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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pr 15. 2020

[역사와 계급의식](1921)- Georg Lukacs

'총체성', '물화'와 '소외', 그리고 '자아비판'

'총체성', '물화'와 '소외', 그리고 '자아비판'
- [역사와 계급의식](1921), 게오르그 루카치, 박정호/조만영 옮김, <거름>, 1993.



"마르크스주의 문제에 있어서의 '정통성'이란 오로지 '방법'에만 관련된다. '정통성'은 변증법적 마르크스주의 속에서 올바른 연구방법이 발견되었으며 이 방법은 오직 그 창시자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신에 따라서만 확장되고 확대되고 심화될 수 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또한 그것은 그 방법을 극복하거나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천박화, 진부함, 절충주의로 귀착되어 왔고 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 G.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1921.

헝가리 마르크스주의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문학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라는 유명한 테제와 함께 '리얼리즘' 문제에 천착한 미학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18년 헝가리 공산당원으로 헝가리 혁명에도 참여한 철학자였다.
1921년에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여러 논문들을 묶어 [역사와 계급의식]을 출간하는데, 하나의 저작으로서 연결되는 논리구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사유의 '방법론'을 다루면서, '총체성', '사물화' 또는 '물화', '소외' 개념을 정립했고, 1967년에는 이 개념들에 대한 '자아비판'이 이 저작의 특징이다.


1. '총체성(總體性/Totality)'

"직접적 존재를 이처럼 이중적(현상과 본질)으로 규정하는 것, 즉 그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지양하는 것이 바로 '변증법'적 관계이다... 사회생활의 개개의 사실들을 역사적 발전의 계기로서 '총체성(Totality)' 속으로 통합시키는 이러한 연관 속에서야 비로소 사실들의 인식은 현실의 인식이 될 수 있다... 사회발전의 여러 단계들이 지니는 현실적 차이점은 이 개별적이고 고립된 부분적 계기들이 겪는 변화 속에서 표현되기보다는, '전체 역사과정'에서의 그 계기들의 기능 또는 사회 전체와 그것들의 관계 등이 입는 변화 속에서 훨씬 분명하고 명쾌하게 표현된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루카치에게 마르크스의 업적은 관념론자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방식 및 그 체계를 유물론적으로 '전복'시킨 것인데, 헤겔의 철학은 개별 학문과 과학으로 고립되어 사유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통합적 유기체로 파악한 것이다. 루카치는 이 개념을 '총체성'으로 표현한다.
계급의식 또한 한 노동자 개인이 즉자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의 '총체성' 속에서 도출되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이 '총체성'을 담지한 계급인데 그 자체로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존의 '전자본주의적' 계급의식이 한 계급으로 다른 계급을 대체하는 것, 예를 들어 부르주아(시민) 계급이 봉건지주 계급을 대체하여 지배계급으로서 자본가가 되는 역사적 형태를 넘어 프롤레타리아는 그 자신의 계급적 본질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면서 계급 자체를 철폐함으로써 '총체성'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루카치는 헤겔을 깊이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방법적'으로 '헤겔화'시키는데, 이를 통틀어 표현한 것이 루카치의 '총체성'이라는 개념이다.


2. '물화(物化/Reification)' 또는 '사물화', '대상성'

"이와 같은 구조적인 근원적 사실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분명히 확인되어야 할 점은 '사물화(물화)'로 인하여 인간 특유의 활동, 인간 특유의 '노동'이 객체적인 어떤 것, 인간으로부터 독립되어 (오히려) 인간에 낯선 자기법칙성을 통해서 인간을 지배하는 어떤 것으로서 인간에 대립되어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경제적으로 부단히 더 높은 단계를 향하여 자신을 생산-재생산하는 것과 비례해서, '사물화' 구조는 자본주의 발전과정 속에서 갈수록 심각하게, 숙명적으로, 구조적으로 인간 의식 속에 파고든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사물화와 프롤레타리아의 의식>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비판' 작업의 결정판인 그의 [자본론]에서 '노동'의 '사용가치'가 아닌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만이 측정되고 거래되면서 인간 본연의 활동으로서의 '노동'과 그를 매개로 한 '인간적 관계'가 '상품' 거래의 '물질적 관계'로 나타나는 현상을 자본주의적 '물신성'으로 표현했다.
마르크스의 '물신성' 또는 '물신숭배'는 [자본론]에서 '은유적 표현' 정도였으나, 루카치는 이 현상을 '물화' 또는 '사물화', '대상화' 또는 '객체화' 등으로 개념화한다.
우리말로 가장 유행한 표현은 '물화'다. 이 개념은 1921년의 [역사와 계급의식]에서는 '소외'와 동일선상에서 연결되는 개념으로서, 인간의 활동과 그 관계가 물질적 관계로 왜곡되고 그로 인해 본질로부터 그 특성이 벗어남으로서 현상과 본질의 괴리로 나타나는 '소외'가 그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의 소외'다. '소외'된 노동은 당연히 '해방'되어 본질적 형태로 돌아와야 하는 바, 자본주의 '총체성'을 담지한 계급에 의해 수행되는 '노동 해방'이 그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나 이처럼 '소외'로 연결되는 초기의 '물화' 개념은 나중에 루카치 자신에 의해 '자아비판'되고 재정립된다.


