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적 혁명과 '혁명'적 낭만주의
'낭만주의적' 혁명과 '혁명'적 낭만주의
- William Wordsworth의 생애와 사상을 중심으로
목 차
1. 서론
2. 본론
가. 낭만주의의 혁명
나. W. Wordsworth의 생애와 사상
1) 감각과 상상력(Feeling and Imagination)
2) 보통의 언어(The Language of Common Speech)
3) 고요함 속에서 회상된 정서('Emotion recollected in Tranquility)
3. 결론
1. 서론
무릇 시(詩)라고 하면, 감각적 언어, 감성적 표현, 상상의 산물 등으로서 이해되는 것이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가장 보편화된 반응일 것이다. 시는 많은 서사(敍事)문학이나 산문이 그러는 것처럼 작품의 제재가 되는 대상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차원이 다르게 시는 어느정도는 직관적이고 좀더 상징적이며 암시적인 표현방식을 매개로 하는 장르인 것이다. 물론 이는, 단 한 마디를 하더라도 긴 산문이 할 수 있는 이야기나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라는 장르의 형식적 필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깊이 들여다 본다면, 이런 장르상의 형식적 특징은 어떤 대상에 대한 함축적인 전언을 통해 그것을 읽는 이로 하여금 서사적 감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상의 필요에 기인할 터이다. 그렇다면 흔히 이야기되는 '시적효과'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서사문(敍事文)은 시적 표현에 비해 그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특정 대상에 대한 상대적으로 자세한 설명을 가한다. 그럼으로써 서사적 표현은 그 대상에 대한 읽는 이의 이해를 통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반면, 시문(詩文)은 보다 짧고 함축적인 언어로써 읽는 이가 느끼고, 추측하며, 상상을 하는 등의 '감성적' 작업을 통해 특정 대상과 제재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게끔 하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술했듯이 이런 식의 구분이 현실적으로 각 문학작품에 정확히 적용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을 테지만 다분히 도식적임에도 불구하고 양자간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전제(前提)적 구분을 가한다면 이와 같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에 이르러 시에 대한 이러한 생각을 가능하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낭만주의 운동(Romantic Movement)'이라는 강한 문학적 움직임을 그 요인으로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의 시대'라 규정되는 18세기. 그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주의'라는 견고한 문학적 진지. 그러나 형식적인 문체와 사고틀이 지배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이미 낭만주의는 자신의 알을 부화하고 있었다. 극단적 이성주의로 치닫는 고전주의에 대항하여 16세기, 혹은 중세에로까지의 복귀를 제창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당시의 동시대인들에 의해 "미친놈(madman)"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하지만 역사와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법이다. 1789년 7월 14일 전제왕권의 상징과도 같았던 프랑스 바스띠유(Bastille) 감옥이 민중의 힘에 의해 함락되는 것을 계기로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봉건적 권력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실로 그러한 운동에 발맞추어 문학사에서도 그간 정통적(orthodoxy)이라 굳게 여겨져 왔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그동안 비정통적이라 여겨져 왔던 움직임이 깃발을 들어 올렸던 것이다.
시대적 변화와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거대한 흐름을 타고, 보수보다는 진보를, 이성보다는 감성을, 전통보다는 개인을, 순응보다는 반항을 부르짖는 혁명적 시대정신 혹은 문예사조로서의 '낭만주의'의 본격적인 자리매김의 과정이 진행되던 시기, 자본주의의 급격한 성장과 근대 부르주아 혁명이 전유럽을 강타하던 시기의 혁명적 양상의 한 측면은 이와 같은 흐름으로 대변될 수 있었으며, 그 물줄기의 선두에 바로 윌리엄 워드워드(William Wordsworth)가 있다.
