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 현대 '과학'에 대한 '철학'의 임무
'세계관' : 현대 '과학'에 대한 '철학'의 임무
- [세계관 - 당신 지식의 한계](2018),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 우리가 지난 역사에서 배운 교훈... 새로운 발견을 이용할 새롭고 신기한 방법을 찾아내는 과학자들의 독창성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과거 기본적이고 새로운 발견들이 그 전까지 상상도 하지 못한 이론적, 기술적, 개념적 변화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는 여러모로 1600년대 초와 비슷한 시기에 살고 있다. 갈릴레이 망원경이 찾아낸 발견 등 당시 새로운 발견들이 결국 우리가 사는 우주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이어졌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은 우리가 사는 우주에 영향을 미치지만, 진화론은 주로 그 우주 속의 우리 위치에 영향를 미친다... 만일 우리가 우주 속 우리 위치에 관한 경험적 증거를 받아들이고자 하면 진화론의 발견에 따라 우리는 인간이 특별하다는 오랜 견해를 버려야 한다... 1600년대 우리 조상들이 우리가 더는 우주의 물리적 중심이 아니라는 발견을 감당했듯, 우리는 그 어떤 의미에서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발견을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 [세계관](2018), <결론 - 예측불가능한 세계와 마주하기>,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최근 유행하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인류의 역사만이 아닌 우주 전체의 역사 속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을 위치 짓는 작업이다. '빅 히스토리'는 우주와 천체의 역사로서 [코스모스](칼 세이건/앤 드루얀)일 수도 있고, 생물체 진화의 역사로서 [종의 기원](찰스 다윈)이나 [총,균,쇠](제러드 다이아몬드), [사피엔스](유발 하라리)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 '세계관(Worldview)'을 구축하는 '철학'의 길에서 공통적인 도구는 '과학'이다.
"내가 사용할 '세계관'이라는 용어는 퍼즐조각이 맞물리듯 '서로 연결된 믿음체계'를 뜻한다. 세계관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며 서로 아무 연관도 없는 믿음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로 엮이고 연결된 믿음체계다... 각각의 믿음이 일관되게 맞물린 '믿음체계'를 이룬다는 생각이 내가 사용할 '세계관' 개념의 핵심이다."
- [세계관], <1-1. 세계관이란?>, 리처드 드위트.
과학철학을 전공한 미국의 철학과 교수 리처드 드위트(Richard Dewitt)가 과학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세계관'이 변화되고 대체된 과정을 서술한 [세계관]이라는 책은, '과학철학과 그 역사에 대한 입문서(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를 부제로 달고 있다. 우리말 번역본의 부제는 '당신 지식의 한계'다.
'세계관'은 말 그대로 '세상을 보는 관점'인데, '경험적 사실'들을 '퍼즐'처럼 맞추어 '철학적/개념적 사실'로 구성한 거대한 사상체계다. '경험적 사실'들은 '과학'적 방법으로 관찰하고 실험하며, '철학적/개념적 사실'들은 '과학'의 성과들을 종합하는 '철학'적 작업이다. 또한 '과학'을 통해 발견한 이론을 대하는 태도는 '도구주의'와 '실재론'으로 구분되는데, "이론이 반드시 관련 데이터를 정확히 예측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의견이 일치"하나, "실재론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적절한 이론이 실제 상황을 묘사하거나 실제 상황의 모델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같은책, 1-8. 도구주의와 실재론) . 즉, '실재론'은 이론을 세계 해석의 '도구'로 보는 '도구주의'에 비해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철학'적 태도다. 그리하여 고대로부터 인류의 사상을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과학철학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은 대략 기원전 300년부터 1600년 무렵까지 서구의 지배적인 세계관이었다... 본래 지구중심설의 근거는 경험에 기초한 확고한 추론의 결과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는 목적론적 설명이 타당한 과학적 설명이었다. 기계론적 설명이 우세한 현대 과학과 뚜렷이 대비되는 생각이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의 우주는 목적론적인 우주, 본질적인 우주였다."
