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합격 통지 <2>
“혜연아, 합격 축하한다. 이건 축하 턱!”
<연꽃>의 주인아저씨가 국수 한 그릇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에 있든지 너답게 살면 돼”
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국수 그릇을 두 손으로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혜연에게 <연꽃>은 구원과 같았다. 부모님에게 어떤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했던 혜연은 <연꽃>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저녁값과 문제지를 살 수 있는 정도의 형편이 되었다. <연꽃>의 아저씨는 혜연이가 일하는 동안 틈틈이 공부하는 것도 문제 삼지 않았다. 반대로 유미가 아르바이트한 근처 편의점에서는 그런 것은 일절 용납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었다. 1년 이상 아르바이트했던 유미가 그만둘 때 점주는 무언가 깐깐한 규정을 들이밀며 한 달 치 월급을 주지 않았다. 당연히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도 없었다. 탐욕스러운 어른…. 유미와 혜연처럼 어렸을 때부터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할 친구들에게 어른들의 모습은 언제나 탐욕스러운 괴물 같았다. 그들이 지구인들에게 무조건적 복종과 피를 요구하는 스펙탄토와 뭐가 다른 걸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런 어른 중에도 <연꽃>의 주인아저씨처럼 좋은 사람들도 있다는 점이다. 반면 스펙탄토라고 불리는 프록시마 b 행성인에겐 일말의 자비를 기대할 수 없었다. 스펙탄토는 50년 전 지구에 내려와서 지구 인구의 절반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살아남은 지구인에게도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했다. 그들이 남은 절반의 지구인을 살려둔 것은 수만은 희생에 대한 죄책감이나 자비심 때문이 아니었다. 순수한 가축…. 그들이 매일 지구인에게 일정량의 피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스펙탄토는 지구인을 자신들의 먹이요 가축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스펙탄토의 침공 덕분에 몇천 년간 지속된 인류의 문화와 고등한 지적 생명체로서의 자부심 따위는 불과 10일 만에 모두 무너졌다. 이제는 인류에게 남은 것은 스펙탄토를 위한 가축으로서의 삶뿐이었다.
“아저씨 저는요? 전 뭐 없어요?”
유미가 볼멘소리를 냈다.
“너도 나스키고 학교 합격하면 내가 그때 한턱내마.”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참 이 아저씨 나스키고 입학을 무슨 심심풀이 땅콩으로 보시네. 내가 혜연이처럼 나스키고에 합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면 이런 박리다매 식당에 오겠어요.”
유미가 아저씨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런 유미의 모습을 보며 아저씨가 껄껄 웃었다.
“하하! 알았다고 알았어. 너도 한 그릇 주마.”
“됐어요. 기분 상해서 안 먹을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미는 아저씨가 내준 국수 그릇을 냉큼 받았다.
“역시 여긴 멸치국수가 최고야. 일할 때도 이 녀석 생각이 난다니까. 어떻게 멸치 육수로만 이런 말을 내지?”
유미가 연신 감탄하며 말했다. 혜연이 국수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스키고에서 졸업하면 이 국수 맛도 다 잊게 되는 걸까?”
나스키고의 졸업생이 스펙탄토로 다시 태어나면 지구인이었을 때의 기억은 모두 잊게 된다. 하나의 섹터마다 하나의 나스키고 학교가 있고 각 학교에서 매년 100명의 졸업생이 배출돼 해마다 180,000명의 지구인이 스펙탄토가 되는 꼴이지만 누가 지구인에서 스펙탄토가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문에는 스펙탄토로 다시 태어난 지구인들은 은하계 이동하여 주변 행성 개발을 위한 일을 한다고 했다.
“이깟 국수가 무슨 상관이야. 졸업하면 넌 우리와 다른 존재가 되는 거야. 그리고 어머니 수술 때문에 빌린 돈 같은 건, 갚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유미의 말이 옳다. 스펙탄토가 되면, 아니 나스키고 학생이 되어도 지구인과는 다른 대접을 받게 된다. 죽을 때까지 일해도 절대로 갚을 수 없는 사채의 구덩이는 오로지 지구인들만의 일이지 스펙탄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감히 지배자 스펙탄토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을 간 큰 인간 사채업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스키고 입학…. 혜연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였다는 걸 혜연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 기회가 지구의 1%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이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이를 악물고 나스키고 선발 시험 공부만 한 것도 1%라는 가능성에 전부를 걸어야 할 만큼 혜연의 삶은 비참하고 절실했으니까. 하지만….
“잊고 싶지 않아. <연꽃의 다스함도. 기분 좋은 냄새도 아저씨의 미소도 그리고 너도….”
혜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유미가 혜연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내가…. 내가 기억해. 내가 너를 기억하면 되잖아. 시간이 지나고 100살 가까이 먹어서 죽게 되더라도 네 아이들에게 꼭 널 기억하라고 할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유미는 혜연을 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넌 이제부터 행복한 일만 기억하는 거야.”
<계속.... 목요일마다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