2. 본론
가. 낭만주의의 혁명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8세기로 접어들게 된 유럽에서는 기존의 낡은 형태들이 더 이상의 위세를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갑작스럽게 나타난 현상은 아니었다. 즉, 일찍이 16세기경부터 영국에서는 부의 가치로서 금(金)을 무조건 많이 축적해야 한다는 중상주의적 경제정책이 등장하여 전유럽의 경제생활 속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상품경제의 중요성의 부각이 깔려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상품경제가 인간의 경제활동에서 완연한 보편성을 획득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맹아(萌芽)적 형태로서 존재할 뿐이었지만 그 결정적 지위를 본격적으로 점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경제활동에서의 상품경제의 부각. 이는 다름아닌 자본주의적 경제구조가 구축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거해주는 것이었다. 결국 상품경제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기존의 중세봉건적 생산관계를 조금씩 허물어뜨리면서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세계에서의 이러한 흐름은 비단 영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으며 16세기 이후의 전유럽에 걸쳐 점차로 만연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경제적으로 근대적 부르조아지가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게 됨을 암시하는 부분인데, 이를 통하여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 의해 부를 축적하게 된 이 계급이 자신들의 권익을 획득하고 더욱 확대시키기 위하여 정치사회적 시민계층을 형성하게 되리라는 18세기의 전반적 상황은 다분히 필연적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즉, 18세기에 전유럽에 걸쳐 중세봉건적 질서가 몰락하게 되었던 정치적 상황 이전에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경제적 변혁이 그에 앞서서 낡은 사회구조를 대체하고 있었으므로 언젠가는 정치, 사회,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토대에 비해 상부적 구조요인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움직임은 전술했다시피 18세기에 이르러 급기야 전유럽으로 확산되었으며 1789년의 프랑스 혁명에서 그 결정적인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18세기를 풍미했던 사조로서의 '이성주의'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본래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된 자본주의적 의식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합리주의 정신의 한 형태였다. 즉, 이러한 사상적 합리주의, 사조적 이성주의는 근대적 과학의 발전에 직면하여 그러한 발전으로부터 기인한 사회구조의 질적 변화를 옹호하고 정당화시키는 논리로서 충실히 작동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문학적 사조로서의 18세기 '이성주의'에 반발했던 '낭만주의'의 혁명적 역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위에서 말한 시대사상으로서의 합리주의와 문학사조로서의 이성주의를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합리주의 정신은 인간의 이성을 새로운 사회구조 형성이라는 미래의 역사 속으로 투영시켰던 반면에, 문학적 사조로서의 이성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세계라는 과거의 역사를 지향함에 인간의 이성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차이가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18세기의 문학적 이성주의의 사고틀 속에서 문학은 다분히 고답적인 것으로 제한되었으며 인간의 이성에 의해 정형화된 하나의 고정적이고 형식적인 실재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는 당시에는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부르주아지, 혹은 정치사회적 시민계층의 입장과는 반대로 귀족적이고 복고적이며 보수적인 입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문학사조로서의 이성주의가 이전의 르네상스와는 다르게 문예의 영역에서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적으로 고정화되어버린 문학적 이성주의,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인간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보편화된 전체보다는 개인을, 죽은 틀보다는 생동감있는 움직임을, 그리고 형식적 표현방식보다는 좀더 자유로운 표현방식을 기치로 내걸고 태동하였던 '낭만주의'의 역사적, 혁명적 정당성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회구조와 질서가 자본주의적으로 재편되고 있던 근대의 시기에 그러한 진보와 혁명성을 담보하고 있던 것은 시대사상적으로는 합리주의, 이성주의였다고 볼 수 있지만, 문학적 영역에서는 그와는 다르게 낭만주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낭만주의'의 본질은 다름이 아니라, 그것의 출발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존의 고정적인 것에 대한 반발로서의 그 '혁명성'에 있었던 것이다.
나. W. Wordsworth의 생애와 사상
지금까지 낭만주의의 본질적 혹은 시초적 의의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낭만주의의 선봉에 섰던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에 대해 알아본다.
W. Wordsworth는 1770년 북부 England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풍부한 독서를 했고 캠브릿지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에 유럽 대륙으로 건너갔으며 이런 대륙생활을 통해 프랑스 혁명정신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온통 피로 얼룩져 버린 이상적인 프랑스 혁명정신의 결과를 보면서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이 그토록 열렬히 추종했던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시각에 등을 돌리고 심미적이고 내면적이며-혹자에 의하면-, 보수적이기까지 했던 말년을 보냈다 한다. 