- [세계관], <2-9.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 속 우주>, 리처드 드위트.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관념(이데아)' 중심의 플라톤 철학에 자연에서 관찰되는 '질료'들을 결합하여 '세계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근본적인 답을 하고자 한 철학적 전통의 시초다. 당시 과학발전의 한계는 당연하나 세계를 이루는 근원은 '관념(이데아)'이 아니라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에 '신'과 같은 존재인 '제5원소'로서 '에테르' 등으로 구성되고 돌아간다는 믿음이다. 그렇다고 '유물론'은 아니다. 고대철학에서 '유물론' 전통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으로 이어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잇는 '관념론' 철학의 주류였으나 후학인 헤겔이나 레닌 등이 그의 철학에서 '유물론'적 특성을 강조하기도 할만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과학'적 방법은 중요한 '도구'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운동은 '부동의 동자'인 '신'적인 존재에 의해 '목적'을 가지고 진행된다. 이 세계관의 '신'은 종교적 절대자와 다르다. 자연현상에 대한 연구와 그 운동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운동을 주관하는 움직이지 않는 일자('부동의 동자')'로서의 위상일 뿐인데, 칸트까지 내려오면 '불가지론'이 되고 현대과학에서는 그 근원은 앞으로도 밝혀야 할 미지의 대상으로 보류된 '그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의 전장에는 인류가 '과학'으로 규명할 '미래'를 하나의 근원적 '일자'로 규정하는 '관념론'과, '과학'적 방법으로 언젠가는 세계의 근원이 증명될 것으로 믿는 '유물론'의 전투가 지속된다. '불가지론'도 '미래'를 '현재'로 단정짓는 점에서 '관념론'이다.
같은 '과학'을 방법론으로 해도, 현실을 영원한 것으로 보는 철학은 '관념론'이고, 이를 미래의 잠정태로 보는 철학은 '유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의 말처럼 모든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은 '유물론'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 코페르니쿠스에게 자신의 이론을 개발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은 경험적 데이터가 아니라 철학적/개념적 '데이터'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실 특별히 드문 사건이 아니다. 과학의 역사에서 철학적/개념적 신뢰가 과학자에게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일은 많다."
- [세계관], <2-14. 코페르니쿠스 체계>, 리처드 드위트.
우주의 '지구중심설(천동설)'의 철학적 기초가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인데, 우리 눈에 보이는 별자리 등 '경험적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체계를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라 한다. 기원후 1~2세기 그리스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는 "역사상 최초로 천문학 사건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이론으로 발전시킨 사람"(같은책, 2-13.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이다. 그는 당시 세계관의 주요한 신념인 '완벽한 원운동'과 '등속운동'을 당시 유일한 '과학'이었던 '수학'적 방법으로 증명하였고 '주전원', '이심원', '동시심' 등의 관념적 운동원리 등을 도입하여 당시의 '지구중심설' 세계관을 거의 완벽하게 증명해냈다. 수많은 '과학자'와 '수학자'들의 도전과 반증에도 불구하고 1500년 이상 천문학 최고의 권위를 누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바로 코페르니쿠스의 '동기'였다.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처음 주장한 그를 기려 새로운 사상체계의 전환적 사건을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표현하기도 하는 것처럼, 그는 갈릴레이 이전인 1500년대 초반에 이미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혁명적 관점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실 그의 '태양중심설'은 '태양신'을 섬기는 당시 신플라톤주의 철학과 '등속운동'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 우주의 중심에 지구 대신 태양을 놓았다는 것이다. 하긴 자연관측 방법이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다르지 않았고 망원경으로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후대인 갈릴레이에 와서야 가능했으니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의 동기가 '과학'적일 수는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16세기 당시까지만 해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과 이론적으로 양립했다. 세계관에 대한 '실재론'적 도전이 아닌 '도구주의적' 관점에서는 세상의 운동에 대한 수학적 증명의 정확성과 예측도 면에서 유용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가 극복하지 못한 '완벽한 원운동'과 '등속운동'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의 신념은 16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에 의해 깨진다. 여전히 '지구중심설'로 더욱 정확한 수학적 체계를 구축한 티코 체계(같은책, 2-15.)의 제자였던 케플러는 '태양중심설'을 토대로 "행성이 속도를 바꿔가며 태양 주위를 도는 타원형 궤도가 화성 데이터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을 확인"(같은책, 2-16. 케플러 체계)하고는 이전 체계들처럼 복잡하게 '주전원'이나 '가상의 원', '이심원', '동시심' 등을 사용하지 않고 "각각의 행성마다 '타원형' 궤도가 하나씩 있는데 그걸로 충분"(2-16.)히 천체의 운동를 증명했다. "케플러가 이룩한 중요한 혁신"(2-16.)은 '완벽한 원운동' 대신 '타원형 궤도'를 도입하고, '등속운동'의 믿음을 '다양한 속도'로 대체한 것이다.
