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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pr 05. 2020

[문제는 리얼리즘이다](1938) - 루카치/브레히트

"리얼리즘의 승리"를 위한 랩소디

"리얼리즘의 승리"를 위한 랩소디

- 예술과 '리얼리즘'과의 본질적 관계
 


목    차

1. 리얼리즘에 관한 논의의 시작 - 리얼리즘의 역사
2. 문예사조로서의 사실주의 - "리얼리즘의 승리"
3. 또 다시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 창조적 리얼리스트는 … 사유와 감정이 사회적 존재로부터 형성되는 과정을 알며, 또 체험이나 감정들이 현실이라는 전체적 복합체의 부분이라는 점을 안다. 이때 그는 리얼리스트로서 그러한 부분이 삶의 전체적 복합체 속에서 어디에 속하며, 사회생활의 어느 부분에서 생성되었고, 무엇을 지향하게 되는지 등등의 문제를 보여준다."
- G. Lukacs,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1938.
 
 
1. 리얼리즘에 관한 논의의 시작 - 리얼리즘의 역사
 


문학이나 여타 예술의 사조사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쉽게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다. 서구에 서 18, 19세기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무대의 전면에 나타났던 하나의 문예사조로서 말이다.
'리얼리즘(Realism)'. 우리말로는 '현실주의', '사실주의', '실재론' 등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그만큼 폭넓은 의미들을 함유하고 있는 용어이다. 이러한 리얼리즘은 철학사적으로는 중세 말기에 유행하였던 유명/실재 논쟁에서 개념보편자의 실체적 존재를 옹호하던 플라톤적 전통의 실재론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며, 문예사적으로 보면 개인적 상상력의 발산을 최고의 표현으로 간주하던 낭만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객관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 하던 사실주의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데, 본고에서는 후자, 즉, 문예사조 속에서의 '사실주의'라는 뜻과 관련되는 '리얼리즘'을 다루고자 한다.


'리얼리즘' 혹은 '사실주의'의 배경으로서의 '역사' 속에서 사실주의가 어떻게 발생되었으며 또 어떤 식으로 발전하였는가를 먼저 살펴본다.


원시사회의 예술로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는 알타미라(Altamira) 동굴벽화가 있다. 스페인의 북부 산탄데르(Santander) 주에 있는 이 벽화에는 들소와 멧돼지 등의 동물들이 선사시대인들에 의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즉, 당시 사람들의 눈을 통해 보이는 그 동물들의 특징이나 생태 등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구체적으로 명암(明暗)까지 표현은 물론 빨강, 검정, 노랑, 흰색 등의 물감으로 채색까지 되어 있다.

수렵생활이 주요한 경제행위였던 그들에게 들소나 멧돼지와 같은 동물들은 분명 경제활동의 주대상이었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 자연적 대상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확실한 이해를 해야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객관적 대상인 동물에 대한 구체적이고 적확한 묘사를 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근본적으로 '사실적'인 표현을 지향하는 예술적 본질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리얼리즘을 논할 때, 객체에 대한 주체의 기본적인 태도 및 인간의 예술활동 전체를 관통하는 리얼리즘의 '일반적·원리적' 측면의 문제다.