하지만 각성된 민중의 역사적 의식과 행동에 힘입어 혁명을 통해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내의 권력다툼으로 변질되어 버린 그 '혁명'은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을 향한 민중들의 열망과는 관계가 없었고, 결국에는 나폴레옹 1세의 전제정치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으니 Wordsworth의 혁명정신에 대한 좌절과 시각의 선회 또한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해 못할 바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나폴레옹 1세의 황제 등극. 주지하다시피, 나폴레옹 1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시기의 양대 정치적 분파였던 정통왕조파로서의 부르봉 왕조파와 신흥 부르조아지의 이해를 대변했던 오를레앙파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정치적 부류였다. 그러나 부르봉 왕조파와 오를레앙파 사이의 정치적 공백을 틈탄 '나폴레옹 황제'의 집권은 시민계층의 정치적 진출을 통한 근대적 정치체제의 창출이 좌절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혁명에 역행하는 이른바 '제 1제정' 시대를 결과하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은 약 반세기가 지나 1848년의 2월 혁명이 일어난 후에 기존의 질서를 보존하려는 보수연합 세력과 민중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쟁취하고자 했던 진보 세력간의 공전상황이 결과하게 되는 루이 보나빠르뜨의 시대착오적 제정체제로 반복이 된다. K. Marx가 정의한 '보나빠르뜨티즘'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권력형태를 지칭한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바스띠유 감옥의 함락이라는 상징적 사건이 일어났던 1789년이 중요시될 수 있는 연도라고 본다면, 문학사적으로는 1798년이 의미있는 해라는 주장도 있다. 1798년은 다름아닌 [Lyrical Ballads]가 출간된 해인데, 그 시집은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와 1796년부터 교우해왔던 그가 Coleridge와 공동으로 펴낸 책이며 낭만주의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책의 1800년판의 서문에서 Wordsworth는 '낭만주의 운동의 독립선언(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the Romantic Movement)'이라는 제하에 그 자신의 시작(詩作)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데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감각과 상상력 (Feeling and Imagination)
시라는 것도 인간의 삶을 노래하는 행위라는 당연한 전제에서 이해한다면, 이는 즉, 인간사의 심오한 문제를 건드릴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시는 감각과 상상력에 의해 추동되는 단순성에 기초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자연관'이 엿보이는데, 위에서 말한 단순성이란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인간의, 풍경의, 현상들의 그것이라는 것이다. 자연(Nature)이란, Wordsworth에 의하면, 모든 체계를 뛰어넘는 것으로서 인간 삶에서 도덕적인 것들의 스승이자, 행복의 가장 우선적인 전달자 등으로 이야기될 수 있겠는데,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의 범신론적 사상(pantheism)의 지고한 대상이자 근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결국, 자연이란 신(神)과 동일체이며, 그것으로의 자연으로 인해 모든 사물이 연결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가 말한 자연과의 동일체로서의 신은 종교적 논리에서 항상 소급되어지는 지고지순한 존재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자연의 형태로서 현실에 존재하는 다분히 현실적인 자연 그 자체인 것이다. 중세적인 신학과 차별성을 지니면서, 중세의 이단적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상과 닮아있는 Wordsworth의 이러한 범신론적 경향은 분명 당시의 근대적 과학발전의 강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W. Wordsworth의 자연관은 한마디로 범신론이며, 그것에 의해 현상되는 현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자연이자 동시에 바로 신이다. 또한 이러한 시각에 기초하여 그는 궁극적으로는 자연이 현현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하찮은 사물들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S. Coleridge의 '초자연적'이며 신비적인 세계관과 대조되는 점이다.
2) 보통의 언어 (the Language of Common Speech)
Wordsworth는 '시적 관용어구(poetic diction)'을 거부했다. 이는 낭만주의적 시풍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poetic diction'을 중시했던 Alexander Pope로 대표되는 18세기 고전주의자들에 대한 반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는 고상하게 표현되는 현학적인 수사일 수는 없으며, 다름아닌 보통 사람들이 쓰는, 엄밀히 말하면, 자연과 가장 가까운 형태인 순박한 시골사람들의 언어, 그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우러나오는 언어로 쓰여지는 시가 바로 시로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적인 언어'는 '보통 사람들의 언어'여야 하는데 이는 겉만 번지르한 도시적인 언어나 '교양있는' 현학적 수사가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채 자연 그 자체의 모습과 닮아 있는 언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Wordsworth에 의하면, 이러한 시적 언어에 의해서 진정한 상상력과 인간 양심으로의 회귀가 가능하다.
문학적 언어에 대한 이러한 진전된 사고는 문학이라는 영역이 더 이상은 특권화된 계층이 아니라 좀더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단초를 마련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이 또한 낭만주의 운동의 역사적으로 큰 성과였던 것이다.
3) 고요함 속에서 회상된 정서 ('Emotion recollected in Tranquility)
시인에게 가장 시다운 시를 쓸 수 있는 순간은 정서적인 경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그 순간이 아니라, 그 경험이 지난후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고요한 상태에서 다시 회상함으로써 시를 만드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하는 주장인데, 이는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몽골의 황제에 관한 꿈을 꾸고 난 후에 즉석에서 일사천리로 [Kubla Khan]이라는 시를 생산했던 Coleridge와는 대조되는 시작(詩作)의 동기이자 자세인 것이다.
