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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심 Aug 08. 2022

눈치 보는 아이 뒤에 깻잎 아빠가 있다

남의 생각과 감정을 배려하는 사람들

9살 아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눈치 본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눈치 보는 것도 나를 닮았다. 허허, 제 발 저려 괜히 미안함을 느낀다. 나도 많이 들어본 말이기도 하다. 둘 다 그런 소릴 듣는 이유는, 아들과 내가 똑같이 지닌 남다른 예민함때문인 것 같다.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이 남의 생각과 감정을 잘 살피는 것이라고 하니, 남을 살피는 것이 어찌 보면 ‘눈치 보는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 같다.



세 살 아이도

눈치를 보나?


꾀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 옆집 사는 이웃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이웃이 차를 마시며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들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말했다.

“어머 애가 눈치를 보네”

뜻밖의 말에 우리 부부는 순간 너무 당황했다.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렇게 보여?”라고 아내가 말하며 얼버무렸다. 그 이웃은 유아교육을 공부한 전공자로서 유치원에서 근무하며 눈치 보는 아이를 종종 봤다고 말했다. 그 말 뒤에는 우리 부부가 눈치 준다는 의미도 숨어있는 듯했다. 어쨌든 그 권위에 설득되었는지 그날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 말이 신경 쓰였는지 혹은 우리가 애를 잘못 양육하고 있나 염려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아들이 놀다가 아내랑 나를 자주 쳐다보긴 했다. 눈치 보는 듯이 보였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소심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이웃의 뜻 없는 말이 기분 나빴는지 ‘섬세한’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다. 그 일 이후로 그 이웃에게 항변이라도 하듯이 아들이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증좌’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아들이 사람을 ‘좀’ 많이 관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낯선 곳에 갔을 때 종종 길 위에 차를 보고 놀란 사슴처럼 멍하니 서있을 때가 있다. 특히 다양한 자극과 감정이 동시에 일어날 때 그런 것 같다. 새로운 곳에 가면 서서 주변 사람과 사물을 한참 관찰한다. 어쩔 때 보면 느려 보이기도 해서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타인을 잘 관찰하는 것이니 좋은 거라 생각했었다. 한 번은 아들의 세심한 관찰력이 빛을 발휘한 적이 있다. 같은 반의 친구 둘이 다툼이 있어 아이들의 부모들끼리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되었다. 다툰 당사자도 모르는 그날의 상세한 일을 아들이 기억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말해줬고, 다툰 아이들의 부모에게 사건의 전모를 전해주어 서로 오해를 푼 일도 있었다. 이쯤 되면 아들이 눈치를 본 것이 아니라 주로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아내는 아들이 누구를 닮았는지 늘 궁금해하는 것 같다. 아들이 눈치 본다는 말을 들을 때도 그렇고 남을 잘 관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일단 자신은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나를 쳐다본다. 그 눈빛이 나를 의심하는 것 같이 느껴졌고 그 합리적인 의심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렇다 나도 왕년에 눈치 본다는 말을 좀 들었던 사람이다.



눈치를 많이 보던 나는

깻잎 어른이 되었다


나의 예민함을 적극 활용하여 남의 감정과 생각을 살핀 덕분에 한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려심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남들이 하는 칭찬에 취했는지 모든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모임을 가지고 집에 오면 너무 지치는 기분이었다. 내 얘기는 별로 하지도 못하고 남들 얘기만 열심히 들어주고, 또 그 생각이 맴돌아 쉬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아내와 나는 같은 대학에서 만나 같은 서클에서 활동했다. 주변 사람에 대한 지나친 배려가 그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깻잎만 안 떼어 주었지 지나치게 후배와 선배를 두루 챙겼었다. 그 당시 공대생이었던 나는 컴퓨터를 잘 다루어 주변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일에 도움을 주느라, 데이트 시간을 줄이는 만행을 저지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을 배려할 때 우선순위를 두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현명한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을 먼저 신경 쓰고,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참기 위해 노력한다.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은 많은 자극을 동시에 크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자극들 중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지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어 결정장애 혹은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것은 여러 자극 혹은 생각들의 중요도를 매기는 훈련을 평소에 꾸준히 하라고 한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을 배려하려고 하기보다 중요도에 따라 배려심을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깻잎을 떼주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꾸준히 중요도를 인지하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예민하거나 섬세한 사람들은 다양한 편견과 오해를 겪으면서 사는 게 일반적인 것 같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극복하며 잘 살아간다.





이미지출처: scientificamerican.com /worldde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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