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와 공유를 조절하는 자유인간
혼자 있으면 더 마음이 편해지고 사람들과 생각차이로 인해서 마음이 아플 이유가 없기 떄문에 그 무엇보다 편안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이야기 한다. '혼밥', '혼술' 감정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택한 피난처. 나도 혼밥이 좋고, 혼술이 좋고,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보다 혼자서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 어쩌다가 업무상 외부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 그 날 하루는 지쳐서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티비같은 것들만 보고 있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그 순간, 그 어떤 미래도 과거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당장 처리해야 할 문제도 없다는 그 상태의 희열은 충분히 편안하고 번잡스럽지 않아서 좋다. 그럼에도 그렇게 혼자를 좋아하고 혼자를 원하는 나는, 참 이중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사실 혼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실격이다. 혼자 있는 순간은 너무너무나 좋은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혼자 있는 순간 제일 많이 하는 것은 퇴근 후의 달콤한 맥주와 함께 할 수 있는, 가상의 사람들의 삶을 제3자로서 엿보기만 할 수 있는 '드라마'다. 어떤 관계에서 피상되는 갈등과 그 해소의 순간에서 당사자가 되어서 마음에 생채기 내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관계에서 오는 재미는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묘하게 공존하는 듯하다.
사실은 상처에 지독히도 당해서, 혹은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자기방어차 나는 '혼자'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비혼'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상대방으로부터 얽매이는 구속과 갈등에 지쳐버려서 아예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때 이어폰으로 듣던 나만의 희열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싶어서 공유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의외로 다른 사람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을때 어쩐지 서운하기도 하고 노래 자체에 그런 아쉬운 순간들이 녹아드는 것 같아서 좋아하는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모험은 가려서 하는 편이다. 한번 그러한 추억을 노래에 새기면 그 다음에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순간이 떠올라서 처음 마음에 드는 노래를 들었을때 느꼈던 희열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세상에는 분명히 혼자서 느껴야 온전한 순간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혼자 시간을 보낼적에 상상의 타래를 풀어내는 도구가 글쓰기가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나는 그 스토리텔링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어서 공유하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나의 이중적인 모습에 감히 내 자신이 혼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훈장을 달지는 못하고 있다.
혼자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가끔은 서툴게 공유하고 싶다. 결국, 생각해보면 혼자 있고 싶을 때와 공존하고 싶은 순간들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그때그때마다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셀피'가 왜 생겨났고 셀피를 위한 카메라 받침대가 왜 나타났을까? 결국 혼자와 공유 그 중심을 조절하기 위해 있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같은 물건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고, 사회적 실패자도 아니라는 말이다. 원할 때 공유하고 원할 때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장님, 제발 이번 주말에 어디가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점심시간에 같이 먹어야한다고 강요하지 말아주셔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