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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Sep 11. 2020

풍경으로 지나간 사람들


1. 같은 동네에 2년 여를 지내다 보니 오다가다 제법 여러 번 보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가 아니더라도 이 길 저 골목에서 마주친다.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가느다란 할머니, 그 할머니를 닮은 개. 목줄을 하지 않아도 옆에 연약한 할머니를 따르는 모습이 바스러질 것 같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같이 산 세월이 오래된 건지 아니면 나이 든 채로 서로 만나게 된 건지. 오래된 랩탑을 들고 안경을 쓰고 항상 같은 카페에 주인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대꾸도 잘 안 해주는 카페 직원에게 항상 말을 걸던 아저씨. 3월 부터는 다들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같은 동네에 다른 골목을 걸어봐도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매일 빵빵 거리던 차들도 도시소음도 같이 숨어버렸는지 동네가 멈춘 것 같았다. 


2. 가끔 이유 없이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도 있다. 지하철 카드가 먹통일 때 묻지 않아도 자신의 카드를 긁어주던 사람들. 오늘은 배가 불러 산책 겸 간 마트에서 내가 고른 샐러리를 보고 고개를 저으며 이게 싱싱하다며 새 샐러리를 집어주던 직원. 그리고 다른 직원들의 눈치를 본다. 싱싱한 샐러리의 조건이 무엇인지 당최 모르는 나는 직원을 믿는 수밖에. 더 이상 마트에 가서 누군가에게 의견을 물어보기가 선뜻 쉽지 않다. 인터넷에 들어가 인스타 카트를 검색한다.  원하는 스토어에 장바구니 목록을 배송료가 무료가 될 때까지 빼곡히 넣어본다. 그리고 내 일주일 치 식사를 결정할 재료들을 집어다 줄 얼굴 모를 분의 보이지 않을 친절을 믿는 수밖에 없다. 















3. 휘적휘적 산책을 할 때면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풍경이 되었다. 그들의 구체적인 일상은 알 길이 없다. 집에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밖에 나온 어느 날의 나의 풍경은 건물과 길이다. 다들 그 안에서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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