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에서 시인 김용탁이 말한다.
"시를 쓴다는것이 어려운게 아니라 시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는게 더 어려운거죠.”
저 대사에서 ‘시’의 자리에 다른 걸 넣어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 먹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 보통은 마음 먹기는 쉽고, 실천하기를 어려워 하지 않나. 그런데 시는 좀 다른가. 시를 써야지, 하고 마음 먹는 게 더 어렵다니. 그럼 실제로 시를 쓴 사람보다,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는 사람이 더 희소할까.
이창동의 ‘시’는 아직 쓰지는 않았지만, ‘써야지’ 하고 마음 먹는 사람의 이야기. 시를 완성하기 전까지 미자가 끊임없이 찾아 헤메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알츠하이머를 앓고, 비극적인 사건의 한복판에 놓이고, 시 수업을 들으며 시상을 쫓는 이야기. 쫓으면 쫓을수록 닿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미자는 '시를 써야지' 하는 마음만은 내려 놓지 않는데, '시 쓰는 마음'은 미자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까.
아네스의 노래 / 양미자 (원작: 이창동)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젠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젠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나의 오랜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노래하며 누군가에게 말 건내는 자리가,
시인 미자가 마침내 발견한 자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