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났는데 몸살 기운이 있었다. 집에 있던 비접촉 체온계로 이마 열을 재보니 37.5도 근처를 오르내렸다. 앞머리를 위로 후-익 까고 체온계를 옮겨 가며 지반 탐사하듯 이마 구석 구석의 온도를 측정하는데, 관자놀이 근처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37.8도. 에이 그래도 기침은 안 하니까.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하며 독백인지 주문인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그동안 미디어에서 보고 들어온 확진 이후에 펼쳐지는 스펙타클한 일들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 건 어찌하지 못하였다.
열은 다행히 하루만에 내렸다. 최근에 잠을 잘 못 자고 마감에 쫓기며 일을 하는 바람에 몸에 무리가 온 걸까. 그래, 잠을 잘 자야지. 이참에 코로나 수칙도 더 잘 지켜야겠어. 손을 더 자주 씻어야지. 마스크를 밀착해서 써야지. 밀집 장소는 가지 말아야지.
아니, 그냥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코로나 이후의 검색어들
확진자 숫자, 사회적 거리두기 몇 단계, 긴급재난문자 소리, 코로나 큐알코드, 코로나 증상, 비접촉 체온계, 보건소 영업시간, 마스크 미착용 신고, kf94, 재난지원금, 자가격리 기준, 확진자 동선, 코로나 라이브, 정은경 본부장, 언택트여행, 배달음식추천.......
서로의 비말과 온도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 이제는 어딜 가든 출입명부를 작성하고, 체온을 측정하는 일이 익숙하다. 나는 아직 확진 판정을 받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별 일 없으면 좋겠지만, 완전히 격리된 생활은 어려우니까 또 모를 일이다. 그런 이유로 가끔씩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열이 나거나 기침이 나오기도 하니까. 그럴 때마다 혹시? 설마? 하며 최근에 방문한 장소를 되뇌이고, 접촉한 사람들을 떠올리고, 앞으로 펼쳐질지도 모를 미래를 상상하겠지. 아니 무증상 확진자도 많다고 하니까 멀쩡한 것 같은 날에도 아주 안심하긴 어려울 것이다.
식물처럼 한 곳에 가만히 뿌리 내리고 사는 일상은 어떨까. 가만히 앉아서, 혹은 누워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인스타를 들락거리며 아래에서 위로 몰아치는 이미지의 파도에 휩쓸리는 일상. 그러다보면 나의 신체도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점점 변환되어 형체가 모호해지고 흐물 흐물 해지다가 순식간에 화면 속으로 전송되는 거지. 화면 밖으로 가까스로 탈출해도 계속 누워 지내다 보면 단단한 줄 알았던 바닥이 점점 물렁해지고 그 속에 살던 콘크리트 괴물에 의해 급기야 장판 밑으로 흡수될지도 몰라. 바닥으로 흡수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화면을 계속 응시하다 보면 화면 뒤로 보이는 천장이 갑자기 윈도우 바탕화면이 되어
시스템 종료하겠습니다, 하는 소리가 나오고 그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아 시발 꿈이었네, 하고 깰지도 몰라.
그런 이상한 꿈을 꾸는 날에도 벌떡 일어나 집 안을 걸으며 어슬렁거릴 수 있고, 산책하듯 창가를 오가며 볕도 쬐고 물도 마시고 창문을 열어 바람도 쐬는, 반-식물적인 일상을 보낼 수 있으니 다행일까.
방(room) <-> 방(zoom)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된 이후부터 독서모임 강사 일도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내 방(room)에서 온라인 방(zoom)으로 출근 준비를 한다. 어차피 보이지 않을 하반신은 내버려둔다. 화면에 보일 상반신의 옷 매무새만 가다듬고 뒷배경의 공간도 어느 정도 정돈한 후에야 온라인 방(zoom)으로 입장할 준비를 마친다.
방(zoom)에 들어가 모임 시간을 예약하고 참여자 분들에게 접속 링크를 보낸다. 정각에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한 두 명씩 입장한다. 들어온 인원수 만큼 화면은 분할되고 각각의 프레임 속에 익숙한 얼굴이 반짝! 하고 등장한다.
잘 지내셨어요?
오늘 배경이 예쁘세요!
목소리 잘 들리세요?
