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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Mar 16. 2022

하이 디스 이즈 유어 그랜마

 



강아지의 입양은 갑작스러웠다. 대학생 때 처음 맡아본 고양이와 룸메이트들의 고양이들을 거치며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이 뚜렷한 고양이와 지내는 게 마음에 들었다. 안으면 따뜻하고 화장실도 알아서 찾아가지만 가끔 굉장히 멍청한 고양이는 어느 날은 사람보다 나은 룸메이트였다. 강아지는 나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초등학교 때 집 앞 대문에 큰 진돗개가 나오질 않아서 너무 무서웠던 나는 등교를 못 한 날도 있다. 강아지가 쫓아와서 골목길에서 엉엉 운 적도 많다. 언제부터 강아지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한 걸까? 그 시작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전히 큰 개는 무섭다. 리트리버도 멀리서 보면 따뜻하고 우람하고 안정감 있다고 생각하지만 키우고 싶지 않다. 무섭다. 그러니까 내가 키우고 싶은 개는 품에 편하게 안을 수 있는 크기의 강아지로 한정된다. 그리고 뽀글뽀글 털이 있어서 손으로 만지작 거리면 부드럽게 감겨야 한다. 어쩌면 유카는 이 조건에 딱 맞았다. 빌리를 임시 보호하면서 작은 개가 무섭게 짖는걸 여전히 무서워하는 날 보고 아마 내 인생에 개를 키우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도 안 돼서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산다. 





나는 1년 동안 옷을 사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잘 덮어 놨던 물욕은 강아지를 위한 쇼핑으로 폭발했다. 강아지 용품의 세계란 무궁무진하고 어쩌면 사람 쇼핑보다 다채롭다. 강아지는 내가 사지 않으면 패딩도 없고 니트도 없고 이름표도 없다. 어머 그럴 순 없어! 우리 강아지 추우니까 패딩도 입혀야 되고 잃어버리면 나한테 전화 와야 하니까 이름표도 붙여줘야 하고 우리 강아지 눈물 자국이 남으면 안 되니까 빗도 사줘야 하고 보송해지는 가루도 사줘야 하고 강아지가 자꾸 무릎을 무니까 못 물게 귀여운 콘도 사줘야 해. 는 결국 내 욕심이다. 사자모양의 귀여운 콘을 사줘도 강아지는 벗고 싶어 하고, 강아지는 눈물자국이 있는지도 모르고 이름표는 밥 먹을 때 자꾸만 그릇에 부딪힌다. 건강염려증이 굉장히 큰 나는 강아지가 기침을 조금만해도 숨소리가 살짝만 이상하고 밥을 어제보다 남기면 큰일이 난듯 전전 긍긍한다. 그러다 강아지 눈동자도 다시 한번 보고 숨소리를 듣겠다고 가만히 강아지 몸에 귀도 대본다. 우리 집에 오고 이틀은 나만 보던 강아지는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가만히 놔두는 남편을 더 좋아한다. 


엄마랑 할머니는 항상 강아지를 반대했다. 엄마에게 임시로 맡고 있는 강아지라고 소개했다. 혼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 하이 유카~ 나이스 투 밑튜 ~ 아임 써니~ 디스 이즈 유어 그랜마~." 

그러면서 한 번도 나에게 이야기 해준 적 없던 어릴 때 잠시 키운 캔디 이야기도 해준다. 할머니는 개새끼 갖다 버리라고 털 달린 짐승 거두는 거 아니라고 하고 엄마는 옆에서 증조할머니라고 영어로 소개해주라고 거든다. 욕하던 할머니도 눈 감겨하는 강아지를 보며 아이고 강아지가 졸려한다고 유카 안녕하신다. 시댁은 나처럼 강아지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슬프다는 이유로 강아지를 반대하셨는데, 유카 안 보이면 유레카 어디 갔냐고 찾으시고 임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아기를 토론토로 데려와야 하나 고민하신다. 강아지 이야기로 세 나라에서 세 가족이 웃게 된다. 




본인의 세상이 뚜렷한 고양이보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강아지가 같이 살기에 더 잘 맞는지도 모른다. 관심이 필요한 서른이라서 좋아하는 사람이 (전제조건) 오늘 뭐하는지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물어봐주면 좋아한다. 강아지는 말없이 내 하루를 바라보고 함께한다. 내가 우스운 옷을 입어도 내가 갑자기 엉엉 울어도 아니면 내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까만 눈으로 그냥 본다. 아직 혼자 잘 못 있는 강아지를 우리는 마트를 빼고 어디든 데리고 다닌다. 강아지는 어디서든 모두를 웃게 한다. 강아지의 하루는 밥과 나와 내 남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강아지 덕분에 우리는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굉장히 부지런해졌다. 아침잠을 더 자고 싶다가도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을 무시하고 싶다가도 움직이게 된다. 강아지는 자다가도 우리가 움직이면 조용히 따라와서 어느새 발 가까운 뒤에 누워있다. 간식을 손에 들면 큰 두 눈을 반짝이며 내 앞으로 쪼르르 와서 앉는다. 내가 집에 들어오면 엉덩이와 꼬리를 힘껏 흔들며 달려온다.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를 누가 버린 걸까.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으니 강아지의 현재만 생각해야지. 옛날의 너의 모습이 어떠했든 지금 내 앞에 배 내밀고 잠든 강아지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마음이 달큼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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