(케플러 체계)
"갈릴레이의 견해에 따르면, 구원과 연관된 사안을 다룰 때는 성서증거가 으뜸이다. 하지만 구원과 연관이 없는 사안을 다룰 때는 경험적 증거의 비중이 더 커야 하고, 필요하다면 그 경험적 증거에 맞춰 성서를 재해석해야 한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인지 태양인지는 구원과 상관없는 사안이므로, 성서의 증거보다 '망원경'의 증거를 우선시해야 한다... 결국에는 다양한 속도의 타원궤도를 이용한 체계가 다른 대안적 체계보다 훨씬 뛰어나게 데이터를 설명한다는 케플러의 발견과 케플러가 자신의 천문체계에 기초해 그 어느 것보다 더 뛰어나게 만들어 1627년에 발표한 천체력, '망원경'을 이용한 갈릴레이의 발견 등이 축적된 결과 이 사안에 관심을 두는 사람 대부분이 지구와 행성이 실제 태양 주위를 '다양한 속도'의 '타원궤도'로 돈다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확신이 다시 기존 '세계관'에 많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 [세계관], <2-17. 갈릴레이와 망원경의 증거>, 리처드 드위트
이제 '망원경'을 통한 '경험적 사실'의 '과학'적 발견에 힘입어 갈릴레이의 '태양중심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종교적 '구원'은 그대로 믿으면서 개인의 '구원'과 무관한 천체의 운동에 관한 증거를 '성서'가 아닌 '망원경'을 통한 '관찰과 '수학'을 통한 증명에서 찾는 근대 '과학'의 시간이 '도구주의자' 갈릴레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 고대로부터 내려온 '원자론'의 재발견도 한 몫 하는데, "원자론은 비록 '철학적/개념적' 견해에 가깝지만 당시 등장하던 사상과 잘 어울리는 견해였고, 새로운 과학사상이 발전하는데 상당히 유익한 견해였다."(같은책, 2-19. 과학발전과 철학적/개념적 변화의 연관성). 물질이 '원자'로 쪼개진다는 신념의 부활은 이후 현대 과학에서 '양자론'의 토대가 된다.
"... 새로운 과학에서는 우주를 작동하는 그런(신적인) 존재가 필요 없었다. 가령 행성의 운동은 관성과 중력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새로운 과학에서는 우주를 작동하는 하느님(신)이 필요 없었다... (중력에 대해)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킨다는 것은... 물체가... 운동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불가지론'을 고수하는 것이다... 뉴턴은 중력을 실재론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프린키피아]에서 자신이 제시한 수학적 논리와 일치하고, 원격작용 없이 오직 기계적인 상호작용과 연관된 실재론적 설명이 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밝혔다."
- [세계관], <2-20. 새로운 과학, 그리고 뉴턴 세계관>, 리처드 드위트.
아이작 뉴턴은 '본인은 앞선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았다'고 말했는데, 케플러의 '고정관념 파괴'와 갈릴레이의 '망원경', 그리고 선배 과학자들의 수학/물리학적 증명 등에 힘입어 근대 과학의 문을 본격적으로 연다. 세계의 운동을 규명하는 '과학'이 더 이상 '신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외 없고', 인간 또는 신적 주체의 개입 없이 '객관적인' '과학법칙'에 의해 세계가 해석되는 세상을 향한 문이다.
세계를 신적인 '유기체'가 아닌 '기계적'이고 '비목적론'적 운동 체계로 파악한 세계관, '과학'의 영역에서 '신'을 몰아낸 근대 과학은 각 분야의 발전을 토대로 만물의 운동을 그럴 듯하게 증명해 왔지만, 결국 그 주요한 믿음으로서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그 이후 '양자론' 등의 현대 과학에 의해 '세계관' 자체의 도전에 직면한다.
"공약불가능성... 토마스 쿤의 표현을 빌리면, 서로 다른 전통의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활동한다.([과학혁명의 구조],1962)... 한마디로 한 과학 전통에서 다른 과학 전통으로 옮겨가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진보가 아니다. 한 전통을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전통으로 그저 대체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과 뉴턴 전통이 공약불가능하다 해도 우리는 이 두 전통을 중요하게 비교할 수 있다."
- [세계관], <3-25. 과학 이론들은 공약불가능한가?>, 리처드 드위트.
