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하루는 밍밍합니다
당신의 하루의 맛은 어떤가요? 제 하루는 밍밍한 편입니다. 밍밍하고 가볍지만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는 맛. 비슷한 음식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요구르트는 시큼해서 아니고, 계란흰자가 비슷한가 싶은데 흰자는 영양가가 좋잖아요. 흰 죽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니 아니에요. 좀더 물렁하지만 형태는 있는 맛?
그렇다고 제가 아무 활동을 하지 않아서 밍밍한가 하면 그건 아니에요. 저는 매일 아니면 일주일을 몰아서 그날 그날 활동을 기록하는데요. 동선도 다양하고 하는 운동도 다양하고 강아지 산책도 매일 해줘야 하죠. 회사 가는 길이 좀 지겹긴 합니다. 그래서 제 하루는 왜 이렇게 맛이 없을까 궁금했어요.
저는 3주에 한번 꼴로 심리 상담을 받는데요.그래서 어느 날은 선생님에게
“선생님 저는 저 집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지루해요. 제 하루도 그런 거 같아요.”
라고 했어요. 제가 출퇴근하는 동네는 조금 이 길이 저 길 같고 저 건물이 이 건물 같거든요.
선생님의 위로를 바랐는데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오늘 하루 어떤 감정을 느끼셨어요?”
감정이요? 감정이라니. 곰곰이 하루를 되돌아보는데 무엇을 보고 어딜 가고 뭘 먹었는지 또렷하게
기억이나도 저는 뭘 느끼고 있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 않겠어요!
“음.. 지루? 음.. 슬픈가? 감정이요? 막막하다? 이거도 감정인가요?”
제 하루는 양념이 부족했던 걸까요? 자꾸 하루를 곱씹어봐도 제가 뭘 느끼고 있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강아지를 산책하면서 기뻤나?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감사했나? 회사에서 힘들다고 느끼는 것도 감정인가?
그날부터 저는 눈으로 보는 바깥세상보다 제 안으로저를 지켜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순간순간 사라져 버리거나, 제 안에서 제가 모른 척 해 버렸던 감정들을 꼬리라도 잡아보려고요. 그러다보면 하루가 점점생생해 진다는데 정말일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밍밍했던 하루가 오늘은 좀 더 매운맛인지 단맛 신맛 인지 짠 눈물맛인지 아님 밍밍한 맛이 더 그리울지.
당신의 하루는 어떤 맛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