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이천포럼의 SK의 전략적 역할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이 디지털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전략 기술(Strategic Technology)’로 부상하며, 세계는 지금 보이지 않는 ‘AI 패권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풀스택(Full-stack) 지배’를 추구하는 가운데, 유럽, 중동, 일본 등 각국은 저마다의 강점을 활용한 독자 생존 전략, 즉 ‘소버린 AI(Sovereign AI)’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각축전 속에서 한국 역시 소버린 AI 생태계 구축이라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했다. 본고는 2025 이천포럼에서의 석학들의 토론 내용을 기반으로 글로벌 AI 전략의 최신 동향을 비교 분석하고, 기술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진단함으로써, 대한민국과 SK그룹이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아가야 할 차별화된 전략적 방향을 학술적 논거와 실증적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소버린 AI를 향한 각국의 해법은 자국의 산업 구조, 기술 수준,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다채롭게 전개되며, 이는 국가 차원의 혁신 시스템(National Innovation System)이 AI 시대에 어떻게 변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미국과 중국은 하드웨어부터 모델, 서비스까지 전 영역을 아우르는 ‘풀스택 통제’를 목표로 삼지만, 그 방식은 다르다. 미국은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등을 통해 민간 기업의 혁신을 지원하고 동맹국과의 기술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개방형 생태계 전략을 구사한다.[1] 반면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데이터 통제를 통해 자국 기업을 육성하고 기술 자립을 추구하는 국가 주도형 모델을 고수하고 있다.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은 거대 단일 모델 경쟁에서 벗어나, ‘미스트랄 AI(Mistral AI)’와 같은 효율적인 오픈소스 모델을 중심으로 한 개방형 생태계를 통해 ‘디지털 주권’을 확보하려 한다.[2] 이는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시티 등 특정 산업(Vertical)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하는 실용적 노선이다.
**아랍에미리트(UAE)**는 국영 기술연구소(TII)가 개발한 거대언어모델 ‘팔콘(Falcon)’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중동의 AI 허브를 자처하고 있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기술과 인재를 단숨에 확보하고, 자국 문화에 맞는 모델 현지화와 ‘주권의 브랜드화’를 통해 차별화를 꾀한다.[3]
일본은 LLM 자체 개발 경쟁보다는, 로봇, 첨단 제조 등 자국의 전통적 강점 분야에 AI를 접목하여 고령화 사회의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증강(Practical Augmentation)’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4]
이처럼 세계는 단일한 성공 방정식이 아닌, 각자의 비교 우위에 기반한 최적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한국 역시 단순히 빅테크를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비대칭 전략이 시급함을 시사한다.
차별화된 전략 수립을 위해선, 현재 AI 기술 패러다임이 겪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AI가 지식과 추론 능력을 바탕으로 ‘정답’을 제공하는 LLM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복잡한 과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하고 조율하는 ‘행위의 주체’, 즉 AI 에이전트(AI Agent)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르코 이안시티(Marco Iansiti) 교수가 말한 ‘AI 기반 운영체제(AI-based Operating System)’로의 전환과 맥을 같이 한다. 즉, AI가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는 도구를 넘어, 비즈니스 프로세스 자체를 자동화하고 최적화하는 핵심 동력으로 진화하는 것이다.[5]
AI 에이전트는 LLM을 ‘뇌’로 삼고, ‘메모리(Memory)’와 ‘도구(Tool)’를 활용해 인간의 의도를 파악하고 실제 업무를 대리하는 자율적 소프트웨어다. 스탠퍼드 대학교와 구글 리서치가 발표한 논문에서 여러 AI 에이전트가 상호작용하며 인간 사회와 유사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 ‘생성형 에이전트(Generative Agent)’의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듯, 이는 단순한 챗봇을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기술이다.[6]
이러한 ‘에이전틱 AI(Agentic AI)’의 등장은 AI 산업의 ‘티핑 포인트’로, GPU, 클라우드 인프라부터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전체 기술 스택이 ‘에이전트 실행 최적화’라는 새로운 기준에 맞춰 재구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AI 기술을 레거시로 만들 수 있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에게 새로운 전략적 기회가 열린다.
AI 에이전트 생태계의 다음 장(Next Chapter)은 모든 전문가가 지목하듯 ‘에이전트 인터넷(Agent Internet)’이다. 이는 수많은 에이전트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인터넷 환경을 의미한다. 이 거대한 생태계에서 진정한 전략적 요충지는 눈에 보이는 애플리케이션 레이어가 아닌, 그 기반을 이루는 두 개의 핵심 기술 기둥, 바로 ‘프레임워크(Framework)’와 ‘프로토콜(Protocol)’에 있다.
이는 기술 생태계 전략의 권위자인 마이클 쿠수마노(Michael Cusumano) 교수가 강조한 ‘플랫폼 리더십(Platform Leadership)’의 핵심과 일치한다. 개별 애플리케이션(앱)의 경쟁을 넘어, 생태계 참여자들이 혁신을 일으키는 ‘판’ 자체를 장악하는 기업이 궁극적인 승자가 된다는 것이다.[7]
프레임워크는 에이전트를 손쉽게 만들고 실행하며 조율하는 ‘런타임 오케스트레이션 플랫폼’으로, AI 에이전트의 뼈대를 구성한다.
프로토콜은 에이전트 간, 혹은 에이전트와 도구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표준화된 통신 규약으로, 신경망과 같은 역할을 한다.
