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론]을 읽으며 '자본'을 넘어서자!
[자본을 넘어선 자본]
- 2000년대 중반, 맑스로 다시 돌아온 이진경의 역작, [자본을 넘어선 자본] 소개
80년대 학번들에게 익숙했던 논쟁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른바 '사구체' 논쟁. '사구체'는 '사회구성체'의 약자로 우리 사회의 구조 혹은 성격을 규정하기 위한 논쟁이었다지요. 가장 오른쪽 노선은 우리 사회를 '식민지봉건국가'로 규정하거나 이와 비슷하게는 '신식민지반봉건국가'로, 다른 한편에서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국가'(일명 '신식국독자')로 규정하면서 세상을 개조하기 위한 각기 다른 시각과 프로그램을 펼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90년대 초반 학번인 우리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던 개념들이었습니다. 물론, 학회 세미나 시간이나 술자리에서는 선배들로부터 '사구체'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선배들은 한결같이 오래된 이야기를 하듯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는 이미 '사구체'보다는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보다 회자되던 시기였습니다.
98년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냄새와 함께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책을요.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이라는 제목의, 이전 '사구체' 논쟁을 본격적으로 촉발시켰다던, 한 시기를 풍미한 유명한 그 텍스트였습니다. 저는 [자본]권과 함께 학교 도서관 4층에 틀어박혀서 무협지 보듯 읽었습니다.
엥겔스에 의해 출판된 [자본] 2권의 저자는 주지하다시피 칼 맑스였고,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의 저자는 이진경이었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저의 뇌리에 [자본] 2권과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은 항상 공존했었는데요. 당시의 제가 보기에 이진경은 [자본]으로 대변되는 '사회과학방법론'을 우리 사회에 이론적으로 적용한 탁월한 이론가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5년간 그는 고전적 인식론에서 '탈주'하여 '근대성'을 화두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골치아픈 영역에서 '사유'를 하였고, 질 들뢰즈니 펠릭스 가타리 등을 운운하는 이진경은 조금씩 저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그랬던 이진경이 2004년도에 [자본]을 들고 다시금 맑스로 돌아왔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자본을 넘어선 자본]입니다.
오래 전 기억의 편린을 잡고 저는 바로 책을 구입했고, 이해를 했는지 아닌지도 잘 모른 채 소설책 보듯 읽었습니다.
서두가 길었는데요, 아마도 지금까지 제가 본 몇 안되는 [자본] '해설서'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자본]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단 한 가지, 독자인 제 입맛에 맞지 않은 점이 있다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고전적 [자본]의 '외부'를 사유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은 점, 이는 저자가 '탈주'의 습성으로 [자본]을 독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 책 내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제 식대로 그냥 [자본]의 '해설서'로 읽고 말았으며, 나름 만족스런 책이었기에 강력 추천합니다.
아래, [자본] 관련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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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지음, <그린비>, 2004.
: 저자는 자본주의 '이후'가 아닌, 현재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 '외부'를 사유하고, 미래의 '공산주의'가 아닌, 현재의 '꼬뮤니즘'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념을 떠나서 고전으로서의 [자본]의 내용이 뭔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2. [자본],, 칼 맑스 지음, 김수행 번역, <비봉출판사>
: [자본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어 그대로 번역하면 [자본]이 맞다고 하더군요. [자본] 1권은 상권과 하권을 가지고 있는데, [자본] 2권은 학교도서관에서 읽으면서 요약했던 노트 형태로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본과 비교할 정도로 제가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에 김수행 교수가 번역을 잘 하셨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3권은 어려워서 읽을 엄두를 못내고 포기했습니다.
3. [디지털시대 다시 읽는 자본론], 가와카미 노리미치 지음, 최종민 옮김, <당대>, 2000.
: 상품, 가치와 가격, 화폐 등 [자본]1권에서 분석한 개념들을 중심으로 현재적인 해석을 가한 책
4. [두 경제학의 이야기], 이정전 지음, <한길사>, 1998.
: 주류 경제학과 맑스의 '정치경제학'을 비교한 책인데요, 다분히 이론적인 텍스트이오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5. [자본론을 읽는다], 루이 알뛰세 지음, 김진엽 옮김, <두레>, 1991.
: 군에서 제대하고 나서 아마도 처음 읽은 사회과학서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본]을 원전으로 읽어야 한다고 결심하게 한 책이지요. [자본]을 나름 정치경제학 텍스트나 경제학 텍스트가 아닌 '철학'적 텍스트로 독해하게끔 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즉, 자본주의를 실재적 대상이 아닌 지식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계급투쟁의 이론적 무기로서 철학적 사유를 결합시킨 알뛰세의 시도. 역시 쉽지않은 책입니다.
6. 짜골로프 감수 [정치경제학 교과서] 제권 2분책, 짜골로프 외 지음, 윤소영 편역, <새길>, 1990.
: 구 소련에서 편찬한 정치경제학 교과서인데, 사회주의 이전의 생산양식들 중 자본주의체제에 대해 연구, 분석했다는 책입니다. 제가 대학 2학년때인가, 이른바 '사구체' 논쟁의 부스러기 같은 연속선 상에서 우리 사회를 '신식국독자' 체제로 규정했던 선배들로부터 추천받아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자본]의 내용을 소비에뜨식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참고서적이지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닙니다.
(2007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