이처럼, W. Wordsworth의 낭만주의 '선언'은 시에 대한 자신의 독창적이고 뛰어난 시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 운동'으로서 그 나름의 역사적 의의들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부분적이나마 일별했던 것처럼, 그는 [Lyrical Ballads]를 함께 작업했던 S. Coleridge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Coleridge가 환상적이며, 초자연적이고 관념적이며, 다소 종교적인 시각에 기반하여 다분히 환상적인 이미지에 천착했던 반면, Wordsworth는 현실적 자연의 가장 친근한 부분인 때묻지 않은 사람들과, 작은 사물들 하나하나에서 보다 구체적인 시적 이미지를 산출했던 것이다. 결국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들의 차이는 감각의 '현실성'과 '초현실성' 사이의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Wordsworth로 인해 시는 보다 이전의 고전주의적 이성주의자들의 시각과는 전혀 다르게 현실적이고 평범한 모습으로 보통 사람들의 편, 대중의 편으로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Wordsworth와 낭만주의의 이러한 성격은 권력이 귀족 이라는 소수계층에 의해서만 전유되었던 중세 봉건적 사회구조를 무너뜨렸던 18세기 유럽적 상황, 권력이 시민계층에게까지 확산되었던 시대의 사상을 문학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학 자체만을 놓고 이야기한다면, 이와 같은 '혁명적' 성격의 낭만주의로 인해 문학은 이전의 형식적이자 고정적이었던 시각과의 차별성을 통해 문학 자신의 지평을 훨씬 넓혀갈 수 있었던 것이다.
3. 결론
위에서 다룬 것처럼 W. Wordsworth와 [Lyrical Ballads]는 현대 문학사조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낭만주의'적 흐름의 대명사이자 선두주자이다. 그와 그의 시집이 후대에 의해 그와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낭만주의적 시작(詩作)'의 원칙을 어느정도 확립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Wordsworth가 Coleridge와 함께 [Lyrical Ballads]를 내면서 낭만주의 운동을 본격적으로 선언했을 당시에는 보수적인 고전주의자들에 의해 갖은 혹평을 받아야 했다고 하지만, 결국 그들의 노력과 움직임이 세월이 흐른 지금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당당하게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혹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낭만주의 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반항성과 전통의 파괴, 정통에 반(反)한 새로운 체계의 구축 등의 진보적 정신을 접어버렸던 말년의 Wordsworth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물론, 그의 말년 작품이 젊었을 때의 그것보다 질적으로 평가절하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에 대해서 위와 같은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아마도 시인으로서, 시대사상을 대표하는 위치 중 하나인 그런 시인으로서 자신의 사상을 일관되게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이 하나의 작지않은 결함이 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일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과 비판들이 가능하겠지만 낭만주의적 사고 자체의 한계를 지적해봄으로써 그에 대한 한 가지 의견을 톺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 세기의 고전주의적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꿈틀거리기 시작한 낭만주의. 그러나 고전주의가 아니었으면, 낭만주의적 움직임 또한 불가능했음은 역사적으로 자명한 진실일 터이다. 그런데 패러다임 자체의 변혁을 위한 부정적 인식이 역사적 발전의 측면에서 본다면 피할 수 없는 실천적 인식이자 요소라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낡은 것에 대한 반대가 부정적 인식의 수위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단순한 반대명제들의 부르짖음에서 그친다면 그건 말 그대로 반항의 수준에서 제 역할을 마치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예를 들면, 고전주의 시대의 '이성'적 측면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감성'적 측면에 대한 극단적인 강조로 치닫는 것은 제대로 된 발전의 상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이성주의'가 잘못되었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이성'이라는 인간에게 불가결한 요소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이 그렇게 유용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고전주의적 패러다임이 낡았기 때문인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만약 낡은 것에 대한 부정이 반항에서 그쳐버린다면 낡은 사고틀 자체의 전복은 고사하고 똑같은 사고틀의 반복만을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Lyrical Ballads]를 매개로 W. Wordsworth가 주창했던 선도적 낭만주의 선언이 이러한 문학사적 발전의 커다란 한 축을 형성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관되지 못한 사상이 일면 비판을 받는 이유는 지난세기에 대한,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당시의 중대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혁명정신의 이상성(Idealism)만을 바라보는 Wordsworth의 '감성'적인 측면으로서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의 혁명의 연속성을 볼 수 있는 '이성'적 측면까지 포괄할 수 없었기에 그는 일관된 자신의 사상을 견지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혁명성이란 이성에 대한 단순한 반발로서 감성을 내세운 낭만주의가 보여준 것처럼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이전의 것에 대한 올바른 지양과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지난하게 반복되는 '부정의 부정'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1. [English Literature], Anthony Burgess, <Longman>, 1958.
2. [낭만주의 영시], 이재호 編著, <탐구당>, 1975.
3. [영문학개설], 김용철 編著, <탐구당>, 1990.
4. [프랑스혁명사 3부작], K. Marx, 임지현/이종훈 譯, <소나무>, 1987.
5. [이성과 혁명], H. Marcuse, 김현일/윤길순 譯, <중원문화사>,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