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선호하는 이유엔 ‘분가’도 있는 듯하다

by 가릉빈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딸을 임신했다는 건 그리 축복할 일은 아니었다. 아니 축복받을 일이긴 했다. 첫째 아이로 이미 아들이 있었다면 말이다. 아들 하나, 딸 하나가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보일 때도 분명히 있었다. 대체적으로 그때에 여자아이는 둘째의 포지션을 취했다.


언제가 시절에는 아들을 줄줄이 낳는 것이 가장 좋은 시절도 있었다. 딸은 없어도 되었다. 아들만 있으면 되었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그 시절에 딸만 낳는 경우엔 여자가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아들 하나를 낳기 위하여 위에 딸 4~5명이 있는 집도 주변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을 정도로 과거에 딸은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던 만큼은 지독하게도 확실하다. 딸이란 걸 알자마자 낙태를 일삼는 것도 비일비재했으므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딸의 지위가 바뀌기 시작했다. 첫째는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많다. 예전엔 첫째는 무조건 아들, 만약 안 되면 둘째라도 반드시 아들이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이제는 첫째도 딸, 둘째도 딸이라 해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딸딸이라고 하면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딸바보란 단어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분명 예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첫째가 아들인데 둘째도 아들이라고 했을 때 다들 어떡하면 좋냐는 반응조차 한다. 첫째가 아들이라서 둘째 낳기가 무섭다는 사람도 이따금 있다. 딸이어야 하는데 또 아들이면 어떡하냐는 걱정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그런 걸로 걱정하는 걸 어이없다고 할 텐데 지금은 그 고민을 같이 이해하고 긍정해주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예전에 딸만 낳아서 받았던 멸시의 시선은 아니지만, 이젠 아들만 있는 집에게 보내는 약간의 동정 어린 시선은 확실히 세상이 바뀜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여성의 인권이 높아져서 이제 성별과 관계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고,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내 개인적 생각으론 ‘분가’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딸의 선호도가 점점 높아진 게 아닐까 싶다. 예전엔 무조건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보통은 장남이었으나, 무조건 아들 누군가 하나는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아들이 장성하면 장가를 들고, 며느리가 같이 산다. 부모는 아들 부부와 함께 살다가 손자를 맞이한다. 그렇게 가족은 끊임없이 늘어나는 동시에 아들 가진 부모는 자식을 옆에서 떨어트릴 일이 없다.


하지만 딸 가진 부모는 다르다. 아무리 예쁘게 정성 들여 키워놓아도 시집을 가면 끝이다. 출가외인이란 말이 있듯 시집가면 친정 일엔 아예 관여하기 어려웠다. 친정 부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시부모가 허락해주질 않아서 부모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딸은 낳아서 시집가면 남편의 부모를 부모로 섬기며, 저를 낳아준 부모는 시집 이후에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여자에겐 으레 있는 일이기도 했다. 어차피 잘 키워봤자 결국 남만 좋은 꼴 시키는 형상이다.


이제는 대부분 자녀가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 결혼하자마자 분가하여 따로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다. 이제 아들을 낳든, 딸을 낳든 혼인을 하면 얼굴을 자주 보기는 어려워진 건 마찬가지다. 예전엔 자녀가 강제로라도 부모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자녀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해지는 시기다. 이러할 때 그럼에도 부모를 조금이라도 찾거나, 일이 생길 때 그나마 좀 더 부드럽게 다가오게 되는 건 역시 딸이다. 대체적으로 부모가 아프다 할 때 병원에 동행하는 건 결국 딸이고, 혹은 여자인 며느리인 셈이다. 설령 딸과 아들이 둘 다 일을 하고 있어도 연차를 내어 병원까지 쫓아오는 건 대부분 딸이지 아들은 아니다. 아들이 결혼한 경우엔 그 역할을 자기 아내가 해주길 바란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이 되면서 아들 낳아봤자 여자(며느리) 좋은 일이나 시킨다며, 딸이 최고란 소리가 더더욱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전엔 딸을 낳으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이젠 딸을 낳아야 무언가 있어지는 상황인 것이다.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부모의 기본이며, 보답 받길 바라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엄연히 부모 자식 간에도 상호적인 무언가가 교환관계가 성립되어야 유지되는 법이다. 결혼시켰더니 목소리 한 번 듣기 힘든 아들보다는 이따금이라도 전화 주는 딸이 부모 입장에선 훨나은 법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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