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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심 Aug 22. 2022

아내의 미니멀 라이프 선언, 내 물건들이 위험하다

남의 허물이 더 커 보이는 심리


트렌디한 시대의 흐름에 우리 집도 예외일  없는 건가?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미니멀한 라이프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선언이 아니었다. 며칠간 아내가 저장 강박에 관한 다큐를 몰아보더니, 끔찍한 미래가 우리 집에 현실로 닥칠지 모른다는 걱정을  것이었다. 어디서 우려의 근거를 찾았는지 모르지만, 아내가 저녁을 먹으며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눈에 거슬리는 아내의 물건들도  기회에 처리할  있겠다는 생각에 내심 아내의 깜짝 제안을 반겼다.



그날 이후, 며칠간 집에는 이렇다  변화가 없었다.   쓰레기통만 여러  비워졌을 뿐이고, 여러 물건들이 서로 자리 바꿈을 했을  물건이 줄어드는  같지 않았다. 내가 도와줄 것이 없는지 조심스레 물었지만, 아내도  버려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것같이 보였다. 그리고 아내가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버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겠거니 생각했다. 섣불리 아내의 물건을 거론하는 경솔함을 보이지 않도록 나는  참아냈다.




내 물건들이

타깃이 되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에 물건들이 가득했다. 드디어 아내가 실행으로 옮길 결심이 섰나 하고 생각하며 나도 버리는 것을 도울 생각에 걸음을 재촉하여 가까이 가보았다. 두둥… 그 물건들 대부분이 나의 것들이었다. 내가 강의 듣던 자료들/출력물이었다. 잠시 멍하니 서서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나의 전공서적과 소책자들도 심판대에 올랐다. 이것들은 이사 올 때  넣어둔 박스채로 그대로였다. 책장은 아이의 책으로 가득하여 내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것이다.



“이거 다 내 거잖아!”



아내의 어색하고 다정해 보이는 얼굴을 보며 '분서갱유가 이런 것이었을까?'라고 생각했다. 진나라 시대에 진시황의 명령에 의해 서적 등 엄청난 지적 자산들이 소실되었다. 그 당시 문인들의 고통이 나에게 전해졌다. 비록 모든 자료들이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은 아니지만, 내가 오랫동안 공부하던 것들이라 나의 일부이기도 했다. 언제든 막히는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해줄 지식창고 같은 것이었고, 나의 빈약한 기억을 보충해줄 자료들이었다. 하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이 자료들을 찾지 않았고, 오랫동안 박스를 열지도 않았다. 언제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집안 한구석들을 당당히 차지하도록 방치했었다. 아내는 나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 물건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갖는 가치를 숫자($)로 환산하여 말해줬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꼭 필요한 자료는 스캔/사진 촬영을 하는 것이 어떻냐는 말도 덧붙였다. 애초에 뜯지 않은 박스는 나의 빈약한 명분을 반증했고 오히려 그동안 쓸모없는 물건을 방치한 나의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



“너꺼는?!”



이 짧은 말은 전선을 확대하자는 나의 굳은 의지의 표출이었다. 아들이 아기일 때 쓰던 물건들도 내 것들 옆에 약간 있을 뿐 왜 아내의 물건들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을까? 아내의 옷장에는 입지 않는 옷이 가득했다. 20년도 더 된 티셔츠와 살 빼면 입겠다고 하던 옷들은 놀랍게도 이번 숙청에서 당당히 제외되었다. 마치 권력자의 비위를 맞춘 간신들처럼 아내의 옷장 옷걸이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물론 이 옷들 덕에 아내가 새로운 옷을 사려는 마음이 줄어드니 가계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는 오래전에 마땅히 버렸어야 했던 낡은 가구를 버림으로써 '임인년 선언'에서 자신의 것을 대부분 지켜냈다.




미니멀 라이프는 명분이었고, 나의 물건들은 화를 피하지 못했다. 일보 후퇴는 이보 후퇴도 가능케 한다. 다음 차례가 될지 모르는 나의 물건들이 아내의 날카로운 눈에 떨고 있다. 어찌 되었든 현대판 '분서'로 내 물건이 정리되어 집안 곳곳에 여유 공간이 생겼다 ('갱유'는 내가 땅에 묻히지 않았으므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중 한 자리에 몬스테라가 자리를 잡았다. 몬스테라의 뻥 뚫린 잎이 내 마음을 공감해주는 것 같아 위안을 삼는다.





미니멀 라이프 선언에 이어

성찰이 필요한 순간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과거에 집착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저장 강박을 경험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오히려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큰 이유라고 한다. 물건이 미래에 언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버리지 못한다. 또는 물건을 버렸는데 그 후에 버린 물건이 필요해서 아쉬움을 느꼈던 경험이 뇌에 각인되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 이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약간의 저장 강박을 지닌 사람은 현재보다 미래에 너무 큰 의미를 두어 행복지수가 떨어진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불필요한 물건을 잘 버리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얘기이다. 어느 정도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좋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지나치게 미래를 걱정하면 현재에 제약이 많이 생긴다.



상대의 허물이 커 보이듯, 내 눈에 아내의 물건이 용도를 다한 것처럼 보였고, 아내는 내 물건이 쓸모없어 보였던 것이다. 내로남불도 똑같은 심리일 것이다. 이 같은 심리를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는 '행위자 – 관찰자 귀인 편향 (attribution bias)'으로 설명했다. 자신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이유를 피치 못할 상황(외부 환경)에서 찾으려 하지만, 반면 남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성격(내적 기질)에서 찾는다고 한다. 즉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하도록 치우친 심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노력을 통해 '의식적으로'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유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는 진부한 통찰과 타인의 허물을 크게 보는 편향을 경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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