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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y 10. 2020

[코스모스] - 칼 세이건 / 앤 드루얀

철학의 전장에서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

철학의 전장에서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1980)와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2020)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
- [구약성경], <1장 - 창세기>


"그리스인들은 신들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우주가 신들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신들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천지가 형성되었고, 하늘과 땅이 최초의 부모였다. 티탄족은 그들의 자녀들이었고 (올림푸스) 신들은 그들의 손주들이었다...
신들이 등장하기 전인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 태초에는 완벽한 어둠에 잠긴 무형의 혼돈 상태인 '카오스(Chaos)'만이 존재했다. 결국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두 자녀가 이 완벽한 '무(無)'로부터 태어났다. 이들은 '밤(Night)'과 '어둠(Erebos)'이었는데 당시 세상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죽음과 암흑, 무한의 공백 같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어둠으로부터 '사랑(Love)'이 태어나 질서와 아름다움의 힘으로 이 암흑의 세계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사랑'은 '빛(Light)'과 '낮(Day)'을 낳았다."
- Edith Hamilton, [Mythology](1940), <1-3. How the World and Mankind were created>에서 필자 번역


'철학(哲學)'의 전장(戰場)에는 두 개의 '거대한 진영'이 있다. 한 편에는 '물질'보다 '정신'이 우선한다는 '관념론'이 있고, 다른 한 편은 '물질'이 '정신'보다 일차적이라는 '유물론'이다.
철학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학파 탈레스는 세계의 근원 물질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물, 불, 흙, 공기 등의 '원소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사상에  수학과 논리학 등의 형이상학적 증명을 시도한 것이 철학으로서 '관념론'의 시작이다. 이들은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종교'의 형태로 강화된다.
가장 원시적인 '유물론'은 고대 그리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인데, 모든 물질은 '원자'로 나뉜다는 주장이며 관념이 아니라 경험이나 실천 등의 중요성을 설파한 에피쿠로스학파 등이 뒤를 잇는다.
'관념론'은 '종교'의 발전과 함께, '유물론'은 '과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며 발전해 왔고 '철학'이라는 '사상의 전쟁터'에서 투쟁해 왔다.


"인간 주체는 항상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게 낯선 자, 자신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힘들에 의해 구성된 자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의 주장이다. 관념론이란 마치 스스로 태어나기라도 한 것 같은 주체를 출발점으로 삼는, 따라서 충분히 멀리 거슬러 올라가서 출발하는데 실패하는 철학이다."
- [유물론], <유물론들>, 테리 이글턴, 전대호 옮김, <갈마바람>, 2018.


영국의 문학 및 문화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은 현재까지 "마르크스주의가 옳다"는 명확한 당파성을 고수하는 '유물론자'다.
그에 따르면 고전적 유물론의 주장, 즉 '물질'이 '정신'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이기는 하나, 기계적 유물론을 넘어서야 한다. 1908년 레닌은 논쟁적 저작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정신' 또한 '뇌'라는 '물질'이 만들어낸 '최고 수준의 물질적 산물'이라는 식의 극단적 주장을 했는데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 여부는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기는 하다.
테리 이글턴의 '유물론'은 현대 철학에서 니체,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을 통해 '인간의 생체'가 중심이 되는 '신체적 유물론(Somatic Materialism)'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의 '철학 전장'에서는 "근본적인 사안들에서조차 합의에 이를 수 없는" '근대성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인해 인간의 욕망과 생체 모두를 아우르는 '신체적 유물론'만이 대안이 된다.
과장을 섞으면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기독교적 관념론을 다른 편으로 하면서 '육체적, 성적 관계'를 가미한 그리스 신화의 '신체적 유물론' 같다.

그럼에도, 복잡한 '철학' 논쟁의 본질은 결국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이며, 그 극단을 이루는 질문은 "세계 존재의 기원은 무엇인가"이다.


