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옐로우노트 스토리4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인지, 환경이나 경험으로 습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공감지수가 꽤 높은 편이다. 김연아의 올림픽 경기도 조마조마해서 실시간으로 잘 못 보고 월드컵 축구 경기도 그렇다. '페널티킥을 맞은 골키퍼의 불안'을 마주한 골키퍼가 실패하여 골이라도 맞으면, 그 선수의 표정이 며칠간 둥둥 뇌리를 떠 다닌다. 어려서부터 "니 걱정이나 하셔"라든지 "누가 누굴 걱정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으니, 당연히 불편함이 있고 에너지 낭비도 크다.
그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그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예민한 공감능력이 발동된 건 사실일 것이다. 목수 일을 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되었다는 걸 뒤늦게 안 순간에는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가 떨어지는 순간에 보았을 하늘이며 땅바닥 같은 장면이 시물레이션 되는 꿈도 꾸었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좀 오버였다. 그때까지 그를 만난 것이 딱 한 번. 그는 친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그저 블로그 친구였을 뿐이니까.
시기가 좀 그렇긴 했다.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던 B의 자살로 한 차례 충격을 받은 후였다. 스스로 생을 저버린 B는 누구 못지않게 치열하게, 정의롭게 사는 이였는데, 암의 재발과 생활고와 같은 삶의 기본적인 조건들이 그의 발목을 잡은 모양이었다. 늦은 결혼으로 얻은 어린 딸을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까지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볼 때 B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B의 자살이 떠올라 당신의 상황이 더 걱정되고 불안해졌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껄껄 웃을지도 모르겠다. 회화를 그리는 아티스트답게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니긴 했어도, 매우 성찰적이고 건강한 자존감의 소유자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그에겐 서로 깊이 의지하며 매우 굳건하게 결속되어 있는 가족이 있으니까.
어쨌거나 그런 상황에서 그가 겪었던 추락과 고난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니 가만있을 수가 없어 그가 눈물겨운 재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재활병원에 병문안을 갔고, 그는 생각보다 반가워했다. '그저 수다가 고팠다'는 말을 할 때 그는 정말 나의 방문을 반기고 있는 표정이어서, 이후로도 한 번 더 병원을 방문했다. 추운 겨울이었고, 오래전 내 아버지가 오래 입원해 있었던, 아버지를 돌보느라 어린 내가 암울한 시간을 보냈던 그 병원이었다.
1년 반 만의 재활 시간을 끝내고 돌아와 그는 본업인 그림에 몰두했고 여러 번의 전시를 열었으며 여러 매체 인터뷰에도 등장했다. 그림도 좀 팔려 사고로 진 빚도 꽤 갚았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것이었다. 그에 이르기까지 섬세한 영혼의 그가 건너왔을 어두운 시간들을 생각하면... 존경이라 할지, '추앙'의 마음 같은 것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어느 시점에서, 그가 무너질까 불안했던 어느 날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세 번쯤? 합석한 적이 있는 어느 유명 출판사 편집자에게 긴 페북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블로그를 소개하며 그의 그림과 책을 출판해 보면 어떻겠냐고. (그런 연락을 얼마나 많이 받을까에 생각이 미쳐, 곧 사과 메시지도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그가 뭐라도 붙잡고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 오지랖의 연장선에서 나온 제안이 내가 만든 향수 브랜드 옐로우노트와의 콜라보였다. 사무실을 막 열고 제대로 갖춘 게 별로 없던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3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드디어 그 제안이 실행되었다. 하나도 대단할 게 없는 고작 텀블벅 펀딩이지만, 어쨌든 벌여 놓은 일 하나를,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텀블벅 펀딩 페이지 바로가기 https://tumblbug.com/yellownote
그리고 어제, 페북에 올린 그의 글을 보았다. 옐로우노트와의 콜라보 펀딩을 소개하며 그는 이렇게 적었다.
"재활병원에 입원해 있던 1년 반 동안 ‘두 번 이상 찾아와 두 번 이상 소량의 술을 곁들인 저녁’을 사주면서 내 소심하고 조용한 불안을 들어준 친구가 둘이 있다. 하여 해주는 것도 없이 그저 마음으로만 각별해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한 친구가 조향사 자격증을 따더니 (....) 텀블벅을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려 한다면서 일종의 협업을 제안했다. 향수와 그다지 결이 맞지 않는 내 그림이 펀딩에 무슨 도움이 될까 쑥스럽기도 했지만, 마음만이 아닌 작게나마 실질적인 보은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함께 했다."
그리고 펀딩이 잘 되어 나를 활기차게 했으면 좋겠다고, "향수에 관해서는 완전 문외한인지라 할 말은 없지만 이 친구의 친절한 마음과 정직함은 보장할 수 있다."는 다정한 말까지 덧붙여.
그는 박야일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