납짝하고 텅 빈 공간에 반짝! 반짝! 하고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나 인사를 주고 받으며 화면과 오디오를 채우면 그날의 모임 공간이 만들어진다. 모임이 끝나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모두가 방(zoom)을 나가면 그날의 모임 공간도 그 즉시 사라진다.
온라인 방에서는 비대면 모임의 답답함과 편리함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런 납짝하고 분할된 만남도 대화가 풍성한 날에는 대면 모임 못지 않은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온라인에서만 만나다가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져서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나는 날에는 서로가 마냥 신기하다. 어쩜, 방금 화면을 뚫고 나온 것처럼 똑같아서. 화면에선 못 보던 의외의 모습을 보아서. 점잖은 줄 알았는데 개그 욕심이 대단해서. 평면으로 보다가 앞뒤좌우로 만나니까 신기해서. 실물을 영접하는 느낌이 묘해서. 현실이 꿈 같아서. 꿈인 듯 꿈은 아니어서.
명랑한 은둔 생활
<성수동 쓰다>의 편집장 원주부가 물었다.
경덕씨는 내년 계획이 어떻게 돼요?
글쎄요, 지금은 별 생각이 없네요. 저는 보통 연초에 계획이 세워지더라고요.
라고 조금 성의없이 말했는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고 정말 계획이 없어서. 그런데 글을 쓰며 정말 없나? 자문하다가 조금 덧붙여본 추신.
"그러니까 아마 당분간은 이런 반-식물적인 생활을 이어가지 않을까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카페도 테이크아웃만 되고 밖에서 딱히 머무를 곳도 없으니 방에서 더 잘 지내야겠네요. 돈도 벌긴 벌어야 하니까 기회가 또 된다면 방(room)과 방(zoom) 사이를 오가며 출퇴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파트타임 알바 자리를 알아볼 수도 있고요. 재난 지원금을 또 받을 수 있을까요?
집 밖에는 안 나간다고 했지만, 그래도 ‘자가격리대상자’가 아니라면 해 떠있을 때 동네 산책도 하며 우이천 오리도 보고 길고양이들 안부도 확인하면 좋겠어요. 일주일에 며칠은 근처 재래 시장에 가서 반찬이랑 간식도 좀 사고, 그러면서 씩씩한 상인들 목소리도 듣고요. 집밥도 살뜰히 차려 먹고 과일도 일부러 챙겨 먹어야겠어요. 방문 사이에 달려 있는 철봉에도 오다 가다 매달리면서 안 쓰는 근육도 종종 깨워주고요.
어제는 마트에 가서 우드트레이도 샀어요. 왜, 레스토랑에서 1인 세트 메뉴 보면 직사각형 트레이 위에 예쁜 그릇 올리고, 그 위에 정갈하게 음식을 차리잖아요. 집에서도 비슷하게 차려 먹으면 치우기도 편하고 마음도 괜히 고양되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나름 스스로를 챙기며 생활하다가 또 어떤 이유로 몸에 열이 날 수 있겠죠. 기침까지 하면 좀 더 위축될 수도 있겠지만 미래의 위축됨을 미리 생각할 만큼 현재의 나는 상상력이 뛰어나지 않네요. 다행일까요? 내일의 확실성을 부여잡아야겠다는 절실함도 부족해서 아직은 계획이랄게 없습니다.
문득 생각하는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1층에 자주 오는 길고양이 미료가 올 겨울에도 무사하면 좋겠어요. 저는 그 친구 집사도 아니고 고양이 밥 주는 캣OO도 아니지만 햇수로 3년째 이웃으로 지내다 보니 애정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뒷다리를 다쳐서 절뚝거리지만 가만히 앉아서 부르면 아주 명랑하게 다가오는 친구입니다. 올 겨울도 저와 미료 둘 다 무사해서 내년 봄을 같이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는 의욕이 명랑하게 지속되길 바라면서, <명랑한 은둔자>에 나오는 한 구절을 나누고 싶습니다.
혼자 있는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24p
추신을 써보아도 여전히 내년 계획은 잘 모르겠고, 그냥 연말이니까, 연말을 잘 보내야지. 명랑하게 은둔하며.
**이 글은 2020년 10월에 썼고 <성수동 쓰다> 12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