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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Oct 29. 2020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세요

모르는 사람의 블로그들을 훔쳐보는데,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좋은 글들이 많았는데 모르는 사이니까 선뜻 댓글로 표현은 못하겠고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그러다가 좋아요 라는 말 자체가 소극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의 사전적 정의는 '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하다. '이다.  


나 두부 좋아해 나 고양이 좋아해, 너 뭐 먹을래? 좋아 등등, 좋아 요 라는 말은 취향을 나타내 주고 열정보다는 잔잔한 보통의 일상과 어울리는 말이다. 언어로 정제되면서 모래알 같이 알알이 빠져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이 많지만 특히 좋아해라는 말에 담기란 더 어려운 것 같다. 이제 막 두근거리고 설레는 사이에서도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를 좋아요와 사랑해의 간격 속에서 오랫동안 고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아요, 좋아해 라는 말은 사랑의 감정을 충만하게 전해 줄 수 없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해라는 말보다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가 더 큰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요 처럼 소극적이지만 시작을 알려주는 단어들이 없다면 우리는 진하고 진득한 열정 속에 질려버릴 테다. 




좋아요와 버튼이 합쳐지면 다르다. 좋아요 좋아해요 라고 말을 하는 것보다 의미의 농도가 얕아진다.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간단히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좋아요 버튼의 의미는 가끔 서로 간의 암묵적인 동의 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을 할 때 내가 가까이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무슨 게시물과 사진을 올렸든 좋아요를 누른다. 




친구입니까? 네, 

좋아요 버튼을 누릅니다, 

네, 라는 로직이 생겼다. 가까웠던 사람이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기를 중단하면 왜?라는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면 되는 소극적인 관심의 표현이 하기 싫다면 당신의 감정상태는 어떻게 변한 걸까? 나에 대한 무관심일까? 아니면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마음을 절절히 담은 편지를 쓰거나 매끈하게 흐르는 고백의 말을 나열하는 노력이 필요 없는 좋아요 버튼 클릭. 아 그 친구가 요즘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안 눌러, 기분이 나빠 라는 말을 꺼내면 스스로가 유치하고 속이 좁아 보이며 오면 오고 가면 가는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것 같은 옹졸함과 창피함과 지질함을 불러온다. 그래서 조용히 속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냥 물어볼 수 있다. 야 너 왜 안 눌러줘 (이 질문도 사실 좋아요 수의 신경 쓰는 사람으로 보이기 매우 좋다) 































외국에 오래 나와 있다 보니 한국에서 친분이 잘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한국에 있었으면 소소하게 안부를 묻고 차를 마시고 일련의 친목활동이 가능했을 사이도 금방 멀어진다. 계속 보고 싶지만 친한 사이는 아닌 인스타그램 친구의 게시물도 좋아요를 누른다. 내가 있다는 걸 좋아요 라는 소극적인 행위로 알림을 보낸다. 이 관계에서는 그저 알림이다. 좋아요의 의미는 사라지고 지속적인 문자를 보내거나 연락을 할 수는 없지만 앱에 배지 하나 정도, 알림 하나 정도 남기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좋아요 버튼 하나로 이어지는 사이는 또 진해질 수 없을 거 같아 라는 잡생각을 화장을 지우면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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