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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Jan 18. 2023

망각충

1. 망각충과 만나다. (1)

“엄마! 자동차 키!”

현우가 작은 돌하르방이 달린 자동차 키를 흔들어 보였다. 엄마는 뭐든지 깜박 잊는 경우가 많다. 

 “아유 내 정신 좀 봐!”

 엄마가 현관문을 나가다 말고 현우에게 손을 뻗었다. 현우는 잽싸게 손을 위로 올렸다. 3학년 때만 해도 엄마 허리밖에 안 오던 녀석이 이제는 엄마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다.

 “지현우, 엄마 바쁜데 장난할 거야?”

 ”건망증 심한 우리 엄마가 열쇠만 깜박했을까요?“

현우가 빙글빙글 웃으며 식탁 위를 가리켰다. 

 “맞다! 큰일 날뻔했네.”

엄마는 식탁 위의 서류 봉투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기억력 하난 최고라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해.”

 현우가 으쓱대며 말했다. 

“아이구, 정말 고맙구나. 우리 현우. 다 컸네.”

 엄마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다 컸지. 이번 목요일에도 혼자서 집 잘 볼 테니. 엄마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현우의 말에 엄마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미안하다 현우야….”

 “뭐가 미안해. 매년 6월 13일은 나에게도 특별한 날이잖아.”

 “트, 특별한 날?”

 “응, 지현우 자유의 날!”

 “이 녀석이!”

  엄마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현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 지현우 자유의 날이라고 소리쳤지만 사실 혼자 집에 있는 게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슬픈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건 더 싫다. 이럴 땐 현우가 먼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 

 매년 6월 13일이면 엄마는 할머니 댁에 가셨다. 돌아가신 외삼촌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우는 외삼촌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 엄마 말로는 외삼촌은 현우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외삼촌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잘 알지 엄마를 따라 할머니 댁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껏 현우는 할머니 댁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할머니 댁은 남해의 외딴 섬에 있었고 현우는 배를 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 공포증. 현우가 배를 탈 수 없는 이유였다. 출렁거리는 물만 보면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현기증이 났다. 눈을 감고 있어도 출렁거리는 물 위에 있다는 생각만 해도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그러니 할머니가 서울집에 오실 때가 아니면 할머니의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이맘때면 섬 전체에 수국이 가득 피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섬에서 마음껏 뛰어다녀 보는 것은 현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었다. 

 “휴우, 슬슬 학교 갈 준비나 해야겠다.”

 현우는 다시 한숨을 쉰 뒤, 가방을 챙겼다. 알림장을 보지 않아도 오늘 가져갈 준비물이나 해야 할 일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출근하는 엄마를 챙길 수 있는 것도 다 기억력 덕분이었다. 

 “빠진 것 없지? 좋아 그럼 출발!”

  현우는 스스로 묻고 답한 후 현관문을 힘차게 열었다. 좀 전의 우울한 기분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 현우에겐 오늘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신나고 활기찬 하루가 될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현우는 알지 못했다. 현우가 현관문을 나서는 그 순간 살짝 열려 있던 신발 장에서 벌레 하나가 튀어나왔다는 것을 그리고 손톱만큼 작고 온몸에 털이 복슬복슬한 녀석이 공중에서 재주를 넘더니, 우아하게 현우의 책가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계속 수요일 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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