예술기법의 양식적 측면에서 고찰해 본다면 원시사회의 이와 같은 예술행위는 '물리조형적 양식'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수렵에 기초한 원시사회의 다음 역사는 수렵을 극복한 농업과 목축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인간은 일정한 장소에 정착을 하게 되며 씨족이나 부족과 같은 공동체의 틀이 보다 공고화되기 시작하는데 농업과 목축이라는 경제행위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생활에서 중요한 점은 인간 정신의 발달, 즉 암묵적이나마 어느정도 제도화되는 공동체질서나 종교 같은 관념(이념)의 발생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예술행위를 통해 자신의 관념, 정신 등을 표현하기 시작하였으며 낭만주의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예술에서 인간의 상상력이 제 위치를 잡아나가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약간의 도식화를 시도한다면 이 시기에서부터 중세말까지의 예술의 시기는 '관념조형적 양식'의 시대로 분류된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융성과 로마제국의 발전, 그리고 게르만 민족 대이동을 통한 중세의 시작 등의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국면들이 전개되었지만 인간의 예술행위에서 양식적 측면을 분석해보면 위와 같이 크게 두 가지 거대한 흐름, 즉 '물리조형적 양식'과 '관념조형적 양식'의 대립과 투쟁, 반전의 역사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세의 긴 터널을 지나 근대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다름아닌 자연과학의 발달과 계급사회의 가장 발전된 형태인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이다. 예술사적으로 보면 르네상스 운동을 시초로 하는 근대의 시작은 바로 위의 두 가지 계기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었는데, 다시금 '물리조형적 양식'이 기존의 '관념조형적 양식'을 대체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물리조형적 양식'이란 문예사조사의 한 단계로서의 사실주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전술했던 '일반적·원리적 측면'에서의 리얼리즘을 일컫는다. 즉, 인간을 기본적 주체로 상정하고 그를 둘러싼 외부세계를 객체로 볼 때, 주체가 객체를 묘사함에 있어 적확하고 객관적으로 그리려 하는 예술적 작업의 본질적 측면과 이것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객체에 대한 주체의 태도로서의 그것이다. 그런데 고대로부터 중세까지의 '관념조형적 양식'을 대체하게 되는 '물리조형적 양식'은 이미 원시사회의 그것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장구한 역사를 만들어 오면서 그만큼 성숙했으며 이러한 성장은 자연과학적 성과와 견고한 사회체제로서 현상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만큼이나 예술적 기법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크게 발전한 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이르러 인간은 이미 다양한 문예사조들을 형성해 왔고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경유하면서 '일반적·원리적 측면'으로서의 리얼리즘은 '사실주의'라는 하나의 "예술활동의 프로그램"으로서 문예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2. 문예사조로서의 사실주의 - "리얼리즘의 승리"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로서, 또한 자연주의 그룹의 대부격인 플로베르는 자신을 사실주의 작가로 분류하려는 외부의 시선에 대고 '나는 사실주의 작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처럼 흔히 말하는 사실주의는 사실주의적 기법을 사용했던 작가 스스로의 눈에도 '도식주의'로 오인되고 있었다. 예술행위에서 표현기법의 문제에는 항상 딜레마가 존재해 왔던 것이 사실인데, 이 딜레마는 다름아닌 현실에 대한 객관적 모사와 인간 상상력에 기반한 심미적 의식 사이의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식주의'의 위험은 문예사조로서의 사실주의와 그것의 변형태라 할 수 있는 자연주의적 기법을 분리시켜 생각해 본다면 보다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즉, 사실주의는 자연과학의 객관적 태도를 작가의 시선에 바로 적용시키려 했던 자연주의와는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기법상으로 볼 때 사실주의적 기법은 이후 자연과학의 눈부신 성과를 배경으로 하여 자연주의적 기법으로 굳어졌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문예사조로서, 그리고 '구체적·개별적 측면'에서 바라본 사실주의였을 뿐, 그 '일반적·원리적 측면'으로서의 리얼리즘의 본질의 문제는 아니었던 듯 하다. 결국 '도식주의'의 위험을 안은 사실주의는 엄밀히 본다면 이후에 변질되어버린 자연주의를 지칭하고 있다 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행위에서 여전히 유효한 리얼리즘은 위와 같은 '도식주의'와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의 역사를 고찰할 때 보았던 것처럼 예술행위, 그리고 객관적 대상에 대한 '정확한' 묘사의 욕구 이면에는 본질적으로 리얼리즘이 '일반적'이고 '원리적'으로 항상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려고 하는 욕구를 두고 '도식적'이라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도식주의'의 위험을 안고 있는 비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식주의'와 동의어로 이해되고 있는 문예사조로서의 '사실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일반적으로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실주의는 1830년에서 1880년까지의 예술창작운동 전반을 일컫는데, 19세기 서구 문예사의 무대 위에 "예술활동의 프로그램"으로서 사실주의가 본격적으로 오른 것은 샹플뢰리와 뒤랑티 그룹이 1857년에 [레알리슴Realisme]이라는 잡지를 펴내면서부터였다. 그들은 "현시대 및 현시대 사회환경의 적확하고 완전하고 진지한 재현"이라는 말로 사실주의를 설명했고 개인의 자유, 상상력 등의 정신적인 요소들에 최고의 가치를 두던 낭만주의에 반하여 리얼리즘이라는 예술활동의 본질적 욕구를 하나의 문예사조로서 위치지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을 보면, 전술한 바와 같이 자연과학의 발달과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에 힘입은 '현실적'인 부르주아 계급의 성숙에 기인하고 있다.