3. '계급의식'과 '자아비판'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과를 낳고 가장 눈에 띄는 분열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분리에서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분리가 허용될 수 없음을 되풀이하여 지적했고 모든 '경제투쟁'은 그 본질상 '정치투쟁'으로 전화한다(또 거꾸로 '정치투쟁'도 '경제투쟁'으로 전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의 의식적 변혁'이라는 과제를 '역사'에 의해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계급의식' 속에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궁극목표와의 '변증법'적 모순, 개별적인 계기와 전체와의 '변증법'적 모순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발전과정의 개별적 계기는, 즉 구체적 요구를 동반하는 구체적 상황은 그 본질상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해 있고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에 지배받고 있으며 이 사회의 경제구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계급의식>

전술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단계에서 정치경제체제를 다 포괄하는 '총체성'을 담지하는 다수 노동계급, 프롤레타리아는 '계급'으로서의 스스로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면서 '계급' 자체를 폐지할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으므로, 이 계급의 '의식', 즉 노동자 '계급의식'은 즉자적이지 않고 대자성을 넘어 '총체성'을 담아야 한다. 순환논리이자 동어반복 같지만, 이것이 루카치식 '총체성'의 전부다.


결론적으로, [역사와 계급의식]이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역사' 속에서 그 '물화'된 관계 아래 '소외'된 노동을 하는 다수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을 정립하는 개념화 및 추상화 과정이며, 이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방법론에 의해 정립된다.

루카치의 '추상성'은 러시아 볼셰비키나 독일 사민당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았고, 그는 모스크바 망명 시절 '철학'을 잠시 떠나 '미학'에 몰두한다. 1967년에는 결국 '자아비판'을 통해 [역사와 계급의식] 주요 개념들을 수정하고 재정립하는데, 스스로의 '총체성' 및 '추상성'의 원인을 1920년대 당시의 세계 혁명 '낙관성'에서 찾는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사멸할 것이기에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소명'이라는 '총체'적 담지자 역할은 1960년대에는 다르다는 것이 하나의 '자아비판'이다.

또 다른 '자아비판'은, '물화'와 '소외' 개념의 차이인데, 1967년 <서문>의 구절로 대신한다.

"두 근본개념('물화'와 '소외')의 잘못된 동일시... '대상화(물화)'란 사실상 인류의 사회적 삶에서 폐기될 수 없는 표현양식... 실천 속에서 이루어지는 '객관화' 모두가, 특히 노동 자체가 '대상화'라는 사실, 또 언어를 포함한 인간적 표현양식 모두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대상화'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것들이 인간들 상호간 교류의 형식임이 분명해진다. '대상화(물화)' 그 자체는 몰가치적이다. 잘못된 것이든 올바른 것이든, 아니면 노예화이든 해방이든, '대상화'임에 틀림없다. '대상화'된 형태가 사회적 장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인간의 존재와 대립하게 만들고, 인간적 존재를 사회적 존재를 매개로 해서 굴종시키고 왜곡, 기형화시키는 기능을 획득할 때 비로소 객관적인 사회적 '소외' 관계가 성립되며 그 필연적 귀결로서 내적 '소외'의 모든 주관적 특징들이 성립되는 것이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1967년판 서문>

즉, '소외'는 극복해야 할 개념 그대로이나, '물화(대상화)'는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미 만연된 '표현양식'이며 '현실'이 된 것이다.


[역사와 계급의식]의 부제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 연구'다.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헤겔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다른 선학들을 찾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은 끊임없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 혁신되는 고정되지 않는 사유방식과 그 '방법론'이다.
그로 인해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 '정통성'은 마르크스주의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추상적' 순환논리에 또 다시 빠지고 만다.


어려운 책이다.
1993년 스무살 생일선물로 사준 대학친구 진욱이한테 읽은지 27년 지난 이제야 '리포트'를 제출한다.

***

- [역사와 계급의식], 게오르그 루카치, 박정호/조만영 옮김, <거름>,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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