"수천 년 동안 인류를 억눌러 온 생각은 이 우주가 눈에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신 또는 신들이 실을 당겨 조종하는 꼭두각시 연극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살고 있다. 그러다가 2,500년 전 이오니아에서 새로운 깨달음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원래는 아주 단순한 형태에서 발생했다는 생각도 태동했다. 질병은 악마나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고개를 들었다. 지구는 단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별이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러한 사고의 혁명을 통해서 사람들은 '혼돈(Chaos)'에서 '질서(Cosmos)'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태초에 '형태가 없는' 혼돈이 있었다고 믿었는데 그 내용은 [창세기]의 구절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고대 이오니아인들은 우주에 내재적 질서가 있으므로 우주도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연 현상에서 볼 수 있는 모종의 규칙성을 통해 자연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자연에게도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주의 이렇게 훌륭하게 정돈된 질서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1980), <7장 - 밤하늘의 등뼈>,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코스모스(Cosmos)'는 인류 또는 생명체가 생겨나기 전의 '혼돈(Chaos)'으로서 우주 전체를 의미하는 '사실들의 총체'의 그리스어 표현이다. '우주'이되 현재만이 아니라 생명이 존재하기 전 헤아릴 수 없는 과거로부터 또 앞으로 셀 수 없이 먼 미래를 포괄하는 모든 '사실들의 총체'로서 '우주'다.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를 구경한 수많은 어린이 중 하나가 1980년에 '우주'에 관한 TV 시리즈를 정리한 책이 있다.
그 소년은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이고 그 방대한 주제를 다룬 책 제목은 [코스모스(Cosmos)]다.
1950년대부터 우주를 꿈꾸던 칼 세이건은 미국 NASA로 대표되는 우주 탐사계획이 활발하던 1970년대 '바이킹호'나 '보이저호' 탐사 프로그램 등에 적극 참여하면서 이 '천체물리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코스모스], [창백한 푸른 점] 등의 과학저서를 발표했다. 우리가 언뜻 본 적도 있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사진은 2017년 토성에서 30년 넘는 임무를 수행하고 추락한 카시니호가 1990년대 토성을 탐사할 때 세이건이 주최측에 지속 건의하여 촬영한 사진이라고 한다. 나사는 실용성 없다며 카시니호가 굳이 각도를 돌려 사진 찍는 것을 계속 거절했는데 세이건의 끈질긴 설득으로 토성에서 본 지구의 사진을 담아서 후세에 남겼다. 토성에서 15억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함께.


(저 멀리 보이는 '창백한 푸른 점'이 지구다)



'코스모스'로서 우주는 1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한 개의 은하는 또 1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과 항성계와 은하계들의 집합인 '코스모스'가 '무질서'한 '카오스'가 아니라 일정한 법칙을 담고 있는 '질서'라는 믿음과 방대한 천체과학실험을 통해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코스모스]는 강조한다.
세이건은 이러한 '코스모스'에 대한 인식과 과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튼, 케플러, 다윈, 아인슈타인 등의 과학자는 물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까지 소환한다.
인간이 우주로 몇 발자국 내딛던 1980~90년대 천체과학자의 시선이었다.


"우리가 첫 번째 [코스모스]에서 말했듯이, "뇌는 아주 좁은 공간에 든 아주 넓은 장소다."... 작은 물질 단위들이 집단을 이루어 작동함으로써 자신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무언가로 바뀌는 것, '코스모스'가 스스로를 알아내는 수단이 되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창발의 핵심이다...
칼(세이건)은 사람의 대뇌겉질에 있는 연결의 개수가 100조 개쯤 되리라고 계산했다. 가시 우주에 있는 은하의 수보다 100배 더 많은 수의 연결이 우리 안에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 위대한 탐사를 이제 막 시작했다. 생물학자들이 인간 유전체를 지도화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신경 과학자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개인마다 고유한 무언가를 지도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모든 기억, 생각, 두려움, 꿈으로 이뤄진 고유한 배선도인 커넥톰(connectome)이다."
- 앤 드루얀,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2020), <5장 - 우주의 커넥톰>,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칼 세이건은 1996년 작고했고, 1970년대부터 그와 함께 '코스모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그의 부인이자 역시 천체과학자인 앤 드루얀(Ann Druyan)은 칼 세이건의 뒤를 이어 천체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현재까지 '코스모스'를 이어왔다고 한다. 2020년 이 TV시리즈는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로 출간되었는데, 20세기에 칼 세이건과 함께 바라봤던 거대한 '코스모스'의 현재 모습을 그간의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이어서 보여준다.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가 제시하는 '우주력(The Cosmic Calender)'에 따르면, 우주 발생 후 지난 138억년을 1년으로 치면 1개월은 11억년, 1주는 2억년, 1일은 3천만년, 1시간은 157만년, 1분은 2만년, 1초는 438년이다. 인류가 진화해 온 약 600만년은 '우주력'으로 환산하면 대여섯 시간에 불과하다.
20세기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으로 46억살 지구를 직시하게 했고, 21세기 앤 드루얀은 우주력 1년 중 12월 31일, 5~6시간 전에 태어난 인류를 돌아보게 한다.

이처럼, 앤 드루얀은 칼 세이건 이후 현재까지 천체과학의 종합적 발전을 성과로 하여 '코스모스'로 나아가되 그 초점을 세이건과는 달리 '인류'에게 맞춘다.
"은하는 별을 낳고, 별은 행성을 낳으며, 그 행성과 위성은 자연히 생명을 낳는다([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3장 - 사라진 생명의 도시>)"는 연쇄적 우주 역사에서 우리 태양계와 그가 속한 은하, 그 은하계 전체인 '코스모스'를 끊임없이 인식하며 막연하지만 "가능한 세계들"을 향해 나아가는 인류 말이다.
비유가 맞는지 의문은 가나 '코스모스'의 망망대해로 나아가야 할 우리는 1만년 전 아시아 대륙에서 태평양 아래로 요트를 타고 내려가 인도네시아와 더 나아가 오세아니아를 개척한 '선조들'의 후손이라는 말과 함께.