또한 문예사조로서의 사실주의를 논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가가 하나 있는데, 바로 발자크이다. 발자크는 부르주아지의 급성장과 함께 점차로 힘을 잃어가는 귀족 계급에 대한 동경과 연민 등을 그의 작품 속에서 녹여내고 있는데, 그의 이러한 작업은 그 스스로의 보수적인 관점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갈 운명에 처한 계급과 그들이 처한 사회·역사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주의' 작가로서의 발자크에 대한 비평은 너무도 유명한 다음의 글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지금 내가 얘기하는 리얼리즘은 작가의 관점에 구애받지 않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 확실히 발자크는 정치적으로 정통파였습니다. 그의 위대한 작품은 상류사회의 불가피한 몰락에 보내는 하나의 줄기찬 비가(悲歌)이며, 그의 모든 동정은 사멸하도록 운명지어진 계급에게로 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장 깊이 동정한 남녀들, 즉 바로 이들 귀족들을 서술할 때보다 그의 풍자가 더 예리해지고 아이러니가 더 신랄해지는 적은 없습니다. (…) 이처럼 발자크가 자신의 계급적 공감 및 정치적 편견과 반대되는 작품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그가 좋아하는 귀족들의 멸망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그들을 이렇게 멸망해 마땅한 인물로서 묘사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미래의 참다운 인간들을 당시 현실에서 볼 수 있었던 바로 그 계급 내에서 보았다는 것 - 이것을 나는 '리얼리즘의 가장 위대한 승리'의 하나로, 그리고 발자크의 가장 위대한 특징 중의 하나로 여기는 바입니다."
- F. Engels의 서한 中
 


위에서 말했듯, 귀족사회를 동경하는 발자크는 정치적으로는 "정통파"였고, 사상적으로는 보수주의자였지만 그가 객관적으로 묘사해낸 당시의 계급적 사회상은 "사멸하도록 운명지어진" 낡은 지배계급의 몰락과 새롭게 부상하는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 나아가 새롭게 전개되는 자본주의적 계급대립의 양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며, 엥겔스는 이를 두고 "리얼리즘의 가장 위대한 승리"라 평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실주의'란 외부의 사회·역사적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러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는 인간 사회와 역사의 모습을 진정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을 진실하게 드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다름아닌 사실주의이며 작가 개인의 정치적, 사상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폭로될 수밖에 없는 사회·역사적 진실, 이것이 바로 다름아닌 "리얼리즘의 가장 위대한 승리"라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발자크의 경우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 예술적 창작 사이에는 모순이 있을 수 있고 예술적 진보성과 정치적 보수주의는 한 작가의 내부에서도 완전히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문학의 위대성은 이러한 모순이 단지 양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편견들의 패배로, 따라서 "리얼리즘의 승리"로 작품 속에 형상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리얼리즘 승리"의 요점은 예술행위의 배경이 되는 사회·역사적 현실과 예술과의 불가분한 관계의 재확인이며 예술적 표현을 통해서도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묘사라고 하는 역사적 필연성에 대한 재확인이다.


