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쓰는 일

옐로우노트 스토리 #3

by 베하

쓸 때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내가 아니면서 온통 나인 것, 온통 나이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것.

쓸 때 나는 기분이 전부인 상태가 된다.

현실에서 만질 수 없는 ‘나’들을 모아 종이 위에 심어두는 기분.

심어둔 ‘나’는 공기와 흙, 당신의 눈길을 받고 자랄 것이다.

내가 나 아닌 곳에서 자라다니!


쓸 때 나는 나를 사용한다.

나를 사용해 다른 사람에게로 간다.

그건 나를 분사해, 허공에서 입자로 날아가는 기분.

나를 당신에게 뒤집어쒸우러 가는 기분.

나를 비처럼 맞은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살피러 가는 기분.

입자로 떠돌며 세상을 구경하는 기분.

그게 다가 아니지.

당신이 쓴다면, 써서 내 쪽으로 보내온다면 나는 당신을 뒤집어써야 할 게다.

그건 읽을 때의 기분.

당신을 뒤집어쓸 때의 기분.

시를 쓸 땐,

날개를 떨구면서 날아오르는 기분이 든다.

날개를 버려도 내가 나일 수 있다니, 내가 날 수 있다니!


- 박연준 산문집 <쓰는 기분> 서문 중에서


* 조향-향기를 만드는 것도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을 모아 “기분이 전부인 상태”로 만들고 그 ‘나’들을 팔레트 위에 펼쳐 놓고 그림 그리듯 향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향기가 당신에게 날아갔을 때, 그 향기를 ‘뒤집어쓴’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상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미약하긴 해도) 오늘도 향기로 쓰는 일에 도전 중입니다. 가벼이 멀리 날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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