽃들이 내 마음에도 나쁜 뿌리를 내렸나 봐요. 선생님이 복도 밖으로 나를 불렀어요. 선생님이 뭐라 하셔도 지지 않을 거야. 선생님도 붉은 꽃 가득 핀 내가 보기 싫죠? 잔뜩 가시를 세웠어요. 선생님은 잠시 나를 바라보았어요. 머뭇거리는 눈빛. 선생님은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렸어요. 선생님 팔에도 붉디붉은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어요. 나와 같이……. 힘들지? 선생님은 딱 이 말뿐이었지만 선생님의 붉은 팔은 내게 모든 걸 말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 혼자가 아니면 절대 울지 않던 나였는데……. 내 몸에는 여전히 붉은 꽃들이 피어 있어요. 하지만 이제 선생님도 나도 더는 긴 팔을 입지 않아요. 붉은 꽃이 온통 피어나도 아이들이 수근거려도 상관없어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붉게 번져가던 외로움. 이제 조금씩, 천천히 사라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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