그렇다면 사회·역사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그리려 하는 사실주의라는 것은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한 이론적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사상이라는 것과 어떻게든 관계짓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세상사 모든 것이 그렇듯 예술행위와 사상 또한 필연적으로 상호보완의 관계를 갖는다. 발자크의 경우도 아이러니컬하지만 그의 사실주의적 성과는 스스로의 정치적 이념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리고 계급사회의 본질인 계급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에 있어 반(反)계급사회적 사상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다. 어쨌건 "이데올로기(사상)의 중재로 문학작품은 사회형성의 역사와 관계를 가지며, 또한 작가의 개인적 삶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고유한 지위에 의해서도 그러한 관계를 가지며, 결국 특수한 문학작품은 문학연구의 본질적인 수단을 전달하는 문학생산의 역사의 적어도 한 부분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고찰해본 문예사조로서의 사실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표현의 대상을 공통의 형태, 상황을 유형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개별 대상과 그 개성적 특징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2) 표현의 내용을 대상의 가치에서 선택하여 과장없이 사물의 전국면을 현실 그대로 재현하며,
3) 표현방식의 원리에 따라 대상을 미화하려는 경향에 반하여 미보다는 개성적인 것을 존중하며,
4) 표현방식에서는 주관적인 변형보다는 소재로서 주어진 경험내용을 사실 그대로 표출하며,
5) 비근한 시정생활(市井生活), 하층민의 생태, 인생의 추악상, 인간의 수성(獸性) 등을 주제로 한 작품형성을 그 특질로 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19세기에 접어들어 대두된 사실주의는 당시에 크게 발달한 실증주의 정신에 의해 조장되었고 생물학, 의학, 역사학, 사회학 등의 발달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자연과학적, 사상적 진전이 더 크게 나아감에 따라 문예사조로서의 사실주의는 대상에 대한 보다 냉혹한 시선을 구현하려 하는 자연주의로 변질됨으로써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예술행위에서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를 억압하는 예술적 '도식주의'의 위험을 안기도 했지만, 문예사조로서의 사실주의의 의의와 진전의 측면을 볼 때, 19세기 사실주의가 문학에 남긴 유산은 우리 사는 사회·역사적인 현실을 보다 종합적이고 비판적으로 그려내는 문학적 기술을 완성시켰다는 데에 있더. 그리하여 원시사회에 '물리조형적 양식'을 띠고 미숙하게 발생했던 예술적 리얼리즘의 '일반적·원리적' 양상은 이후 '관념조형적 양식'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고 근대에 이르러 보다 세련된 기법으로서의 사실주의와의 결합을 통해 인간의 문예사에서 거대한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예술에 있어 "리얼리즘의 승리"를 증명하는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3. 또 다시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의 역사 속에서 예술행위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리얼리즘'적 기본욕구와 문예사에 위치하는 예술기법으로서의 '사실주의'의 특징 등을 살펴보았다.

