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만 '선택과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다.

분산이 꼭 나쁜걸까

by 향순


흔히 성공한 사람들을 예시로 들면서 우리는 '일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일본의 한 작가는 자신의 성공의 원인은 소질과 능력과는 관계 없으며 어떤 것이든 한가지를 오래 지속하면 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온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런 궤도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욕심이 많아서인지 늘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했고, 어렸을 때부터 여러가지 분야를 기웃기웃거리며 다양한 분야를 도전하기를 좋아했다. 그 버릇은 성인이 되어서인 지금까지도 남아서, 어떤 때는 이렇게 글만 쓰고 싶다가도 어떤 때는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고 싶고, 발레도 하고 싶고, 피아노도 치고 싶고, 그렇다고해서 내 직업적 소양과 능력에 있어서 다른 직원보다 뒤쳐지고 싶지도 않았다.


과연 그럴까?





다양한 분야를 익히는 것은 일단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어떤 일이던지 간에 일정 시간 이상을 전념해야 그 분야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한계선을 밟고, 넘어서야 비로소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조금 더 많은 소득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코스에 진입시키고, 상당부분의 시간을 수학, 영어, 소프트웨어등에 전념시키며 세상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가기도 전에 그에 맞는 형태로 조각해나간다. 나도 꼬맹이시절에 피아노든, 발레든 배웠던 시간은 있었지만 누구나 그렇듯 대학수험에 전념하는 동안에는 어른들이 원하는 완벽한 지름길을 찾기위해 최대한의 시간을 수학, 영어에 할애했고 하고 싶었던 다른 모든 욕망들을 잠재웠다.


대학을 들어와서 고등학생때 잠재웠던 그것들을 다시 펼쳐서 늘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한학기만에 보따리를 풀기는 커녕, 또다시 직장을 잡기위해서 슬며시 빠져나오는 내용물들을 진정시키고 더더욱 꽁꽁 싸매 가슴 구석히 놓아두어야 했다.


그래서 그 '일만 시간의 법칙'에 맞게 일만시간이 경과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업은 얻었고, 직업을 얻고나서도 내 욕망의 주머니를 풀고 싶은 의사에는 관계없이 하루 온종일은 직장에서 벌어지는 상투적인 일들로 할애해야 했다. 이대로 구석에 묵혀두다가는 곰팡이가 생겨서 온 정신을 병들게 할 거 같았다. 차라리 한번에 묶어 처분하기 보다는 하나씩 풀어서 알맹이들 하나하나 맛보고 맛이 없으면 비로소 안심하고 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언 묵혀둔지 9년째 된 보따리 해체를 시작했다.





발레학원을 등록했다. 어린시절 180도로 유연하게 휘저었던 몸뚱어리가 도무지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땀을 송글송글 흘리면서 의미없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6년만에 다시 연필과 붓을 들었다. 퇴근하고 맥주에 쩔어서 쓰러지지 않고 의식적으로 도화지를 사고 물감을 사서 뭐라도 끄적이기 시작했다. 500원짜리 동전을 들고 동전 노래방을 가서 한껏 뽑아보고 먼지 쌓인 피아노책들을 다시 꺼내들었다. 피아니스트의 내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바라는 목표는 그저 딱 한곡, 누군가 들어줄 수 있을 정도의 딱 한곡만 완성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따리는 모두 풀어헤쳤다. 이제 내 수중에 굴리는 공들은 더이상 한가지가 아니다. 마음껏 굴리고 나면 게중에 하나정돈 여한없이 버려도 미련따윈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동시에 수많은 공을 굴리는 나는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한가지 일에만 집중적으로 몰두해서 결실을 맺는 전문가로 가는 지름길에서 덜떨어진 사회적 실패자일까?


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는 가지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도 직장에 도움되는 일이 아니라, 색다른 일에 시간을 할애한다는 행위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꼈다.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에게 뒤쳐질 것만 같고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일들을 제대로 핸들링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취미를 가지라고 권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한 취미를 가짐으로써 더 리프레시한 상태로 즐겁게 일에 몰두할 수 있다고. 나의 경우는 리프레시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보따리 해체는 아니었다.

몇십년간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는 것, 하고 싶은 다방면의 분야 모두에서 최고가 될 수도 없을테지만 될 필요도 없었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만시간의 법칙'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저 성공하기 위해서 한가지 분야에만 몰두하면 행복한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 사람은 그냥 그런 성향인 것이고,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렇게나 다채로운 세상에서 어떻게 한가지만 맛봐야한다는건지!


나는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시간이 너무나 지겨웠고 불행했다. 그게 옳다고 가르침받아서 그렇게 참느라 보낸 시간들이 오히려 아까울 지경이다. 나는 욕심이 많다. 최대한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히려 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이 제한되어 있음에 더 소중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고 더 불행하지 않다. 한가지 분야에 최고가 아니어도 다양한 장르를 맛보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세상에는 '일만시간의 법칙'이 맞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고 이러한 법칙으로 사는 것은 의무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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