현재 한국은 이 두 가지 핵심 기반 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엄청난 기회다. SK텔레콤의 통신 인프라, SK하이닉스의 제조 데이터, SK에너지의 스마트그리드 등 SK그룹이 보유한 방대한 산업 자산과 도메인 전문성은 에이전트 프레임워크와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실증하기 위한 최적의 테스트베드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LLM 경쟁의 룰을 재정의해야 한다. 막대한 자본과 컴퓨팅 자원이 소요되는 ‘프런티어 모델’ 경쟁은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직면한다. 실제로 OpenAI의 GPT-4 훈련 비용은 1억 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차세대 모델은 그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8] 따라서 OpenAI나 구글과 수백조 원의 판돈이 오가는 게임을 벌이기보다, 경쟁력 있는 오픈소스 모델을 활용하고 우리가 가진 강점과 결합하는 편이 현명하다. 최근 SK텔레콤이 주도하여 출범시킨 ‘AI 피라미드 클럽’과 AI 기술 동맹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GTAA)’는 이러한 개방형 협력 전략의 구체적인 실천 사례라 할 수 있다.[9]
둘째, 한국이 가장 잘하는 ‘버티컬 AI(Vertical AI)’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SK텔레콤이 AI 반도체 자회사 사피온과 AI 스타트업 리벨리온의 합병을 추진하는 것은, SK하이닉스의 HBM 메모리 기술을 중심으로 LLM의 핵심 아키텍처인 ‘트랜스포머’를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독자적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스택을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10] 이를 기반으로 반도체, 자동차, 통신, 에너지 등 특정 산업 영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버티컬 AI 솔루션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우리의 승리 공식이 될 수 있다.
셋째, SK는 ‘국가적 오케스트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이는 경영학의 ‘비즈니스 생태계’ 이론에서 말하는 ‘핵심종(Keystone Species)’의 역할과 같다. 핵심종은 생태계의 건강과 안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종으로, SK는 다양한 산업의 기업들이 AI 기술을 활용하고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플랫폼과 표준을 제공해야 한다.[11] 예컨대 산업별 에이전트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퍼블릭 MCP(Multi-agent Communication Protocol) 마켓플레이스’와 같은 표준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은, 우리가 직접 모든 것을 만들지 않고도 생태계의 과실을 얻는 길이다. 뤼튼(Wrtn)이 국내 수요를 장악하며 AI의 저변을 넓히고 있듯, 먼저 국내 시장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 그 신뢰성을 바탕으로 글로벌로 나아가야 한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산업의 룰 자체를 바꾸는 거대한 힘이다. LLM이 확률적 통계에 기반한 ‘확률적 앵무새(Stochastic Parrot)’에 불과할 수 있다는 비판처럼, 현재의 기술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12] AI의 진화는 이제 막 배아 단계를 지났을 뿐이며, 진정한 혁신은 에이전트들이 서로 협력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단계에서 폭발할 것이다.
한국의 소버린 AI 전략은 ‘국산 LLM 개발’이라는 단일 목표에 갇혀서는 안 된다. 선택과 집중의 본질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싸우고 어떻게 이길 것인가(Where to play, How to win)’를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SK그룹의 길은 명확하다. LLM 경쟁의 추격자가 아닌, 다가오는 ‘에이전트 인터넷’ 시대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산업적 강점을 기반으로 버티컬 AI의 승자가 되고, 생태계를 조율하는 핵심 프레임워크와 프로토콜의 표준을 선점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AI 주권’을 확보하고 글로벌 시장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1]: The White House, "FACT SHEET: CHIPS and Science Act Delivers for America," August 8, 2024.
[2]: Financial Times, "France’s Mistral AI blows hole in dominance of US tech giants," December 11, 2023.
[3]: Reuters, "Abu Dhabi's TII launches 'world's best open-source' AI model," August 30, 2023. [4]: The Japan Times, "How Japan is leveraging AI to tackle its demographic challenges," October 26, 2024.
[5]: Marco Iansiti and Karim R. Lakhani, "Competing in the Age of AI,"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January 2020.
[6]: Park, J. S., O'Brien, J. C., Cai, C. J., Morris, M. R., Liang, P., & Bernstein, M. S. "Generative Agents: Interactive Simulacra of Human Behavior." arXiv preprint arXiv:2304.03442, 2023.
[7]: Michael A. Cusumano, Annabelle Gawer, and David B. Yoffie, "The Business of Platforms: Strategy in the Age of Digital Competition, Innovation, and Power," Harper Business, May 2019. [8]: MIT Technology Review, "The staggering cost of training AI models is becoming a problem," November 1, 2023.
[9]: 조선비즈, "SKT, 도이치텔레콤·싱텔 등과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 출범," 2024년 7월 26일.
[10]: 중앙일보, "SKT, AI 반도체 자회사 사피온-리벨리온 합병 추진," 2024년 7월 12일.
[11]: Marco Iansiti and Roy Levien, "The Keystone Advantage: What the New Dynamics of Business Ecosystems Mean for Strategy, Innovation, and Sustainability,"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October 2004.
[12]: Emily M. Bender, Timnit Gebru, Angelina McMillan-Major, and Shmargaret Shmitchell, "On the Dangers of Stochastic Parrots: Can Language Models Be Too Big? ," FAccT '21: Proceedings of the 2021 ACM Conference on Fairness, Accountability, and Transparency, March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