예술적 행위를 처음 시작한 이래로 인간은 자기의 눈에 보이는 객관적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해왔고, 어느 정도의 수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인간은 그러한 의도를 예술을 통해 투영하고 있다. 물론 전술한 바와 같이 현재 예술에 대한 인간의 이러한 태도는 원시사회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즉, 근대 자연주의처럼 마치 사진을 찍듯이 외적 대상의 현상적인 측면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려는 단순한 기법의 차원이 아니라 그러한 모습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외부 세계, 현실의 본질적 측면을 예술행위를 통해 드러내려 하는 노력 자체에 이미 리얼리즘적 문제의식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도식주의'라는 혐의를 받는 것은 사실주의가 아니라 자연주의다, 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는 일 또한 위험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낭만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등장했던 만큼 근대의 사실주의라는 문예사조 내에도 이러한 '도식주의'의 맹아가 존재함은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상적 현실에 대한 객관적 묘사와 심미적 의식 사이의 "예술적 딜레마"를 생각해 볼 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예술적 표현의 본질적인 '리얼리즘적 욕구'는 결코 인간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것으로 단순히 치부될 수는 없다. 객관적 대상에 대한 예술적 여과작업 과정에서 심미적인 상상력과 '리얼리즘적 욕구'는 동등하게 중요한 계기들이며 양자는 딜레마적인 상극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침투하고 보완되어야 하는 예술적 동기이자 활력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식적'이었던 근대 사실주의에 오류가 있었다면 이는 그 이전에 개인의 상상력에 경도되었던 낭만주의의 오류의 다른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본질적으로 상상력과 '리얼리즘적 욕구' 모두 함께 추구되어야 할 중요한 예술적 동기임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사회계층이 갈수록 분화되고 그에 따라 독자층이 분화됨에 따라 한 작품을 통해 공통의 리얼리티를 얻을 수 있는 독자층이 줄어들었으며, 바로 그러한 이유를 들어 '리얼리즘', 혹은 '사실주의'는 현대사회에서 쇠퇴할 수밖에 없는 사조라는 의견들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문제의식을 리얼리즘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리얼리즘이란 계속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예술적 행위의 기본적 동기이자 활력이 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리얼리즘을 논할 때 반드시 강조해야 할 점은 '도식'의 위험을 지닌 '형식'적 측면이 아닌 '내용성'인데, 리얼리즘은 사회·역사적 현실조건을 근본적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풍부한 내용성을 지니며 따라서 '도식적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그 자체 본질적 리얼리즘에 대한 배반임과 동시에 무지의 소치인 것이다.

결국, '리얼리즘'이란 예술 외적인 사회적 조건, 즉 각 계급의 입장에서 사실적인 '내용'을 담는 것에 다름 아니며, 리얼리티라는 문제를 고려해 볼 때, 각각의 계급적 관점에 따라 드러나는 사회·역사적 현실의 모습도 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이는 불균형하고 불평등한 계급사회 자체를 반증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이나마 이는 예술에서 '리얼리즘'의 사회적 기능이며, 이러한 '폭로'를 통해 우리는 예술의 눈으로 인간의 사회·역사적 현실의 진정한 모습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처럼 '리얼리즘'의 논의와 관련하여 '형식'이 아닌 '내용'에 보다 충실할 때 그간 우려되어 오던 사상에 대한 예술의 독자적 영역 구축도 좀더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민중성과 리얼리즘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들은 관대하면서도 극히 조심스럽게 선정되어야 한다. 결코 흔히 그러듯이 기존의 리얼리즘적인 작품들이나 민중적인 작품들로부터만 그러한 기준을 끄집어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경우에는 그저 형식주의적인 기준들밖에, 형식적인 민중성과 리얼리즘밖에 얻지 못 할 것이다."
- B. Brecht, [루카치에 대한 반론], 1938.
 


'형식'이 아닌 '내용'에 더욱 충실히 기반하는 '리얼리즘', 동시에 예술 특유의 심미적 상상력을 억압하지 않는 '리얼리즘'은 우리 사는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진정한 모습은 어떠하며 또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계관과 사고틀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리얼리즘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과 함께 우리는 또 다시 "리얼리즘의 위대한 승리"를 목도할 수 있다.
 


* 참고문헌

-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G. Lukacs / B. Brecht 외, <실천문학사>, 1986.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현대편], A. Hauser, <창작과 비평사>, 1987.
- [문예사조사], 이선영 編, <민음사>, 1986.
- [문예사조의 새로운 이해], 오생근 외 編, <문학과 지성사>, 1996.
- [문예사조의 이론과 실제], 엄창섭, <홍익출판사>, 1996.
-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P. Macherey, 배영달 譯, <백의>, 1994.
-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V. I. Lenin, 박정호 譯, <돌베개>, 1992.
- [실용국어사전], <민중서림>, 1997.
- [시사일반상식], <시사문화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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