21세기의 드루얀이 말하는 '인류'는 이제 '인류세(Anthropocene)'를 살고 있을지 모르는데, 지구 생명체 멸종의 기간인 '오르도비스기'-'데본기'-'페름기'-'트라이아스기'-'백악기' 이후 '인류 대멸종'의 기간이라는 의미로 '인류세'라는 여섯 번째 멸종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20세기 인류가 초고속으로 발전시킨 '과학'의 성과는 이어가야 하지만, 그 동안 인류의 소행으로 지구에 더 이상 생명체가 존속하기 어렵게 되는 '기후 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21세기 드루얀의 [코스모스]가 제시하는 '가능한 세계'는 무엇인가.


"(지구에서의) '생존 지속 확률(100년당): 40퍼센트'
나는 저 40퍼센트라는 숫자를 가만히 응시한다. 물론 저 값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문득 내 귀에 황혼 녘 모헨조다로의 거리에서 주사위가 경쾌하게 구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꿀벌들이 다음 집을 어디로 할지 정하느라 윙윙거리는 춤으로 토론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빌로프와 동료들이 겪었던 허기가 느껴진다. 넘실거리는 물에 잠긴 스트로마톨라이트(생명의 기원)로부터 아인슈타인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기까지 모든 존재가 품었던 모든 생각의 무게가 느껴진다. 아인슈타인이 1939년 세계 박람회 개막식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 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 앤 드루얀,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2020), <13장 - 가능한 세계>,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코스모스'의 140억년 역사에서 우주는 은하계를 낳았고 은하는 별들을 낳았으며 별들이 낳은 생명체에서 우연히 진화한 인류는 지금 모든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기후적 위기'를 겪고 있지만, '과학'의 성과를 선용하여 "자연의 책을 읽는 법을, 자연의 법칙을 배우는 법을... 익혔"고, "코스모스라는 망망대해에서 언제,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법을 익혔"으며, 그로 인해 "코스모스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수단이, 별로 돌아가는 길이 되었다(같은책, 13장 결론)"고 한다.

과학의 '올바른 진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코스모스'를 이해하고, 지구에서의 우리 삶이 끝나가기 전에 '코스모스'를 아우르는 '소통'을 꾸준히 시행하고 실험하자는 매우 낙관적인 과학자의 결론을 보면, 얼핏 '인류'라는 종에 관한 유발 하라리의 '빅 히스토리(Big History)'를 훨씬 넘어서는 '비기스트 히스토리(The Biggest History)'를 접하는 듯 하다.


"인류는 우주 한 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10억의 10억 배의 또 10억 배의 그리고 또 거기에 10배나 되는 원자들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원자 자체의 진화를 꿰뚫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우주의 한 구석에서 의식의 탄생이 있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줄도 알게 됐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1980), <13장 -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20세기에 '코스모스'로 나아가든, 21세기에 '인류'로 다시 잠시 돌아오든,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과학자'이기에 우리 인류의 모든 선조들에 경의를 표하지만 특히 '아인슈타인'에게 특별한 존경을 표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언급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나, 앤 드루얀의 책에서 언급된 아인슈타인의 '양자 물리학(역학)' 등은 문과생인 내가 이해하기 힘들어 내 주변에서 최고의 '이과적 두뇌'를 지닌 친구 철호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나름대로 '과학책'에 관한 '문과적 서평'을 써본다.

다시, '문과적'으로 돌아와서 '철학'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철학의 전장'에서 대결해 온 '거대한 두 개의 진영'인 '관념론'과 '유물론' 말이다.
미지의 '절대정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관념론'은 결국 '신화'나 '종교',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의 편에 있고, '과학'의 발전과 늘 함께했던 '유물론'은 인류의 생명을 존중하며 다수 인류와 그 성과를 기꺼이 공유하는 '민주주의' 편에 선 철학이다.

'코스모스'의 근원, 이 세계의 시작에 관한 존재론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민주주의 철학'인 '유물론'의 임무가 된다.
'철학의 전장'에서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은 그러므로 '유물론'이다.


"(철학이 과학의 영역에서) 구획선을 긋는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와 과학을 구별하여 사실상 하나의 길을 밝혀내기 위한 실천으로 볼 수 있다...
모든 과학적 실천은 자생적 '철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여기서 이러한 것들 사이에 게재되는 철학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유물론'과 장애가 되는 '관념론'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자생적 철학은 마지막 순간에는 철학사의 투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곧 유물론적 경향과 관념론적 경향 사이에서 벌어지는 세기적 투쟁으로 일컬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투쟁은 더 멀리는 다른 형태에 의해서 불러일으켜지게 된다. 곧 이데올로기 투쟁과 계급투쟁이 그것이다."
-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67), 루이 알튀세르, 김용선 옮김, <인간사랑>, 1992.

***

1. [코스모스](1980),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2.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2020), 앤 드루얀,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3. [Mythology](1940), Edith Hamilton, <New American Library>, 1969.
4. [유물론](2016), 테리 이글턴, 전대호 옮김, <갈마바람>, 2018.
5.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레닌,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6.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67), 루이 알튀세르, 김용선 옮김, <인간사랑>,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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