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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Oct 27. 2020

친절 기록

나는 사람들의 친절함을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친절보다 무관심이나 사람들의 불친절함이 나의 하루를 망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날에 누가 나에게 친절 했던 기록을 읽다보면 기분이 누그러진다. 






2015. 11. 3

어제는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한 날이었다.

카페에 갔는데 자리가 없어서 창틀에 앉아있었다. 그랬더니 어떤 아저씨가 자기 이제 간다고 자리를 내게 주었다. 앉아서 아이폰으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있던 여자분이 동그란 USB를 주시면서 이걸로 폰 충전을 할 수 있다고 주셨다. 덕분에 배터리 걱정 없이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따뜻했다.


그리고 친구와 지하철을 탔는데 앞에 앉은 언니가 자꾸 나를 쳐다보길래 나도 같이 쳐다보았다.

그분은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시고는 이 지하철은 브루클린의 fulton 역 express로 경로가 바뀌었는데

어딜 가냐고 물었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친구와 나는 더 멀리 가지 않고 내려서 지하철을 갈아탈 수 있었다.


그리고 갈아탄 지하철에서 어떤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쳤는데 나를 보고 환히 웃어주셨다.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다 써놓고 이상하게 모두가 나에게 불친절한 날 꺼내 읽어야겠다.













2017년 5월 5-6일 아침


오늘 낮에는 사람들이 참 친절했다.
프랑스 카페 아저씨는 초콜릿 크라상을 공짜로 주고,
홍수경보가 내린 오늘, 물에 빠지지 말고 돌아서 오라고 길을 직접 안내해주던 공사장 아저씨가 그랬다.

비가 엄청 많이 왔다. 요 몇 주간 흐린 날씨의 반복이었는데
아, 구멍 난 것처럼 비나 많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비가 많이 왔다. 양말 신발 할 거 없이 몽땅 젖고 십 분이면 차로 갈 거리가 한 시간이 걸렸다.


2017년 7월 20일


매일 가는 스타벅스의 점원은 항상 나에게 불친절했다.
그런데 오늘 먼저 환하게 웃으면서 친절하게 손인사도 건넸다. 기록해놔야지.
나중에 보면 기분이 좋더라고. 하하!


2018년 2월 23일 

뉴욕 지하철의 정기권은 방금 표를 긁었으면 10-15분 동안 사용이 되지 않는다.
가끔 다운타운과 업타운을 가는 같은 색의 지하철의 입구가 다를 때가 있다. 오늘은 주황색을 타고 42가 도서관에 가려던 참이었고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쓱 긁고 역 안에 들어섰다. 다운타운 표지판만 있는 걸 확인하고 다시 나와 우산을 펴고 길을 거너 업타운 행 입구에서 표를 긁었다. 아니나 다를까 led알림판에는 just used라고 뜨고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파란 눈에 금발 머리의 언니가 도와줄까 라고 하자, 나는 행여나 나를 돈 한 푼 없는 사람으로 볼까 숨 쉴 새 없이 말했다. 다운타운행으로 갔다가 다시 긁었더니 just used라고 뜬다고. 언니 (사실 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자기도 자주 그런다며 자신의 정기권을 쓱 긁어주었다. 오늘의, 오랜만의 친절.


2018년 10월 10일

2. 가끔 이유 없이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은 배가 불러 산책 겸 간 마트에서 내가 고른 샐러리를 보고 고개를 저으며 이게 싱싱하다며 새 샐러리를 집어주던 직원. 그리고 다른 직원들의 눈치를 본다. 싱싱한 샐러리의 조건이 무엇인지 당최 모르는 나는 직원을 믿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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