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에는 방문 환하게 열어놓고 거실 불이 비치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며 잠들고는 했다. 어둠이 낯설고 무서웠기 때문에 형광등을 켜 놓고 자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큰 이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나는 잠을 잘 때에는 항상 어둑어둑했으면 했다. 잠자는데 있어서 일말의 빛은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가 됐다. 예전에 도배하지 않고 그대로 이사를 들어온 적이 있는데, 자려고 형광등을 껐을 때 천장이 온통 야광 별로 반짝거렸다. 그 때의 아찔함이란.
가급적 잠잘 때만이라도 빛에서 해방되어도 좋을 듯한데 자려고 불만 껐다 하면 빛 아래에서 느끼지 못했던 희미한 빛들이 강렬한 색채를 발휘하며 나를 압도한다. 그리고 압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사력을 다해 그 빛을 저지한다.
예전부터 쓰던 오래된 선풍기 대신 베이비핑크색의 가볍고 소음 적은 선풍기로 교체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불을 끄자마자 분홍빛 전원이 환하게 어둔 방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용설명서로 그 빛을 최대한 막았다.
선물 받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잠들려고 불을 껐을 때 블루투스 스피커는 마치 성배인 것마냥 하얀 빛을 발산했다. 그 빛을 가리자니 스피커도 함께 가리게 되어서 음악을 들으며 자는 것을 포기했다.
전기장판을 교체했더니 온도를 조절하는 조절기의 LED 화면에서 녹색 형광빛이 발산하는 것을 보고서 뒤집어 놓았다.
안전을 위하여 멀티탭의 각 구마다 전원버튼에서 새어나오는 붉은 빛이 거슬려 결국 버튼 없는 3구짜리로 싹 다 바꿨다. 버튼이 필요하다면 구석으로 최대한 처박아 빛이 내 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전원을 꺼 버렸다.
가장 최고는 가습기인데, 설마 그렇게 환하게 조명역할을 해 줄 줄은 몰랐다. 이건 어떻게 가릴 수도 없어서, 정말 가리겠다면 검정테이프로 칭칭 감싸야 하는데 그러자니 가습기의 기본 소임을 할 수 없으니 그 앞에 물건을 세워서 빛의 환함을 줄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저렴했으면 바꿨을 텐데 돈을 조금 쓴 터라 교체라는 선택지가 없었다.
예전에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전자기기는 모두 다 빛을 사용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전원이 들어왔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수단이긴 하지만, 웬만하면 빛이 없는 곳에서 잠을 자야 하는 나에게는 고역인 환경이 됐다. 정말 모든 전자기기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환하게 발산하여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전자기기를 살 때 '밤에 빛 나오나?'가 주된 고려사항이 되었다. 전자기기를 어쩔 수 없이 교체할 때마다 빛과의 사투를 하고 싶지 않은데, 요즘 전자기기에서 빛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찾기가 더 힘들다. 결국 최대한 빛의 구멍이 작은 것으로 타협하고 있다. 그러면 그 빛을 가리려는 나의 수고도 조금은 줄어드니까.
이렇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을 끄면 여전히 내 방 안에는 파랑빛과 하얀빛이 희끄무리하게 보인다. 도시의 번화가를 설명할 때나 쓰는 빛의 공해가 내 방 안에서 여실히 자행되고 있다. 잠잘 때만이라도 빛에서 해방되면 좋으련만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