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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pr 03. 2020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 - 빌헬름 라이히

"역시, '파시즘'을 만든 건, 다수 대중이었다"

"역시, '파시즘'을 만든 건, 다수 대중이었다"
-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 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옮김, <그린비>, 2006.



"사회적 조건과 변동이 인간의 원초적, 생물학적 요구를 변화시켜 그것을 성격구조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놓은 다음에야, 그 성격구조는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사회적 구조를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파시즘'은 권위적인 기계문명과 이 문명의 기계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인생관의 억압을 받은 인간이 지니는 기본적인 감정적 태도이다. 우리 시대 인간들의 기계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격이 파시스트당을 만든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정치적 운동으로서 파시즘은 그것이 인민대중에 의해 탄생되고 대변되었기 때문에 다른 반동적 정당과는 다르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머리글(증보개정 3판)>, 1942.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분석 의사 빌헬름 라이히는 인민대중의 생물학적 성에 기초한 성격분석을 통해 독일 히틀러의 '나치당'이나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을 정의한다.
프로이트와 친했으나 결별한 후, 1927년 오스트리아 빈의 봉기를 경험하고는 공산당원이 되기도 했으나 그의 '성정치'가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공산당으로부터 축출당하고 해외를 떠돌다가 1957년 미국에서 사망한다.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요약하면, 파시즘은 자생적 '정치체제'가 아니라 '국가(독점)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이를 '신비주의'적으로 체화한 '비합리적' 인민대중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합리적인 노동민주주의' 자치성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켄크로이츠는 맨처음 셈족에게서 발견되었고... 하인리히는 동요르단 게네사렛 호수가에 있는 에드-디케 유태교회당의 폐허에서 하켄크로이츠를 발견했다... 말하자면 '하켄크로이츠'는 원래 성적 상징이었다... 나중에는... 특히 노동의 상징인 물레방아 바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정서적으로 '노동'과 '성'은 동일한 것이기에... 이때 풍요로움은 어머니인 대지와 아버지인 하느님 사이의 성행위로 묘사된다... 고대 인도의 사전 편찬자들은 음경이나 음탕한 사람을 성적 욕구를 뜻하는 '구부러진 십자가, 즉 '하켄크로이츠'라고 지칭했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4장. 하켄크로이츠의 상징적 의의>

화가 지망생 히틀러는 '정치가' 이전에 '예술가'였다. 미술을 좋아했고, 고전음악과 건축물에 심취했으며, '예술의 정치화'를 꿈꾸었다. 이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었는데, '정치의 예술화', 즉 우리 삶을 '예술적'으로 바꿔주는 '정치'가 아니라, '예술'의 '신비주의'적 외피를 쓴 가짜 '정치'였기 때문이다.
나치당의 상징인 '구부러진 십자가', 즉 '하켄크로이츠'는 이러한 대중선동의 '강력한 보조수단'으로서 게르만족의 시조인 아리아인들의 유물에서 발견해낸 것인데, 남녀가 얽혀 누운 형태에서 어머니 대지와 아버지 하늘의 교합이라는 '신비주의'적 상징을 창조했다.
물론, 파시즘의 근본은 성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도와 배타적 인종주의인데, '하켄크로이츠'의 '신비주의'로써 그 본질을 은폐하고 신성화한다.


"정치적 '비합리주의'에 의해 심하게 방해받지 않는 노동하는 인간이 '합리적'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바로 그 생활영역을 정치가는 '비합리적'으로 지배한다. 동일한 생활영역에 '합리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거나 '비합리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는 있지만, 이 둘은 정반대의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대체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실천에서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이다. 인간 사회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국가의 권위주의적 규율은 항상 자연스러운 사회성과 노동의 즐거움을 파괴해 왔다는 사실... 즉 권위적 국가규율은 사회를, 가정의 강제적 신성시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 간의 사랑을, 강제적 도덕성은 생활의 기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예절을, 그리고 정치가는 일하는 사람들을 파괴해 왔던 것이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13장. 자연스러운 노동민주주의에 관하여>

라이히는 '파시즘'을 '나치당'과 같은 특정 체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보편형태로 본다. '노동자국가' 소비에트러시아의 '스탈린주의'도 마찬가지다. 즉, 생산수단의 국유화로 사회체제가 변했다고 하여 '자유'와 '해방'이 온 것이 아니다. '대중'들은 여전히 '비합리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파시즘'을 양산해내고 '정치가'는 끊임없이 노동대중의 '합리성'과 '자유'를 억압하고 규율하며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결론은 '합리'적 '노동'에 기초한 '자율성', 즉 '노동민주주의'의 관점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맨 앞장에 "사랑, 노동, 지식은 우리 생활의 원천이며, 이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고 쓴 문장이 곧 '노동민주주의'다.


2008년부터 이명박 정권을 겪은 우리 대중들이 2012년에 박근혜 정권을 '선택'했을 때,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다시금 뒤적이며, "결국 '파시즘'을 만든 건 우리들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2016년 '촛불 항쟁'을 거쳐 정치적 '파시즘' 체제를 타도하고 문재인 정부를 세웠으나, '대깨문', '문빠'라는 우리 안의 '파시즘'은 여전하여 결국,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거대양당의 '자회사'인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라는 초법적인 '민주주의 도적질'을 목도하는 지금, 다시 라이히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

"사회적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노동하는 대중들이 구조적으로 성숙될 때, 즉 그들이 생산수단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을 의식한 후에야 비로소 결정될 수 있고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머리글>


'자연스러운 노동민주주의'에 기초한 다수대중의 '자치성'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금 우리가 주인이 될 시간이 한참 지나고 있다.

***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 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옮김, <그린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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