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다. 매일은 어쩌면 다양한 크기의 상실을 겪는 게 아닐까. 아주 작게는 방금 지나가 버린 몇 초, 냉장고에 있던 좋아하는 얼린 블루베리를 먹어버렸다 던 지, 머리카락이 열개 빠진다던지. 상실이라는 단어 안에서 하루를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아직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상실은 일어나지 않았다. 벌써 앞의 1월 3월은 희미하다. 5월부터 7월은 어떻게 굴러갔는지 눈떠보니 8월이다.
5월에 회사 일이 바쁘고 사람 때문에 매우 힘들었다. 한 사람의 마음과 상황에 따라 얼마나 세상을 삐뚤어지게 볼 수 있는지 몸소 경험 중이었다. 매일 날 잡고 우는 회사 사람 옆에서 나는 몸이 울었다. 이상하게 눈 한쪽이 잘 안 보이고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나 혹시 어디 많이 아픈가 싶게 속이 울렁거렸다.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와 스트레스가 심하면 몸이 아프다더니 정말이네. 이 언니 진짜 사람 고생시키네.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정말 임신이 아니냐는 질문을 한 세 번쯤 듣던 날이었다. 아닐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집에서 갑자기 임신테스트기를 해볼까 싶었고 임신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바로 응급실로 달려가 초음파를 받았고 심장박동이 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기가 생겼어- 와 그 아기가 심장이 뛴다는 건 하나의 차원을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에서 아기를 지우겠다고 결심한 여주인공이 심장소리에 아기를 키우겠다! 낳겠다! 결심하는 이유가 있구나 했다. 그래도 한 이틀은 고민이 많았다. 아직 하고 싶은 걸 못해 본 기분, 앞으로 일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그냥 이곳에 주저앉게 되는 걸까.
남편도 나도 얼른 산부인과에서 전문의의 소견을 듣고 싶어 했다. 그런데 초음파로 심장소리를 듣고 며칠 지나 다시 한 초음파에서 아기의 심장이 멈췄다. 두 번째 초음파를 듣기 위해 예약을 하는 게 어려웠는데, 유산 수술 예약은 당장 당일에 잡혔다. 아니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는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진정제를 많이 투여한 뒤 수술을 하게 된다. 드라마에 약물 중독의 원인으로 나오는 고농도의 진통제와 진정제를 한껏 안겨준다. 수술을 받고 5일 정도는 잘 걷지 못했고 2주 정도 휴가를 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입이 안 떨어졌다. 나는 원래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그랬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야, 가 이렇게 위로가 안 되는 날도 있구나. 여전히 나는 가끔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거라고 말을 하지 못한다.
가만히 있다가 눈물이 왕왕 났다. 병원에서 받은 진정제를 더 먹고 싶었다. 그때만큼 머리와 마음에 아무 걱정이 없는 상태를 느낀 적이 없어서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나 스스로가 당황했던 걸 생각하며 더 좋은 때에 오겠지 위로했다.
회사언니와 있던 트러블에 대해 매니저에게 이야기했을 때 매니저는 내 삶이 쉬워서 잘 대처 못하는 거라고 했다. 얼마나 열이 받던지. 매니저보다 덜 산 나도 누구의 삶을 함부로 쉽다 재단하지 않는데. 병가를 갑자기 내야 돼서 매니저에게는 유산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그러다 쉬던 어느 날은 이제 매니저가 내 삶 쉽다고 함부로 못 말하겠다 하며 남편과 웃었다.
전혀 생각 못했던 상실이었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내 피부로 내 삶에서 겪는 걸 담을 수는 없다는 걸 느꼈다. 스트레스가 아닌 다른 의심을 못할 만큼 날 괴롭혔던 회사언니도,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작지만 마음이 힘든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었다. 많은 게 참 대수로웠는데 또 한 번 내 맘대로 내 계획대로 되는 일은 잘 없다는 걸 다시 맘에 새긴다. 내가 제일 무서워 하는 상실은 오지 않은 만큼, 여전히 무섭지만 어떻게 또 시간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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