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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Oct 20. 2020

말랑말랑 부들부들 파사삭

나는 잘 우는 사람이다. 


나는 눈물이 많다. 엄마, 할머니라는 말에 운다. 친구라는 말에 운다. 사랑에 울고 헤어짐에 울고 밥 먹다가도 운다. 말하다가 나도 모르게 운다. 5년 전에는 너무 눈물이 나 멈추고 싶었다. 끄윽 끄윽 소리만 내다가 한 시간이 갔다. 매우 중요한 발표였는데. 울기 시작하면 멈추는 법은 모르겠다. 나는 잘 우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잘 우는 나는 발표를 무서워한다. 발표를 잘하고 싶어서 회사 스피치 클럽에 들었다. 여기서 울 일이 있을까 싶었다. 가입은 했지만 15번도 채 안 나간 모임에서 나는 3번을 울었다. 


같은 팀에 있는 PM 분이 네 살 아들을 보는 행복에 대해 발표했다. 한국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나는 엄마와 할머니가 생각났다. 누가 말만 시키지 않으면 눈물을 숨길 수 있었다. 갑자기 다른 내 동료가 나에게 발표를 시켰다. 입을 떼자마자 울었다. 코를 훌쩍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끄윽 흑 흑 아들 이야기를 흑흑 들었더니 끄윽 엄마와 할머니가 생각이 나서 어어어어으앙.. 겨우 스스로를 달래 진정시켜 자리에 돌아갔다. 부끄러워 책상만 바라보는데 클럽장이 말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자신의 vulnerability를 드러낼 줄 아는 용기를 칭찬한다고 했다. vulnerability. 해석하면 취약함, 약함, 연약함을 뜻한다. 아, 나는 나의 약한 부분을 참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구나. 그걸 칭찬받고 놀랐다. 어쩌면 당황한 사람들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고자 한 말일 수 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 스스로에 대한 큰 사고의 전환이었다. 


뉴욕에서 나는 길을 걷다 울고 지하철에 앉아 울고 택시에 앉아 엉엉 울어봤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종종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 그냥, 아 저 사람 오늘 힘든 일이 있었나 보네 하고 생각했다. 나도 가끔 울었으니까. 기뻐서 우는 날 보다 힘들고 슬퍼서 울었다. 샌프란 시스코로 이사 와서 출근 한 2주쯤 되는 어느 날, 출근길에 탄 우버 아저씨는 날 보고 자신에게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고 되물었다. 그 일인 즉슨, 아침에 태운 손님이 차를 타자마자 엉엉 울었다는 것이다. 손님이 우는 걸 처음 본 아저씨는 어떻게 그렇게 울 수 가 있는지 너무 놀랐다고 했다. 그 날 점심에 우연하게 매니저와 동료는 실리콘 밸리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매니저는 실리콘 밸리 사람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한다며,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감 넘치고 실수가 없다고 자신을 드러내는데 익숙하다고 했다. 나는 동의하며 내 동료의 다음 말을 들었다. 내 동료는 그에 동의했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커리어 혹은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의 경우 잘못되고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기보다 잘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줘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나의 약함이 남에게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혹은 아주 큰 투자의 기회를 잃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숨기게 된다. 















 클럽장은 용기라고 한만큼 내가 울고 싶을 때 울면 좋을련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운다. 나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잘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약함을 드러내는 것, 남들 앞에서 우는 것은 매우 용기가 필요한 일이구나.  처음 깨달았다. 나의 경우 울고 나면 많은게 괜찮아 보인다. 울고 나면 막혀 있던 게 나가는 기분이 든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질 때면 내 마음이 슬프고 힘들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게 된다. 슬픈 마음이 조금 덜 슬픈 기분이 든다. 울면서 생각이 정리 될 때도 있다. 나의 감정의 슬픈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남에게 쉽게 이해를 구할 때도 있다. 나도 우아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나의 약함을 드러내고 싶을 때가 매우 많은데. 나의 약함을 쉽게 드러내는 나같은 사람에게 자연 스러운 일이지만 누군가는 드러내고 싶지 않을테다. 


드러내지 않고 싶다면, 들여다 보는 건 필요하지 않을 까요 라고 묻고 싶다. 엉엉 우는 것 만이 나의 약한 부분을 들여다 보는 방법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를거다. 아마 눈물로 드러내기보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할 수 도 있다. 아니면 달리거나, 아니면 글을 쓰거나, 들여다보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 할 수 도있다. 내가 잘하고 뛰어나고 자신감 있는 것들은 남들도 쉽게 찾아준다. 너는 이런 사람이잖아, 너는 이걸 참 잘해, 하지만 내가 들여다 보지 않는 약한 부분들, 못난 부분들은 내가 아니면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는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 만큼 사실 나는 나의 약한 부분을 자주 생각한다. 궁금하다. 약한 부분을 들여다 보는 용기가 필요했던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런 용기를 어떻게 가지게 되었을까. 어떻게 들여다보고 인정하며 혹은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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