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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순 Apr 09. 2018

사회생활

 퇴근 후 저녁시간,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며, 전해준 사연 하나.

 

 " 요즘 주변에서 너도나도 다 인스타그램 하는데 왜 안 하시나요? "

 " 저도 한때 했었습니다. 주로 음식이랑 방문했던 특별한 장소, 추억 사진들을 찍어서 올리곤 했었지요. "

 " 그런데 왜 그만두셨나요? "

 " 어느 날, 정말 맛있는 음식 사진을 올리고 났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내가 이걸 아무 생각 없이 올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누군가는 이 음식들은커녕 한 끼를 채우는 것도 힘든 사람이 있을 텐데 하는 죄책감이요. "


 음식 사진을 올리면서 그런 죄책감은 느낀 적이 없을뿐더러, 나는 오히려 안심했었다. 음식은 명품 물건들을 이용해 우월감으로 존재감을 찾는 것보다는 값비싼 허세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겼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니. 이 정도는 작은 사치일 뿐이라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함부로 안심했던 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 일처리를 이렇게 하시면 안 되고요. "

 (일처리를 이따위로 하냐)

" 이 프로젝트는 사원 혹은 대리가 맡을 일이 아닐텐데요? "

 (모르겠고, 책임자 나오라고 해)


 다른 부서 혹은 관계 甲사에서 관련 자료를 요청했는데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종종 듣는 말. 회사 생활하면서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아무렴 자료를 만들어 줬던 사람들이 과연 일처리를 그따위로 해서 받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저 한마디로 원하는 것이 있기까지 담당으로써 했던 수없이 많은 고뇌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짓밟아 버린다. '자신이 했더라면 내가 마무리지은 상태보다는 훨씬 우수했을 것이다.'라는 전제가 깔린 시퍼런 칼날 같은 말. 다른 사람이 내 소중한 노력의 시간들을 평가하는 말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매번 의연해지려고는 하는데 매년 나이를 먹어도 그게 쉽지가 않다. 정말 그렇게도 내 능력이 부족했던 걸까.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은 유난히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들만 모이는 성향이 있다. 보수적이고 가방끈이 매우 굵거나 긴 사람들을 뽑는 어이없는 전통 때문인지 가만히 보면 그런 걸 갖지도 못한 내가 여기 앉아있는 게 어이없을 정도. 하지만 잠깐의 틈이라도 보였다가는 동료들이 '너는 이 무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야.'라는 주홍글씨를 새겨주면서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도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머리가 자란 건지 이제는 일하다 보니 뭐가 잘못된 건지 보이기 시작하기는 하나보다. 甲사의 직원일수록, 그러한 포지션에 다다르기가 상당 부분 힘들었다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인 것일까. 프라이드에 갇혀서 저런 말을 자주 내뱉는 사람들을 보면서 반성을 참 많이 하고 있다. 그동안의 나는 얼마나 아무런 의도 없이, 자각 없이 남이 시간과 건강을 갈아 넣어서 만든 것을 깔보고 무시하고 있었을까. 음식 사진 하나를 올리면서도 타인이 받을 잠재적 상처를 생각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 한마디로 타인의 하루를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 저도 저런 甲사에 가면 그렇게 변할까요? "


" 응. 정말 똑같은 판박이가 될걸.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냐. "


 동료직원이 내게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 것 마냥 이야기한다. 잘못된 것들을 고치지 않으면서 수십 년간 전통처럼 내려온 문화인데 개인이 발끈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옳고 그르고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바는 분명히 있지만, 의견이 다른 사람을 질타하고 질타당하고 복수하고 서슴없이 내뱉는 언쟁들을 보자니 너무나 피곤해서 처음에 가졌던 내 생각을 붙잡고 있는 일도 피곤해진다.

 인공지능의 살인 로봇을 개발 중이라는데 선진국은 전부 하고 있는 일들을 우리 역시 진작에 착수했어야 한다는 울분을 터뜨리는 사람들, 무분별한 폭행과 살인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꽃뱀을 운운하는 사람들,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웃나라를 보면서 잘되었다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아는 사회라는 건 너무나 도덕 교과서에 불과했다는 한계를 느끼고 있다. 당장 가십거리에 감정 이입하면 나만 손해라는 걸 알고 있어도 그만큼 감정이입이 가장 잘되는 소재들이니까. 나른한 오후, 달콤한 디저트와 홍차, 소소하게 좋았던 작은 일상의 내 기분마저 송두리째 염색해버리는 소란스러움이, 그 현실이 사실 요즘 나는 너무도 버겁다. 나도 완전히 사람들에게 염색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숨이 막혀온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바보같다고 할지라도 서로 위하고 사랑하고 챙겨주는, 만화 속의 세상으로 도망가고 싶은 어느 날.


Atashin'chi / あたしンち / 아따맘마 ⓒMarmalade/KADOKAWA, SHIN-EI,ADK

   

   매번 재방송을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 애니메이션 속의 세상은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너무 착하기 짝이 없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도 아직은 '사람들의 본성은 생각처럼 악하지 않다.'고 계속 믿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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