리처드 드위트는 "20세기를 중심으로 한 최고의 과학 발전"(같은책, 2-22. 뉴턴 세계관의 발전)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그리고 '진화론'을 꼽으며, 이 책의 3부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문과 출신으로 '과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이들 이론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 책 또한 '입문서'로서 기본 이론 요약을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그럼에도 특히 '양자론'은 어렵기만 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누가 움직이고 누가 정지해 있는지 구분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관점은 없다"(3-23)는 '상대성원리'와 "진공상태에서 빛의 속도는 측정할 때마다 똑같다"(3-23)는 '광속 불변의 원리'로서 뉴턴식 '절대 시/공간' 개념을 해체했다. 천재 아인슈타인도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후 모든 운동의 원리로 확대 증명한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는데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물리학 법칙이 모든 기준에서 동일하다는 '일반공변성원리(3-24)'와 '중력'과 '가속도'를 구분할 기준은 없다는 '등가원리(3-24)'라는 요소로 발전한다.
'상대성이론'은 뉴턴의 '만유인력(중력)'의 신비가 아닌 일직선 운동이 태양 같은 거대한 물체로 인해 '시공간만곡'을 일으켜 우리가 아는 '타원운동'처럼 휘게 된다는 것을 또한 증명했다고 한다. 거대한 우주 차원에서는 우리가 아는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고 비틀어진다. 그러나 '공약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절대 시/공간'은 '상대성이론'으로 '진보'하는 게 아니라 '대체'된다.
"양자론(量子論)이 서양과학과 동양과학이 똑같은 우주관으로 수렴하는 것을 입증한다는 주장... 잘못된 주장이다... 전자와 양성자 등의 아원자입자와 광자, 방사성붕괴 중 방출되는 입자는 분명히 '양자' 실체다... 양자론이 예측과 설명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론인 것은 확실하다."
- [세계관], <3-27. 양자론 입문하기>, 리처드 드위트.
현대 '최고의 과학(물리학)'은 단연 '양자론(量子論)'이다. '원자론'처럼 만물은 '양(量)'으로 셀 수 있는 '입자'로 구성된다는 이론인데, 평소에는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우리가 '측정(관측)'하면 '입자'가 된다. '양자론'에서는 '측정(관측)'과 '중첩'이 주요 개념인데, "기본적으로 파동이 가족을 이룬다는 평범한 사실과 그 어떤 가족이건 구성원들만 적절히 합치면 그 어떤 파동도 생성 가능하다는 놀라운 사실이 '양자론' 수학의 작동 장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사실의 전부"(3-27)라고 한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삶'과 '죽음' 같은 상반된 개념도 '중첩'되기에 '동양철학'을 닮았으나, '양자론'에서는 수학적, 확률적 증명이 필수이므로 저자 리처드 드위트에 의하면 양자론은 동양철학과 다르다.
"인류는 과거에도 이런 경험을 한 적 있었다. 약 100만년 전, 우리 선조들은 불을 길들였다. 불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활용해 문명을 건설했다. '양자 물리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양자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과학'은 물론이고 그 밖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선조들의 불의 원리를 모르면서도 불을 이용했듯이, 우리는 복잡한 '양자 역학'의 미스터리에서 이 문제적 측면을 수십년 동안 그냥 받아들여 왔다."
- [코스모스](2020), <9. 거짓없는 마법>, 앤 드루얀,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칼 세이건의 뒤를 이어 현재까지 천체물리학의 업적을 다루는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2020)에서도 '양자론'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9장) 지금 현재의 '과학'임에 틀림없다.
어렵다고 실망할 것 없다.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물론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앤 드루얀에게도 '양자론'은 완벽하게 이해되지 못했고, 천재 아인슈타인조차도 '유령같은 양자론'은 보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현대 과학은 어렵다. 특히 '양자론'은 정확한 수학적 확률 예측으로 '최고의 과학'이기는 하나, '양자'가 실재한다는 '양자 실체' 외에는 확실한 것이 아직 없다. 멀리 떨어진 물체 사이에 직간접적 연관('국소성', 3-28)이 없이도 확률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마법'과도 같은 '우연성'의 과학법칙을 밝혀내는 것이 현대 '과학'의 역할이고, 이로 인해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사상의 퍼즐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라는 사실만이 확실하다.
지식(과학)의 날갯짓은 시도 때도 없이 펄럭이나, 지혜(철학)의 여신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마지막으로 현대과학을 영화 [인터스텔라]에 빗대면, 우주 멀리 광속으로 다녀온 주인공이 상대적으로 늙지 않는 것은 '상대성이론', 블랙홀 너머 공간에서 지구의 예전 시간을 벽을 두고 마주하는 것은 '양자론'의 영화적 표현이 아닐까 지극히 '문과적'으로 비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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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관 - 당신 지식의 한계](2018),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2.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2020), 앤 드루얀,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3.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67), 루이 알튀세, 김용선 옮김, <인간사랑>, 1992.