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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Feb 01. 2023

망각충

1. 망각충과 만나다. (3)

“야, 그놈의 반창고 보기 흉하다 떼어버려!”

윤석이 실실거리며 현우의 코를 향해 손을 뻗었다. 현우는 얼른 고개를 홱 돌렸다.

“절대 안 돼!”

당연했다. 코끝이 새빨갛게 부어오른 걸 공개해서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여긴 여자애들이 들판에 얼룩말처럼 떼 지어 다니는 교문 앞이란 말이다. 아무리 현우가 연애에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학교 3대 미스터리 든다지만 그렇다고 여자애들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한 녀석은 아니었다. 현우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나 참, 공포의 수학 시험도 끝나 한없이 기분이 좋아야 할 이때 인상을 구기며 코에 반창고나 붙이고 있다니……. 이건 최악이다. 최악!’

 “넌 참 운도 없다. 하필 수학 시험시간에 벌에 쏘일 게 뭐냐?”

현우와 함께 학교 3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히는 유빈이가 반은 걱정이고 반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현우에게 말했다. 

“버, 벌이 아니라니까?”

 현우는 억울해서 괜히 성질을 부렸다. 하긴, 새카만 눈을 달고 있는 이상한 벌레, 게다가 말까지 하는 녀석이 콧잔등을 물었다고 하면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놈이 없을 게 분명했다. 

 “집에 가서 된장 발라!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해 준 적이 있는데 벌에 쏘였을 땐 그거 직방이더라.”

 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윤석이 뒷북을 울렸다. 이 녀석 머릿속에는 온통 게임과 만화 생각밖에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시험도 끝났는데 기분이다! 내가 한턱쏠게”

 윤석이 마치 자동차 뒷좌석에 놓는 장난감 인형처럼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현우가 따라 해보려고 해도 절대 할 수 없는 이 행동 덕분에 녀석은 담임에게 된통 혼났지만, 윤석은 여전히 그 버릇을 못 고치고 있었다. 

 “정말, 노래방이라도 가는 거야?”

유빈이가 눈을 반짝거렸다. 유빈이의 꿈은 가수였다. 그래서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30분은 놓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만날 저음으로 바닥을 기어도 노래방에는 사족을 못 쓰는 현우였지만 오늘 같은 날 녀석의 노래를 듣느라 30분을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현우는 물린 코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남자들끼리 궁상맞게 노래방은……. 피시방이나 가자.”

 “허허 이거 왜 이리 흥분하셔? 내가 언제 그런 거 한턱내는 거 봤냐?”

 “뭐야, 그러면 또 하드냐?”

 유빈이와 현우는 둘 다 실망해서 고개를 저었다.

 “왜 먹기 싫어? 천 원은 돈도 아닌가 보지?”

 “넌 초딩도 아니고 이 길에서 하드를 쪽쪽 빨고 가고 싶냐?”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삼총사 모두 지금 하드를 하나씩 입에 물고 쪽쪽 빨고 있다. 윤석의 별명은 하드 킬러였다. 어렸을 때부터 하드를 무지 좋아했다는 녀석은 하루에 한 개 이상 하드를 먹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단다. 현우는 녀석을 보며 하드에도 무슨 마약 같은 성분이 들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윤석이 가장 좋아하는 하드는 그중에서도 조스 바였다. 검푸른색의 얼음 속에 새빨간 혓바닥이 숨어 있는 조스 바…. 언제나 혓바닥을 푸르고 붉게 만드는 색소 덩어리가 왜 그리 좋은지 현우로서는 도통 모르겠지만 말이다.

 “넌 또 조스 바냐?”

 현우가 눈을 흘기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윤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나는 하드 중에 이게 제일 맛있더라.”

 윤석의 혀는 조스 바 덕분에 이미 검푸른 빛을 띠었다. 

 “하긴 조스 바 이빨로 베어 물면 마치 칠판 긁는 느낌 나잖아. 그 느낌이 좋아서 나도 가끔 먹어.”

“맞아 그 느낌 죽이지 않냐?”

“내가 보장하건대 너희 두 놈은 변태임이 틀림없어. 아, 정말 계속 아프네” 

 현우는 걸음을 늦추며 코를 살살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윤석과 유빈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야기에 열중했다. 분명 오늘 본 수학 시험 이야기일 터였다. 

‘의리도 없는 놈들……. 친구가 아파 죽겠는데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있다니….’

 현우가 두 녀석의 뒤통수를 째려보았다.

 “오늘 시험 12번 문제는 좀 황당하지 않냐? 그게 왜 -1이야?”

 “바보 자식, 원래 어려운 문제 정답은 -1이나 1 아님 0이야 몰랐냐?”

 “흥, 그럼 넌 그 문제 맞았어?”

 “그럼, 딱 반 만 맞췄지만.”

 “반 만?”

 “어휴 아까워. 1에다 작대기 하나만 가로로 딱 그으면 됐는데 하필 그때 샤프심이 다 떨어질 게 뭐냐.”

 “나 참, 그게 반 만 맞은 거냐? 틀린 거지.”

 “그러는 넌? 넌 뭐라고 썼는데?”

 “나? 루트 2….”

 “푸해해! 정말? 야, 그 문제에서 루트가 왜 나오냐? 찍어도 정도껏 해야지. 하하, 현우야 넌 뭐라 썼냐? 응?”

 윤석이 웃으며 현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그 순간 현우는 무언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기억이,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 이상한 벌레에게 물린 이후로 수학 시간에 도대체 뭘 했는지 이름을 시험지에 적고 OMR 카드에 색칠했는지, 검산은 했는지, 아니 심지어 1번 문제가 무슨 문제인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순간 현우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유빈이가 걱정스럽게 현우의 안색을 살폈다. 현우는 겁이 더럭 났다. 마치 이상한 시간 여행하고 온 것처럼 수학 시험시간 전체가 현우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현우는 새하얗게 질려서 서둘러 가방에서 수학책을 꺼내 들었다. 수학책이라도 보면 문제가 기억나지 않을까?

“너 왜 그래? 답이라도 밀려 쓴 거야?”

그제야 윤석의 얼굴도 굳어졌다. 그러나 가장 놀란 것은 바로 현우였다.

“어?!”

 수학책을 펴는 순간 현우는 너무 놀라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두 녀석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현우의 입에서는 숨이 꽉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럴 수가? 분명히 이 수학책은 내 책이 맞는데, 여기 보다시피 내 이름도 적혀 있잖아! 그런데 왜 난 이놈의 책을 펴 본 기억조차 없는 거지? 게다가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수학 기호들은 다 뭐야, 이런 젠장!’ <계속 ....목요일에 업데이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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