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규 Jan 25. 2023

망각충

1. 망각충과 만나다. (2)


 “손 머리! 움직이면 쏜다!” 

그 녀석이 현우에게 나타난 날은 하필이면 현우가 가장 싫어하는 공포의 수학 시험 날이었다. 수학 선생님이 시험지를 세느라 한눈을 파는 동안에 그 녀석은 검지 크기밖에 안 되는 자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현우의 책상 위에 기어 올라서서는 대뜸 이렇게 첫마디 말을 던졌다.

“손 머리!” 

물론 그때까지 현우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뒷자리에서 실없는 장난을 쳐대던 윤석일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손 머리……. 시험 보기 전에 이 신성한 의식 같은 행위를 안 해본 중학생은 없을 것이다. 눈을 감고 손을 머리 위에 올려놓은 모습……. 흡사 그 모습이 포로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 현우 또래에 친구들은 모두 학교라는 감옥에 잡혀 온 포로들 처지 아닐까? 물론 포로 중에서도 석방이 확실한 몇 명 안 되는 놈들과 현우처럼 아예 포기하고 시니컬하게 총 맞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물론 윤석이처럼 포로들의 희로애락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녀석도 분명 존재한다. 

‘쳇,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 넌 개그맨 되긴 다 틀렸어! 인마’ 

 현우는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물론 반쯤 코 막힌 것 같은 소리를 내는 수학 선생님이 시험 감독을 하는 상황인 지금. 누구든 쥐 죽은 듯이 있어야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나오는 웃음을 어쩌란 말이냐? 현우는 아차 싶었지만, 저승사자라는 별명의 수학 선생님은 현우의 미세한 표정의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웃어? 너 지금 소풍 나왔냐?” 

 코감기 걸린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현우는 빨개진 얼굴로 재빨리 입을 꾹 다물었다. 꼭 감은 두 눈 덕분에 현우의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헤헤! 넌 이제부터 나의 포로야. 그러니까 손 머리하고 움직이면 쏠 거야.”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태 이 자식 미친 거 아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웃음도 놓치지 않는 저승사자의 천리안이 윤석이를 가만둘 리가 없었다. 이제 녀석은 저승사자에게 귓불을 잡아당겨질 거고 아마 저승사자는 녀석이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그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소리에 몸이 움츠려져 모두 얼음 동상처럼……. 어? 그런데 이게 뭐야? 수학 선생님의 호통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잖아? 어떻게 된 거지?

 급기야 현우는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눈 떠! 시험지 뒤로 돌린다. 실시!” 

현우는 저승사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을 번쩍 떴다. 그와 동시에 현우의 눈앞에는 징글맞게 생긴 털투성이 몸에 눈 만 커다란 묘하게 생긴 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뭐야? 이 더럽게 못생긴 벌레는.'

잠시 몇 초간의 침묵 속에서 현우는 그 녀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녀석도 현우를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어쭈!' 

현우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어서 녀석을 휙 날려버릴 준비를 했다. 벌레들을 끔찍이 싫어하는 현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벌레 퇴치법을 쓰기 위해 엄지와 검지에 힘을 모으는 찰나, 녀석은 마치 현우의 행동을 예상이나 한 듯이 순식간에 몸을 공처럼 말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현우에게 작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바보 녀석!"

"어?"

순간 현우는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은 웅크린 몸을 쭉 펴더니 현우의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그 짧은 순간 녀석의 징그러운 몸과 커다란 두 눈이 대문짝만하게 크게 보였다. 그리고 녀석의 날카로운 이빨도…….

"꽉!"

"으아악!"

현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우당탕탕 !“

<계속 ..... 수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야기 요괴와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